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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인문학자로 우뚝, 고규홍(79국문) 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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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5-08-24 11:27 조회18,54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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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굿이 바라보고 이야기 나누며 17년 넘게 행복하게 삽니다”

나무에 얽힌 인문학적 의미를 살피는 고규홍(79 국문) 동문을 천리포수목원에서 만났다. 신문기자로 10년 넘게 재직하다가 나이 마흔이 되기 전에 정말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찾으려는 과정에서 나무를 알게 된 동문이다. 나무 이야기를 적기 시작한 지 벌써 15년, 단행본만 스무 권이 나왔다.

직함이 특이합니다.
‘나무 칼럼니스트’, ‘나무 시인’으로 불리다가 최근에 ‘나무 인문학자’라고 불립니다. 아마도 제 나무 이야기가 식물학적인 특징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나무에 얽힌 인문학적 의미를 톺아보려 하기 때문이지 싶습니다. ‘학자’라는 표현이 거창하게 느껴져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사람살이가 빠진 채 언어유희 쪽으로 경도되는 최근의 대중 인문학 강의를 견주어보면, 나무 이야기는 분명 사람살이 이야기를 바탕으로 이루어진다는 데에서 긍정적인 호칭이라고 생각합니다.

기고, 강연, 방송, 저술 등 활동 영역이 다양합니다.
제가 나무에 관한 글은 써도 나무 심는 건 못합니다.(웃음) 하는 일은 오로지 나무를 바라보는 일이고, 수굿이 바라보았던 나무를 표현하는 것이지요. 표현 방식이 글일 경우에는 기고와 저술이고, 말일 경우에는 방송과 강연이 됩니다. 오히려 많고 많은 일 중에 오로지 나무만 바라보고 산다는 점에서 여느 활동가들에 비해 하는 일이 적은 편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요. 나무 외에는 제대로 아는 것도 없고요. 굳이 말을 하자면, 나무를 바라보고, 나무 이야기를 쓰기 시작하면서 나무 외의 관심사를 가능하면 차단하자는 심사로 살아왔습니다.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관심사가 넓어지려는 욕망이 생긴다 해도 늘 나무로부터 접근하고자 했지요. 이를테면 제가 시를 베껴 쓰는 일을 일상적 취미활동으로 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우리 시를 베꼈고, 요즘은 한시를 베껴 쓰는 중인데요, 그 많은 시 중에 어떤 형태로든 나무가 들어 있는 시를 베껴 쓰는 방식이지요.

하루 일과가 어떻게 되는지요?
매우 불규칙합니다. 일단은 조금 이르게 일어납니다. 대략 6시 전후에 일어납니다. 아침형 인간이라서가 아니라, 오랫동안 답사를 다니다 보니 저절로 굳어진 생활방식입니다. 도로 정체가 시작되는 아침 6시 전에 수도권을 빠져나가겠다는 생각이죠. 일단 수도권 정체만 피한다면, 우리나라는 아무리 먼 곳이라 해봐야 5시간이면, 즉 점심 전에 충분히 도착할 수 있거든요.

학기 중에는 좀 바쁩니다. 일주일에 이틀, 그 중 하루는 춘천 한림대에서 하루 온 종일 강의합니다. 그 날은 다른 건 아무 것도 못하죠. 다른 하루는 인천 인하대에서 강의합니다. 그렇게 이틀을 빼고, 하루 정도 나무 답사를 합니다. 물론 이틀이 되는 경우도 있고, 못 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올해는 매주 월요일 천리포수목원에서 하는 ‘식물 전문가 양성과정’을 꼬박꼬박 수강합니다. 늙어서 공부하는 재미가 아주 좋습니다. 수강생으로 참여합니다만, 가끔은 이 프로그램에서 제가 강의하는 경우도 있지요. 그렇게 일주일에 너댓새 정도가 소비되면 남는 날은 주말 이틀 정도입니다. 프리랜서로의 지난 17년 동안 토·일요일 쉬어보지 못했습니다. 설날 이틀, 추석 이틀 쉬는 게 가장 긴 휴일이지요. 여름방학, 겨울방학이 되면 스님들처럼 ‘하안거, 동안거’에 들어갑니다. 한여름이나 한겨울에는 이동이 불편하기도 하고, 분주하게 돌아다니며 찾아보았던 나무 이야기들을 사진과 글로 정리하는 데에 매진합니다. 하지만 엉덩이가 들썩여서, 수시로 답사를 가긴 합니다.

