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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avo My Life-하명숙(85.불문) 프랑스요리 전문식당 '오픈키친' 주인요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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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8-02-01 09:49 조회16,17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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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요리, 담백하게, 천천히, 그리고 멀리
하명숙(85.불문) 프랑스요리 전문식당 '오픈키친' 주인요리사

나는 강남의 한적한 주택가 좁은 골목 안에서 작은 식당을 경영하고 있는 요리사이다. 흔히들 이런 경우 ‘오너 쉐프'라 부르지만 불어 어원에서의 ‘쉐프'라는 말에 포함되어 있는 경외심을 생각하면 ‘주인요리사' 정도면 부끄럽지 않을 듯하다. 

프랑스 요리를 전문으로 하고 있으며 특이하다면 ‘간판'과 ‘고정 메뉴판'이 없고 테이블이 하나 밖에 없다. 예약은 하루에 한 팀! 사전예약이 필수이고 당일예약도 불가하다. 20평 남짓한 공간 절반이 키친이고 나머지 절반에 여덟 명이 앉을 수 있는 긴 테이블이 하나 놓여있다. 희망하는 최대 예약 인원 8명, 다수인원을 예약하려는 호스트는 긴 테이블이 놓여있는 공간보다 더 넓은, 비어있는 공간을 아쉬워하며 언제나 8명 이하 소수정예로 인원을 줄여야 하는 괴로움이 있고, 2인 손님은 또 그 때문에 식사비용 이외의 별도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억울함도 있다. 요리는 매일 바뀌고 시장에서는 언제나 그날의 예약 인원 분량만큼만 재료를 구입한다. 물론 ‘앵콜' 요청을 받는 요리는 다시 만든다. 가능한 한 같은 요리를 한 손님에게 반복하지 않겠다는 ‘겁 없었던' 나의 약속 지키기는 해를 넘기고 있다. 손님에게 좋은 것은 언제나 새로운 음식을 만난다는 것이고 나쁜 것은 언제나 낯선 음식을 접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정식으로 접한 최초의 프랑스 요리의 인상은 ‘담백하다' 였다. 아니 어쩌면 ‘어 이상하게 담백하네'였을지도 모른다. (프랑스요리는 어렵고 느끼하고 부담스럽다는 선입견을 가지게 한 책임은 전적으로 프랑스 요리를 제대로 만들지 못한 요리사들에게 있다) 최초로 제대로 된 ‘프와그라(거위간요리, 오리간으로도 만듦) 요리를 맛보았을 때‘튀르프(송로버섯)'향을 처음 맡아보았을 때 내가 느낀 전율은 미각이 주는 감동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그것은 그 재료들을 그 방법으로 식용할 생각을 한 데 대한 놀라움와 두려움이었을 것이다. 프랑스 요리만큼 주 재료의 맛과 향과 질감을 중요시하는 요리도 없다고 본다. 요리 이전에 재료가 더 중요함은 말할 나위가 없다. 재료를 잘 안다면 그 재료 하나만으로도 한 접시의 요리를 만들 수 있고, 하나의 재료로 수 천 가지의 요리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재료들에 숨어있는 수 천의 놀라운 맛을 끌어내고 찾아내는 요리…그런 관점에서 프랑스 요리를 만났으면 한다.

