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지금 서강은 -8.삼민광장-청년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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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5-04-06 10:04 조회15,914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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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지금 서강은...>
많은 동문들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모교를 방문할 기회가 거의 없다. 어떤 계기로 오랜만에 모교를 찾은 동문들은 노고산은 의구하고 본관이 옛 모습으로 반겨주지만, 많은 것이 바뀐 캠퍼스에 격세지감을 느끼곤 한다. 캠퍼스뿐만이 아니다. 모교의 학사제도를 비롯한 다양한 사항들을 우연한 기회에 전해 듣거나 하면, 생소한 것들이 적지 않다.
2015년 지금 서강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수업종은 계속해서 울리고 있을까? 독후감 제출함 앞에는 마감시각에 쫓기는 후배들이 원고지 칸을 채우고 있을까? 삼민광장, 청년광장은 옛 모습 그대로일까? 로욜라도서관 옆 연못의 거북이와 잉어는 어떻게 됐을까? 새로 생긴 전공에는 무엇이 있을까? 학사제도는 무엇이 어떻게 바뀌었을까? 다양한 궁금증을 풀어보자.
8광장은 사라져도 이름과 역사 남겨 _ 삼민광장, 청년광장
사라진 삼민광장, 깨끗하게 탁 트여 넓은 청년광장
모교 X관 앞에는 삼민광장이라 불리는 넓은 잔디밭이 있었다. 삼민(三民)은 민족, 민중, 민주를 뜻하였으니 1980년대 사회변혁을 위한 학생 운동의 열기에 힘입은 비공식적 명칭이었다. 명칭에 맞게 1980년대 삼민광장에서는 각 학과 깃발이 나부끼는 집회가 자주 열렸다. 후문 쪽으로 경사가 심한 편이어서 차라리 ‘삼민언덕’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법도 한 지형(地形)이었으나, 오히려 그러한 지형 구조가 집회할 때는 자연스럽게 원형극장 비슷한 효과를 냈다. 그런 경사 지형에서 축구를 하는 학생들도 적지 않았으니 잔디 축구장에 대한 목마름 때문이었을까?
따뜻한 봄날이면 삼삼오오 둘러 앉아 기타 치며 노래도 부르고 점심도 먹고, 드러누워 낮잠도 자고 연인끼리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기도 했던 삼민광장은 이제 없다. 그 자리에 2008년 음식점, 편의점, 커피전문점, 웨딩홀 등이 자리한 곤자가 플라자가 들어섰다.
한편 정문 앞 광장은 1990년대 초부터 본격적으로 청년광장으로 불리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80년대에는 시위 출정식이 자주 열렸고 총학생회 차원의 큰 행사도 자주 열렸다. 삼민광장과 달리 청년광장은 공식적인 명칭이 되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포털사이트 지명 검색 결과로도 나온다. 개교 30주년을 기념해 알바트로스 탑이 세워지면서 알바트로스 광장으로 부르자는 논의도 있었으나 워낙 익숙해진 ‘청년광장’이라는 이름을 이기지는 못했다.
지금은 좌우 양 옆에 축구 골대가 설치되어 간혹 축구를 하는 학생들도 볼 수 있으며, 가장자리에는 앉아서 쉴 수 있는 정자가 마련돼 있다. 축제 때가 되면 무대에서 초청 가수와 동아리 회원들이 공연하며, 천막과 테이블을 설치한 주점이 열리곤 한다.
줄임말을 많이 쓰는 요즘 학생들 사이에서 청년광장은 ‘청광’으로 불리기도 한다. 선명한 빛을 뜻하는 청광(淸光)이나 깨끗하게 탁 트여 넓다는 뜻의 ‘청광(淸曠)하다’라는 표현을 생각하면 제법 그럴 듯한 줄임말 표현이다. 맑은 날 선명한햇볕이 내리쬐는, 깨끗하게 탁 트여 넓은 곳이 바로 청년광장이니 말이다.