인생 2막을 열게 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그냥 마흔 살이 되자, 이대로 죽기 전에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해 보자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정말 하고 싶은게 뭔지도 잘 몰랐습니다. 마흔 살은 어떻게 보면 그런 선택의 마지막 기회이지 싶었습니다. 어쨌든 마흔 살에는 그냥 우선 사표부터 쓰자 했습니다. 그 뒤에도 제가 주도면밀하게 이후를 준비한 것은 아닙니다.

1999년 가을, 12년 동안 문화부 학술담당 기자로 근무하던 중앙일보에 사표 내고 쉬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한두 달 절에 들어가려하다가 절집보다 조용하고 아름다운 곳이 있다는 정보를 접하고 천리포수목원으로 향했죠. 퇴직금 받은 돈에서 두 달 숙박료로 200만 원을 선불로 내고 혼자 지냈어요. 하루 종일 바다 보면서 멍하니 있기도 하고 그랬죠. 그때 눈에 들어온 게 나무였지요. 가을과 초겨울이었던지라 나무가 눈에 띈 건데, 만약 봄이나 여름이었다면 꽃에 마음을 빼앗겼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에 열중했고, 그걸 즐겼어요. 수목원에서 돌아온 뒤에도 특별히 돈벌이를 위해서, 혹은 내 미래를 위해서 무얼 해야겠다는 생각에 매달리기보다는 그냥 그 동안 바라보았던 나무 이야기들을 좀 더 잘 정리해보자는 생각으로 ‘나무편지’를 시작했지요. 나무편지를 처음 시작한 건 2000년 5월이었습니다. 그때부터 그냥 즐기면서 나무편지를 썼고, 그러다가 운 좋게 라디오 방송을 하게 됐고, 책을 내게 됐으며, 그런 과정에서 ‘나무 칼럼니스트’라는 호칭의 희소성이 많은 분들에게 좋은 평가로 어필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준비 없는 인생전환에 가족 반대는 없었나요?
제가 평소 그렇게 살아왔기에 가족들도 그러려니 했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해 애면글면하지 않았던 듯합니다. 지금 이 순간 가장 좋아하는 일, 혹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하려 했습니다. 사람들이 처음에는 그깟 돈도 안 되는 일을 왜 하냐고 했지요. 필경 돈 되는 일은 아니지만, 저는 그게 즐거웠고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는 생각까지 하게 됐지요. 더불어 하면 할수록 할 게 더 많은 분야가 나무였다는 걸 알면서, 점점 더 즐기게 됐습니다. 개인적으로 나무에 관한 글을 쓰게 된 타이밍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자연과학으로서 나무에 대한 연구가 잘 축적되어 왔던 차에 제가 대중적인 글로 접근하니 사람들이 호응해 준 거죠. ‘톡’ 쳐주니 ‘우수수’ 떨어지는 셈이죠. 백과사전이나 식물도감으로 나무를 공부하는 건 힘들지만, 이야기가 담긴 나무를 공부하는 건 재미있으니까요.

‘나무편지’를 좀 더 소개해주세요.
불규칙한 일과 중에도 지난 17년 동안 매우 규칙적으로 해 온 한 가지 일이 매주 월요일 아침 띄우는 ‘나무편지’입니다. 누가 시킨 일도 아니고, 독촉하는 사람도 없고, 원고료를 받으며 하는 일도 아닙니다. 그냥 제가 나무 이야기를 사진과 글로 엮어서, 제 홈페이지(www.solsup.com)에 이메일 주소를 남겨주신 분들에게 띄우는 나무편지입니다. 나무편지를 만드는 건 대개 일요일에 합니다. 지난 한 주 동안 만났던 나무 사진을 보정하고, 글로 써서 HTML로 편집하지요. 월요일 새벽에 퇴고 및 확인하여 발송하는 이메일 편지입니다. 17년 동안 단 한 주도 빼놓지 않고 계속했습니다. 이제는 제 삶이 됐지요. 나무편지는 콘텐츠 제작자로서 저의 자존심이 되기에 충분합니다.

