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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과 나] 이경희(74·사학) 대유와인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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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하유진 작성일08-09-04 19:07 조회10,58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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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따뜻해지는 맛, 느껴보세요"

 

여자라서, 그리고 와인 회사의 대표라는 직함이 다른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해서 그런지 “어떻게 와인 사업을 하게 되었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와인에 대한 대단한 에피소드를 기대하는 상대방에게 “와인을 좋아해서 시작하지는 않았다”고 실망스러운 답을 줄 때 마다 약간 미안해지기까지 했다. 와인을 직업으로 삼은 지 9년이 되는 지금, 나는 정말로 와인을 좋아한다. 마시는 것도 좋아할 뿐만 아니라 와인을 직업으로 갖게 된 점을 참 다행이라 생각한다.


와인과의 어색한 만남
와인을 처음 마신 것은 1980년대 초 프랑스유학 시절이었다. 스트라스부르그 기숙사에서 사귄 친구를 따라 독일 남부에 있는 그녀의 집에서 처음으로 만성절 방학을 보낼 기회가 있었다. 친구의 자상한 부모님은 나를 데리고 다니며 마을 친지들에게 인사를 시켜주셨다. 그런데 가는 집집마다 와인을 내어 오는 게 아닌가. 한 낮에 술을 내어오다니 참으로 이상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드는데다, 받은 잔을 다 비워야 하는지를 몰라 고민에 빠진 나를 친구의 부모님이 건져주셨다. 그 날이 그 해 양조한 와인을 처음으로 맛보는 와인 축제일이었기 때문에 “어디를 가나 와인을 대접한다”며 “안 마셔도 된다”는 말이었다. 그 때 맛 본 와인은 발효를 끝낸 지 얼마 안 된 화이트 와인이어서 막걸리처럼 뿌연 색이었다. 시다는 느낌 이외에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말도 잘 안 통하는 곳에서 나와 와인의 첫 만남은 그렇게 시작됐다.

점입가경으로 그 날 저녁, 마을의 포도밭 집아들이 우리를 다 모아 놓고 자신이 미국과 호주의 와이너리를 여행하면서 찍은 슬라이드사진을 환등기로 보여주며 엄청난 열정으로 신세계 와인의 발전에 대한 설명을 했다. 와인이 생소하기만 하던 내게는 젊은 독일 대학생이 와인에 그토록 빠질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이해되지 않았다. 와인이 유럽 문화의 기반을 이루는 한 가지였음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나에게 와인은 마시면 취하는 그저 ‘술’이었을 뿐이기 때문이다.

1980년대 파리에서 한국 술을 구할 수가 없었던 남자 유학생들에게 와인은 마지못해 선택하는 술이었다. 그런데 처음에는 “시고 텁텁하다”고 치를 떨던 그들이 학위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갈 무렵에는 모두 와인과 헤어지는 것을 무척이나 섭섭해 했다. 그 모습을 보며 ‘와인이라는 것이 분명 매력있구나’하는 생각도 잠깐 들었지만, 술을 즐기지 않던 나로서는 와인 맛에 익숙해지는 것이 탐탁치 않았다.

와인과 친해지다
"아, 이래서 와인을 즐기는구나’하는 느낌을 받은 순간은 와인회사에서 3~4년을 일한 뒤에나 찾아 왔다. 신라호텔 중국식당 ‘팔선’에서 음식 전문가에다 와인 전문가인 고형욱 선생의 추천으로 중국 술에 생새우를 그 자리에서 익혀 먹는 요리인 ‘취하’와 프랑스 와인인 ‘샤또네프 뒤 빠쁘’를 함께 마셨다. 그 맛의 궁합이 어찌나 오묘하던지! 몇일이 지나도 맛의 기억이 지워지지 않았다. 느껴본 사람들의 경지를 안 느껴본 사람들이 어찌알겠는가. 이후 나는 와인 애호가들의 스노비즘(고상한 척하는 속물 근성 : 편집자)을 공격하지 않게 됐다.

와인의 세계에서는 개천에서 용이 나는 일은 없다. 최고의 와인은 최상의 포도밭과 좋은날씨와 오랜 노하우가 함께 어우러져야 탄생할 수 있다. 직업상 최고급 와인을 마실 기회가 잦지만 아무리 좋은 와인이더라도 마음 편하게 좋은 사람들과 마시는 평범한 와인과 견줄수 없을 때도 많다. 처음 보는 사람이라도 와인을 좋아하면 무척 반갑다. 언젠가부터 사람들은 나에게 “어디서 무슨 와인을 마시면 좋은지”물어본다. 이런 사실이 싫지 않다. 술 마시는 것을 고역으로 생각하던 내가, 이제는 맛있는 음식에 와인 한 잔이 없을 때 섭섭함이 들정도가 됐다. 식당에 와인 잔이 없으면 아예 잔을 가져가는 습관도 생겼다.

와인은 빨리 먹고 빨리 취하는 술이 아니어서 좋다. 우리의 식탁을 들여다보면 가족이 함께 모여 식사하는 시간이 거의 없고 또 다들너무나 빨리 먹는다. 와인을 곁들여 온 식구가즐겁게 이야기 하는 그런 식탁을 꿈꾸면서 와인 사업을 한다. 와인은 다른 술과는 달리 공부할 거리가 많아서 좋다. 역사와 문화를 살피다 보면 머리가 즐겁고, 와인의 색깔과 향과 맛은 오감을 자극해서 즐겁다. 지성과 감성을 함께 충족시키는 술은 와인뿐이 아닐까 한다.

50주년 기념와인 테이스팅 노트
서늘한 바람이 부는 가을은 레드 와인이 더욱 맛있게 느껴지기 시작하는 계절이다. 동문들에게 개교 50주년 와인인 ‘세븐힐 셀러스 쉬라즈’를 권하고 싶다. 직원들과 회식하는 자리에서 이 와인을 시음해 보았더니 마음이 따뜻해지는 맛의 느낌을 받았다. 지난해 선보였던 까베르네 소비뇽이 매우 진하고 묵직한 편이었다면, 이번 쉬라즈는 좀 더 세련된 맛을 지닌 것 같다. 일반적으로 호주 쉬라즈가 약간은 거친 듯 도발적인 맛이라면, '세븐힐 셀러스 쉬라즈’는 균형이 잘 잡혀 안정된 느낌을 준다. 쉬라즈는 호주를 대표하는 포도품종으로 색깔이 진하고 후추나 허브와 같은 스파이스의 향이 특징으로 양념이 강한 아시아 음식과 잘 어울린다. 타닌이 풍부하지만 까베르네 소비뇽처럼 거칠지 않고 부드러워 여성들도 좋아하는 품종이다. 바비큐나 양념 갈비와 함께 마시면 맛있을 것 같다.

기념 와인의 라벨도 정말 멋있다. 모교를 설립한 초창기 신부님들의 얼굴을 담은 라벨을 바라보니 그 분들의 학교 사랑과 열정이 보이는 것 같다. 와인 판매 수익금 전액이 재학생 장학금으로 운영되는 만큼 2010년에는 부끄럽지 않은 액수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애정을 가지고 마시면 와인이 더 맛있어지므로, 많은 동문들이 개교 50주년 와인을 사랑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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