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동문 특집-서강의 당당한 절반,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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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5-09-07 10:00 조회13,41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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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교 60학번 1회 졸업생 60명 가운데 16명이 여성 동문이었다. 남학생들의 군 입대 휴학을 감안해야겠지만 일단 졸업생 여성 비율이 26%에 달했다. 이는 당시 다른 대학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비율이었다.우리나라 대학생 숫자는 1952년 3만여 명, 1954년 6만 명, 1960년 9만여 명이었는데 1960년 당시 여대생 숫자는 1만 7000여 명이었다(박태균, ‘전후 한국의 성장’, 24권 2호, 한국국제교류재단). 그 중 0.1%를 차지한 서강 여학생들은 서강 여성 파워의 작지만 당당한 출발이었다.
총동문회가 파악하고 있는 학부 졸업 동문 5만 4929명 가운데 여성 동문은 1만 5703명으로 28.59%에 달한다. 국문, 영문, 불문, 중국문화, 심리 등은 여성 동문 숫자가 더 많고 사학, 독문, 신문방송, 수학, 생명과학 등은 차이가 근소하며 사회학, 법학, 화학, 화공생명 등도 남녀 비율이 2:1 정도이다. 여성 동문 비율이 가장 낮은 전공은 기계공학, 전자공학으로 나타났다.
여성 동문 숫자는 1960년대부터 10년 단위로 대략 두 배씩 증가해왔다. 예컨대 1960년대 440명에서 1970년대에 903명으로, 1980년대 2372명에서 1990년대에 4277명으로 늘었다. 주목할 만한 시기는 1970~80년대로, 903명에서 2372명으로 2.6배 증가했다. 이는 1975년 19.9%였던 우리나라 여학생 대학진학률이(당해 연도 졸업자 중 상급학교 진학 학생 비율) 1985년 33.5%로 높아진 추세와 관련 있다.
‘여성이 하늘의 절반을 떠받칠 수 있다’(婦女能頂半遍天)는 말이 있다. 중국의 마오쩌둥이 여성 노동력을 동원하기 위해 내놓은 정책적인 구호이기도 하지만, 여성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일반적인 표현으로 회자되어 왔다. ‘하늘의 절반은 여성’으로 바꿔 말하기도 하는데 ‘서강의 절반은 여성’이라 해도 무리가 없겠다.
초창기부터 서강에는 남성 중심적 풍토, 가부장적인 문화가 자리 잡을 곳이 없었다. 예수회 신부들의 성직자이자 교육자로서의 권위는 위계적·수직적인 권위가 아니었다. 남과 여, 장애인과 비장애인, 백인종과 유색인종, 그 밖의 사회적 차별이 일어날 수 있는 칸막이를 거두고 학생 한 사람 한 사람을 ‘하나의 인격체’로 대우하는 것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권위였다. 그 ‘아름다운 권위’가 ‘서강의 당당한 절반, 자랑스러운 절반’을 길러냈다.
<2012년도 졸업사진 중에서>
<1988년도 졸업사진 중에서>
총동문회가 파악하고 있는 학부 졸업 동문 5만 4929명 가운데 여성 동문은 1만 5703명으로 28.59%에 달한다. 국문, 영문, 불문, 중국문화, 심리 등은 여성 동문 숫자가 더 많고 사학, 독문, 신문방송, 수학, 생명과학 등은 차이가 근소하며 사회학, 법학, 화학, 화공생명 등도 남녀 비율이 2:1 정도이다. 여성 동문 비율이 가장 낮은 전공은 기계공학, 전자공학으로 나타났다.
여성 동문 숫자는 1960년대부터 10년 단위로 대략 두 배씩 증가해왔다. 예컨대 1960년대 440명에서 1970년대에 903명으로, 1980년대 2372명에서 1990년대에 4277명으로 늘었다. 주목할 만한 시기는 1970~80년대로, 903명에서 2372명으로 2.6배 증가했다. 이는 1975년 19.9%였던 우리나라 여학생 대학진학률이(당해 연도 졸업자 중 상급학교 진학 학생 비율) 1985년 33.5%로 높아진 추세와 관련 있다.
‘여성이 하늘의 절반을 떠받칠 수 있다’(婦女能頂半遍天)는 말이 있다. 중국의 마오쩌둥이 여성 노동력을 동원하기 위해 내놓은 정책적인 구호이기도 하지만, 여성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일반적인 표현으로 회자되어 왔다. ‘하늘의 절반은 여성’으로 바꿔 말하기도 하는데 ‘서강의 절반은 여성’이라 해도 무리가 없겠다.
초창기부터 서강에는 남성 중심적 풍토, 가부장적인 문화가 자리 잡을 곳이 없었다. 예수회 신부들의 성직자이자 교육자로서의 권위는 위계적·수직적인 권위가 아니었다. 남과 여, 장애인과 비장애인, 백인종과 유색인종, 그 밖의 사회적 차별이 일어날 수 있는 칸막이를 거두고 학생 한 사람 한 사람을 ‘하나의 인격체’로 대우하는 것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권위였다. 그 ‘아름다운 권위’가 ‘서강의 당당한 절반, 자랑스러운 절반’을 길러냈다.
<2012년도 졸업사진 중에서>
<1988년도 졸업사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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