지금 생각하면 서강 언덕을 무심히 다닐 때만해도, 졸업 후 미술사 공부를 하러 프랑스로 유학을 갔을 때만해도 돌아와 직장 5년차가 될 때까지도 내가 요리사가 되리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였다. 그때까지도 부모님 댁에서 얹혀 살았었는데 97년 무렵 부모님께서는 대학원에 다니던 남동생과 나를 남겨 두고 몇 개월 여행을 가시며 내게 남긴 한마디 “동생 굶기지 마라"를 시작으로 내 요리 인생이 시작되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때까지 소위 ‘라면’ 말고는 끓여본 적이 없는 내가 동생 굶기지 않기에 들어간 이후 지금까지 단 하루도 요리를 생각하지 않고 보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것은 너무나 분명한 나 자신의 ‘발견'이었다. 자신의 길을 찾아 우회한 먼 길에서 보낸 시간들, 그 길에서 얻은 경험들, 그 길에서 만난 사람들 없이는 합일할 수 없었던 한 지점에서 나는 ‘요리'를 만났다. 퇴근 후 요리학원을 다녔고, 조리사시험도 보았고 요리책도 열심히 보고 친구들을 불러 요리도 많이 하였는데, 마셔도 마셔도 목이 타기만 하는 바닷물을 들이켜는 듯 내 갈증은 더해만 갔다. 내 나이 서른 다섯되던 해, 가진 모든 것을 다시 프랑스 요리학교로의 유학으로 맞바꾸는데 더 이상의 망설임도 두려움도 없었다.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살던 삶을 접었다. 정비소 직원을 방불케하는 지워지지 않는 검은 때를 열 손톱에 두른 채 ‘낭만의 도시' 빠리에서 첫 차와 마지막 메트로를 타고 유령처럼 오가게 될 줄은 까맣게 모른 채…

즐겁고 신나는, 매일매일이 소풍같았던 빠리요리학교 졸업 후, 미슐랭 쓰리스타에 빛나는 레스토랑 ‘Le doyen'에서의 나의 일상은 말 그대로 '지옥'이었다. 빠리의 거부들, 정치인, 연예인들이 한끼 식사에 몇 백만원씩 지불하는 우아한 홀 아래쪽, 내가 일하던 키친은 거짓말 조금 보태어 칼날들이 머리위로 날아 다니는 숨죽인 전쟁터였다. 아침 7시까지 출근 새벽 1시 퇴근, 수 킬로그램의 살아있는 개구리들을 절단 하여 근육이 살아 움찔거리는 뒷다리만 발라내고, 미처 먹은 것을 소화 시키지 못한 채 주검이 되어 온오리와 꿩들의 목을 치고 발톱들을 잘라내고, 계산해 보면 하루에 30분도 채 앉아 보지 못하고 열예닐곱 시간을 꼬박 서서 일하였다.

17살, 18살부터 요리를 시작하여 요리라면 잔뼈가 굵은, 다만 요리밖에 모르는 20대 후반 30대 초반의 건장한 요리사들의 억센 욕설들, 편견, 질투, 텃세… 그 시절에 아이러니하게도 오랜 사회생활 동안 이해하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이해하게 되었다. 마치 미로를 내려다 볼 수 있는 높이에 있으면 나가는 길을 읽을 수 있는 것처럼, 그곳의 그들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해 주었다. 빠리의 한 복판, 프랑스 요리의 진수만을 위해 삶이 존재하는 그 현장에서 내가 꿈꾸던 요리인생의 환상과 현실 두 모습을 보았다.

프랑스 요리를 정통으로 배웠다는 나는 정작 내 요리에는 정통으로 배운 소스와 장식들을 극히 배제한다. 그러고도 프랑스 요리이냐 묻겠지만 ‘그렇다'고 감히 대답한다.

재료의 헛점을 커버하기 위한 소스나, 접시와 음식의 온도를 낮추는데 소용되는 장식은 ‘노'이다. 그간 온갖 미디어와 잡지 게재를 불허하면서 블로그 및 싸이에 올린 글들마저 철회요청하는 끈질김의 결과로 ‘오픈 키친'(식당 이름)을 치면 빅마마만 나오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우리 속담에 ‘발없는 말이 천리간다'라는 말은 좋지 않은 뜻으로 쓰이고 있지만 내 요리가 사람과 사람의 입을 거쳐 천리밖 누군가에게까지 전해져 그가 천리를 마다않고 내 요리를 맛보러 오기를 기대하고 있다. 순진한 것인지 오만한 것인지 보는 사람마다 그 각도를 달리하겠지만 다만 이렇게 천.천.히. 가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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