1980년대를 광장의 시대이자 집의 시대라 한다면 1990년대 이후를 방(房)의 시대라 할 수 있을지 모른다. 광장에 모여 외치고 막집, 육교집에 모여 어깨동무하던 시대에서 피씨(PC)방, 비디오방, 무슨무슨 방으로 들어가 각자 몰두하는 시대로 바뀌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해서 우리의 그 때 그 시절 광장은 사라지거나 의미가 크게 달라졌지만 세월을 상대로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 일이다.
어디 광장뿐이겠는가. 정문으로 들어서 체육관 쪽으로 향하면 왼쪽 위에 있던 등나무 벤치도 사라졌고, 정문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잡아 올라가면 펼쳐져 있던 솔밭도 예전 같지 아니하다. 그렇게 하나둘씩 물리적 공간성은 스러져갈지라도 역사적 장소성만은 우리들 모두의 삶에서 보존되며 이어질 수 있다. 광장은 사라져도 이름과 역사를 남긴다.
서강대학교 주변 전철·지하철역
서강대학교 주변에는 지하철2호선 신촌역과 이대역, 6호선 대흥역(서강대앞), 경의중앙선 서강대역 등 전철·지하철역 4군데가 있다. 대흥역(1번 출구)은 남문 또는 후문, 이대역(5번, 6번 출구)에서는 후문, 신촌역(6번 출구)과 서강대역(1번 출구)에서는 정문이 가깝다. 이상 4개 역 모두에서 보통 속도 걸음걸이로 5~10분 안에 학교에 도착할 수 있다.
이 가운데 서강대역은 2012년 수도권 전철 경의선의 용산선 구간이 공덕역까지 1차 개통되면서 본래 서강역(Seogang Station)이라는 이름으로 신설됐다. 그러나 실제 서강동이 아닌 노고산동에 역이 위치한 탓에 서강역이란 이름이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과 불과 50미터 앞에 인지도가 매우 높은 서강대학교가 자리하고 있다는 지적 등을 받으면서, 2014년 3월 서강대역(Sogang Univ. Station)으로 개명됐다. 경의선과 중앙선이 연결되면서부터는 남양주, 구리 지역과도 1시간 이내가 되었으며, 남양주캠퍼스 추진 지역의 양정역과도 직접 연결됐다.
많은 동문들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모교를 방문할 기회가 거의 없다. 어떤 계기로 오랜만에 모교를 찾은 동문들은 노고산은 의구하고 본관이 옛 모습으로 반겨주지만, 많은 것이 바뀐 캠퍼스에 격세지감을 느끼곤 한다. 캠퍼스뿐만이 아니다. 모교의 학사제도를 비롯한 다양한 사항들을 우연한 기회에 전해 듣거나 하면, 생소한 것들이 적지 않다.
2015년 지금 서강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수업종은 계속해서 울리고 있을까? 독후감 제출함 앞에는 마감시각에 쫓기는 후배들이 원고지 칸을 채우고 있을까? 삼민광장, 청년광장은 옛 모습 그대로일까? 로욜라도서관 옆 연못의 거북이와 잉어는 어떻게 됐을까? 새로 생긴 전공에는 무엇이 있을까? 학사제도는 무엇이 어떻게 바뀌었을까? 다양한 궁금증을 풀어보자.
8광장은 사라져도 이름과 역사 남겨 _ 삼민광장, 청년광장
사라진 삼민광장, 깨끗하게 탁 트여 넓은 청년광장
모교 X관 앞에는 삼민광장이라 불리는 넓은 잔디밭이 있었다. 삼민(三民)은 민족, 민중, 민주를 뜻하였으니 1980년대 사회변혁을 위한 학생 운동의 열기에 힘입은 비공식적 명칭이었다. 명칭에 맞게 1980년대 삼민광장에서는 각 학과 깃발이 나부끼는 집회가 자주 열렸다. 후문 쪽으로 경사가 심한 편이어서 차라리 ‘삼민언덕’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법도 한 지형(地形)이었으나, 오히려 그러한 지형 구조가 집회할 때는 자연스럽게 원형극장 비슷한 효과를 냈다. 그런 경사 지형에서 축구를 하는 학생들도 적지 않았으니 잔디 축구장에 대한 목마름 때문이었을까?
