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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나와 도서관 : 김승희(70 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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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06-13 11:39 조회17,224회 댓글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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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서 나는 언어의 전류에 감전되었더라

내가 대학 다닐 때 도서관은 R관에 있었다. 영문학과 학생이면서도 국문학에 더 열중했던 나는 희귀본이 많은 우리 학교 도서관이 참 좋았다. 어쩌다 희귀본 서고에 사서(司書) 선생님과 살짝 들어가면 희귀본 책들에는 식민지 초기의 슬픈 아우라 같은 것, 어떤 슬픔의 신비 같은 것이 어려 있었던 것 같다. 시간의 통과에도 소멸하지 않고 불멸의 기운이 서려있는 시를 쓰고 싶은 열망에 가슴 떨렸다.

유신시대였다. 휴교령 탓에 학교에 들어가지 못하는 날들이 많았다. 반짝 개학을 하면 도서관으로 향했다. 1972년 가을, 나는 정기 간행물실에서 문예지 <POETRY>를 탐독하고 있었다. 그 잡지에는 몇 년 전 자살로 세상을 떠난 젊은 여성 시인에 관한 특집이 있었다. 충격적이고 슬픈 이야기가 가슴을 쳤다. 그녀가 남긴 경이로운 시편들과 시 세계와 죽음을 다룬 평론 등은 참으로 신선하고 매력적이었다.

세상에, 이렇게 강렬하고도 간결한 언어와 충격적인 이미지라니! 프리다와 니콜라스, 두 아이를 위한 우유 두 컵을 침대 맡에 올려놓고 아래층에 내려와 가스 오븐에 머리를 넣고 31살에 자살한 여성시인이라니! 실비아 플라스! 그녀의 시에는 뼈에 사무치는 어떤 분노와 슬픔 같은 것들이 스며있었고 시가 아니면 살 수 없는 난파한 자의 비명이 들려왔다. 시가 아니면 살 수 없는 것은 바로 나였고 그녀의 시와 삶에서 내 어두운 자아의 거울을 발견했다. 붉은 튤립 피어있는 검은 화분 같은 나의 거울.

그 해 가을 나는 좋은 시인이 되고 싶다는 열망밖에 없었다. R관 정기간행물실 책상에 앉아 동서고금의 시적 언어에 감전되며 어지간히 많은 습작들을 끄적였다. 1973년 1월 1일, 나는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시 ‘그림 속의 물’이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드디어! 그런 ‘드디어!’의 찬란한 기쁨을 만들어준 멋대가리 없었던 R관 도서관이 지금은 막상 많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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