나무와 더불어 산다는 것은 어떠한 삶일지?
제가 가장 강조하고 싶은 것은 우리가 자연을 보호하고 나무를 보호한다는 식의 사람 중심의 생각에서 한발 더 나아가자 싶은 겁니다. 나무는 사람보다 훨씬 먼저 이 땅에 자리 잡고 사람이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습니다. 나무는 긴 시간 동안 우리가 살 땅을 비옥하게 만들고는 드디어 그 자리에 들어선 사람을 키우기 위해 숨 쉴 수 있는 산소를 만들어주었을 뿐 아니라, 모든 양식도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없이 또 존재감도 없이, 사람을, 그리고 세상의 모든 생명을 키워주고 있다는 겁니다.또, 나무는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매개자로서 우리와 함께 했습니다. 특히 농경문화를 중심으로 살아온 민족들에게 나무는 사람의 소원을 하늘에 닿게 해 주는 매개자였습니다. 당산나무니 성황당나무니 하는 게 그런 증거지요.

가만히 길 위의 나무 곁에 한번 서 보세요. 그 곁에서 숨 한 번 크게 들이쉬어 보세요. 그때 나의 폐 깊숙이 들어가는 산소는 어디에서 오는가를 생각해 보는 거죠. 나무가 아니라면 나의 숨, 나의 생명은 불가능하리라는 걸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이어서 숨을 크게 내쉬어 보세요. 내가 내뿜는 이산화탄소는 어디로 갈까요? 나무가 양분을 만드는 광합성을 하는 데에 꼭 필요한 게 이산화탄소입니다. 그러고 보니, 나무와 사람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생명의 고리로 단단히 연결돼 있습니다. 나무 없이 살 수 없다는 걸 느끼는 거지요. 나무 있는 곳에 사람이 살고, 사람 사는 곳에 나무가 산다는 사실을 느끼는 것이 나무와 더불어 산다는 것의 바탕일 겁니다.

학창 시절 어떠한 학생이었는지요?
잘 노는 학생이었습니다. 우리 때(79년~84년)는 잘 논다는 게 학생운동을 잘 한다는 것과 대강 통했습니다. 다른 놀이가 별로 없기도 했고, 사복경찰과 학교에 같이 등교해야 하는 엄혹한 현실에서 즐겨 놀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에는 우리 학교가 인원은 적어도 학생운동에서 비교적 비중이 높았습니다. 비교적 학생운동에 열심이었습니다. 학내 서클로는 당시 시위 때 선봉에 섰던 탈춤반 활동을 했고요, 학교 외의 인천 지역에서도 사회운동 관련 소위 ‘언더 서클’ 활동을 했습니다. 요즘 대학생의 감성으로는 죽어도 이해하실 수 없는 일이겠지만, 당시에는 저 뿐 아니라, 대개의 대학생들이 가지는 관심사가 특별했습니다. ‘정의’ ‘민족’ ‘조국’ ‘자유’ ‘민주’ ‘진리’ ‘통일’ ‘지성’ ‘역사’ ‘철학’ 등이 가장 큰 관심사였습니다. 다른 관심사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앞으로의 인생 계획이 궁금합니다.
지금 이 순간을 즐기며 산다는 제가 앞으로의 삶을 어찌 짐작할 수 있겠습니까. 앞으로도 지금처럼 나무를 찾아다니고, 나무 이야기를 하나의 콘텐츠로 만들어가는 일을 계속 할 것이라는 것만 분명합니다. 나무를 주제로 펴낼 책과 할 일이 많기만 합니다. 지금 제 나이가 만 55살인데요, 환갑 때까지는 출판 계획이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계약까지 마친 상태이지요. 그러나 아직 계약이 이루어지지 않은 출판 계획까지 하면 아마도 칠순 넘어서까지 계속 글을 써야 할 겁니다. 덧붙여 지금은 깜냥도 여유도 안 되지만, 언젠가는 소설을 꼭 남기고 싶은 생각을 아직 버리지 못하고 삽니다.

단기 계획으로는 요즘 한창 긴장해서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하나 있습니다. EBS 텔레비전 다큐멘터리 방영과 출판 두 가지를 병행해 진행하는 프로젝트입니다. 콘텐츠 제작자로서 할 수 있는 하나의 업그레이드판이라고 할 수 있는 나름대로의 야심작입니다. 1년 촬영해서 내년 2월에 방영하고 동시에 책으로도 출간될 프로젝트인데요, 관심 가져 주시기를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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