따뜻한 봄날이면 삼삼오오 둘러 앉아 기타 치며 노래도 부르고 점심도 먹고, 드러누워 낮잠도 자고 연인끼리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기도 했던 삼민광장은 이제 없다. 그 자리에 2008년 음식점, 편의점, 커피전문점, 웨딩홀 등이 자리한 곤자가 플라자가 들어섰다.
한편 정문 앞 광장은 1990년대 초부터 본격적으로 청년광장으로 불리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80년대에는 시위 출정식이 자주 열렸고 총학생회 차원의 큰 행사도 자주 열렸다. 삼민광장과 달리 청년광장은 공식적인 명칭이 되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포털사이트 지명 검색 결과로도 나온다. 개교 30주년을 기념해 알바트로스 탑이 세워지면서 알바트로스 광장으로 부르자는 논의도 있었으나 워낙 익숙해진 ‘청년광장’이라는 이름을 이기지는 못했다.
지금은 좌우 양 옆에 축구 골대가 설치되어 간혹 축구를 하는 학생들도 볼 수 있으며, 가장자리에는 앉아서 쉴 수 있는 정자가 마련돼 있다. 축제 때가 되면 무대에서 초청 가수와 동아리 회원들이 공연하며, 천막과 테이블을 설치한 주점이 열리곤 한다.
줄임말을 많이 쓰는 요즘 학생들 사이에서 청년광장은 ‘청광’으로 불리기도 한다. 선명한 빛을 뜻하는 청광(淸光)이나 깨끗하게 탁 트여 넓다는 뜻의 ‘청광(淸曠)하다’라는 표현을 생각하면 제법 그럴 듯한 줄임말 표현이다. 맑은 날 선명한햇볕이 내리쬐는, 깨끗하게 탁 트여 넓은 곳이 바로 청년광장이니 말이다.
1980년대를 광장의 시대이자 집의 시대라 한다면 1990년대 이후를 방(房)의 시대라 할 수 있을지 모른다. 광장에 모여 외치고 막집, 육교집에 모여 어깨동무하던 시대에서 피씨(PC)방, 비디오방, 무슨무슨 방으로 들어가 각자 몰두하는 시대로 바뀌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해서 우리의 그 때 그 시절 광장은 사라지거나 의미가 크게 달라졌지만 세월을 상대로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 일이다.
어디 광장뿐이겠는가. 정문으로 들어서 체육관 쪽으로 향하면 왼쪽 위에 있던 등나무 벤치도 사라졌고, 정문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잡아 올라가면 펼쳐져 있던 솔밭도 예전 같지 아니하다. 그렇게 하나둘씩 물리적 공간성은 스러져갈지라도 역사적 장소성만은 우리들 모두의 삶에서 보존되며 이어질 수 있다. 광장은 사라져도 이름과 역사를 남긴다.
서강대학교 주변 전철·지하철역
서강대학교 주변에는 지하철2호선 신촌역과 이대역, 6호선 대흥역(서강대앞), 경의중앙선 서강대역 등 전철·지하철역 4군데가 있다. 대흥역(1번 출구)은 남문 또는 후문, 이대역(5번, 6번 출구)에서는 후문, 신촌역(6번 출구)과 서강대역(1번 출구)에서는 정문이 가깝다. 이상 4개 역 모두에서 보통 속도 걸음걸이로 5~10분 안에 학교에 도착할 수 있다.
이 가운데 서강대역은 2012년 수도권 전철 경의선의 용산선 구간이 공덕역까지 1차 개통되면서 본래 서강역(Seogang Station)이라는 이름으로 신설됐다. 그러나 실제 서강동이 아닌 노고산동에 역이 위치한 탓에 서강역이란 이름이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과 불과 50미터 앞에 인지도가 매우 높은 서강대학교가 자리하고 있다는 지적 등을 받으면서, 2014년 3월 서강대역(Sogang Univ. Station)으로 개명됐다. 경의선과 중앙선이 연결되면서부터는 남양주, 구리 지역과도 1시간 이내가 되었으며, 남양주캠퍼스 추진 지역의 양정역과도 직접 연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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