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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나와 도서관 : 표정훈(88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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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06-20 15:06 조회14,32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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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욜라도서관에 올리는 큰절

로욜라도서관에(지금도 있는지 모르겠지만) 1관과 2관을 연결하는 통로가 있었다. 책 찾기 위해 오가는 학생들 외엔 통행인이 드문 편이었고 통로 바깥은 실외였다. 한때 나는 그곳을 지날 때마다 치명적인 고민에 빠지곤 했다. 통로 창문을 열어 책을 바깥으로 반출, 그러니까 훔칠 수 있어보였기 때문이다. 책 던져주는 사람과 바깥에서 책 받는 사람, 이렇게 2인1조 책 절도단을 구성해볼까 궁리했던 것.

책 던져주는 역할은 내가 맡는다 치고, 받아주는 ‘공범’으로 누가 좋을까 생각해 보기도 했다. 나중에 일본으로 유학 가서 인도철학을 공부한 친구 한 사람이 좋겠다 싶었지만 ‘책 절도 계획’은 다행히 계획 단계에서 중단했다. 실행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발각되어 정학 처분을 받지 않았을까? 발각되지 않았다면 이 글을 통해 자백하고 로욜라도서관에 장서구입 후원금이라도 냈을 듯하다. 절도죄 공소시효는 7년이라 한다.

책 절도 유혹을 느끼게 한 좋은 책들이 가득했던, 물론 지금도 가득한 로욜라도서관. 그곳의 철학과 역사학 서가를 하루에도 여러 번 찾곤 하였다. 이 책 저 책 마음 가는대로 눈 가는 대로 훑어보는 브라우징(browsing)을 학생 시절 내내 거르지 않다보니 철학과 역사학 도서 대부분의 위치를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저장하게 되었다. 책 내용이 아니라 ‘제목과 위치’에 밝아졌으니 거창하게 말하면 ‘지식의 지형도’를 얻게 된 셈.

한 사람의 지식 역사에도 나이테가 있다면, 나는 로욜라도서관에서 보낸 그 시절에 지식 나이테를 여러 단계 성장시킬 수 있었다. 책 읽고 글 쓰고 번역하는 일을 업으로 삼을 수 있게 된 바탕도 그 당시 나이테라 할 수 있으니, 로욜라도서관은 내가 밥 먹고 살 수 있게 만들어준 곳이다. 적어도 나에게 책은 마음뿐만 아니라 몸의 양식이기도 하다. 로욜라도서관에, 그리고 그 옆에 있던 로욜라 성인 동상에 큰 절 한번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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