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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선물, 장애인이 아니라 인간입니다-조병찬(95·국문)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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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8-05-01 18:53 조회14,13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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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선물, 장애인이 아니라 인간입니다

“형, 이게 몇 년 만이야? 술이나 한 잔 해요.”

뇌병변장애를 앓고 있는 후배 안영호(30세·가명) 씨를 집에 가는 지하철에서 만났다. 올해 1월의 마지막 날, 밤 10시가 채 못 된 시각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술자리를 갖기로 의기투합했던 일이 석 달 동안 나를 괴롭히게 될 사건의 출발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안 씨가 전동스쿠터를 이용했기 때문에 지하철에서 내려 가장 가까운 술집을 찾아 들어갔다. 출입문 옆에 전동스쿠터를 세우고 술집으로 들어오는 동안 후배를 배려해 술집 문을 열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자 술집에서 일하는 한근엄(50대·가명) 씨가 “무슨 일이냐?”고 다가왔다. “휠체어를 탄 손님이 있어 기다리고 있다”고 했더니 한 씨는 후배를 힐끗 보고나서 “술 안파니 나가라”고 했다. 시계를 보니 밤 10시 반이 채 되지 않았었고, 가게 안에는 대여섯 명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 수치심은 둘째라 쳐도 ‘아직 이런 사람이 있나’하는 생각에 화가 났다.

“왜 술을 안 팔아요?”

“몸이 불편한 사람한테 술을 팔 수 없지요”

“그럼 술을 안 먹고 음료수를 마시면 되나요?”

“우리 가게는 음료수를 안 팔아”

갑자기 반말이다.

“그럼 왜 몸이 불편한 사람에게는 술을 팔 수 없나요?”

“손님들에게 위해감을 줄 수 있어서 안 팔아. 내가 사장인데 손님들에게 위해감을 안주게끔 할 의무가 있어. 주인이 나가라는데 무슨 말이 많아?”

국어국문학을 전공한 입장에서 ‘위화감’은 알아도 ‘위해감’이라는 단어는 처음 접했기에 무슨 의미인지 잠시 생각했다. 아마도 장애인이 남에게 해를 끼친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이러는 동안 한 씨는 눈을 부릅뜨고 금방이라도 칠 자세로 손을 들었다 놨다 했다.

“저는 그 말에 동의할 수 없으니 지금 경찰을 부를 겁니다. 제게 지금 한 말을 경찰에게 똑같이 할 수 있습니까?”

“당연하지. 내가 이겨. 물어보나 마나지. 그러니까 어서 나가.”

10여분이 지나서 경찰이 도착했다.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경찰은 “손님이 장애가 있다하여 술을 안파는 것은 잘못된 행위”라 말하며 “좋게 사과하시고 술을 내주세요”라고 권했다. 그러나 한 씨는 “손님에게 위해감을 준다. 몸이 불편해 술 먹고 죽으면 어쩌냐. 영업하는 사람 입장을 생각해달라”고 말했다. 사과는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술집을 나서려던 차에 경찰에게 한 씨를 모욕죄로 고소하겠다고 했다. 고소이야기가 오가자 그제야 술집 주인으로 보이는 여성이 황급히 나와서 “참으세요. 잘못했어요”라고 했다. 나는 “한 씨가 사과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경찰을 통해 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며칠 뒤 고소장을 작성해서 경찰서를 찾았다. 민원실에 고소장을 내고, 배정받은 부서에 가서 접수증을 낸 뒤 조서를 썼다. 이후 진행된 사실조사 과정에서 경찰들은 합의를 하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썼다. 합의조건으로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을 문서로 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사건 발생 보름이 지나도록 가해자는 묵묵부답이었다. 사건은 그렇게 해결 기미 없이 검찰로 넘어갔다. 2월 말 검찰에서 연락이 왔다. 검찰조사를 받으란다. 검찰에서까지 가해자는“영업하는 사람 사정을 봐달라”고 되풀이할 뿐이었다. 검찰 관계자가“어찌 할거냐”며 내 의향을 물었다.

“전 가해자에게 분명하게 사과와 재발방지를 문서로 요구했고 시간도 한 달이면 충분히 드렸다고 생각합니다. 더 이상의 합의에 대한 이야기는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법대로 처분해주세요.”

검찰은 3월 12일 가해자 한 씨에게 모욕죄로 벌금 30만원을 청구했다. 4월 12일 재판부는 이를 결재해 “가해자에게 모욕죄로 벌금 30만원을 내라”고 약식명령을 확정했다. 주위에 물어보니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 있는 기소처분이고 명령이란다. 2008년 설날은 ‘우리나라 최초의 처분’이라는 아주 특별한 선물을 안겨 준 셈이다.

장애인들과 상담을 하다 보면 내가 겪은 사례와 같은 일이 비일비재하다. 술집은 물론 식당, 노래방, 찜질방 등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가볼만한 곳에서 장애인들은 거부당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장애인의 권익을 찾아 가는 과정은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찾는 투쟁과 마찬가지다.

조병찬(95·국문)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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