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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민주화운동사 주역 장정수(76사학)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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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8-12-26 15:11 조회18,13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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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 편집인 장정수(76 사학 사진) 동문을 ‘자랑스럽게’ 소개합니다. 장 동문은 재학시절 거대한 독재세력과 맞서고자 의기투합해 만든 자생적 지하서클 ‘황토’에서 활동했고, 1977년 11월 ‘서강선언문’을 발표하는 교내 시위를 주도해 구속된 서강민주화 운동사의 주역입니다.

 

당시 장 동문은 ‘황토’ 멤버이자 동기였던 한승동(사학), 임영준(물리), 김용진(국문) 동문과 함께 구속돼 모진 고초를 당했습니다. 79년 감옥에서 풀려나 80년 복학했으나 신군부가 집권하면서 다시 제적당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지난 10년간 장 동문은, 건강이 너무 안 좋아 많은 고생을 했고, 또 죽을 고비도 넘겼습니다. 신장이식 수술을 하고 나서야 간신히 건강을 되찾게 됐습니다.

 

장 동문은 지난 3월 한겨레신문 편집인으로 취임했습니다. 87년 6월 항쟁의 성과물인 한겨레신문 창간 때부터 일해온 정론지의 편집사령탑이란 중책을 맡게 됐습니다. 장 동문은 함께 시위를 주도했다가 복역한 한승동 동문 그리고 정치전문기자로 유명한 후배 성한용(77 정외) 동문과 같은 직장에서 ‘열정적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어느 덧 성장한 두 딸이, 긴급조치 9호 세대들이 쓴 민주화운동 회고 책자에 실린 아빠의 글을 보고 “아빠가 자랑스럽고 존경스럽다”고 말하는 것을 듣는 순간 “나는 그 순간 정말 뿌듯했다”고 말하는 장 동문. 그런 그가 학교와 서강인에게 전하는 충언의 말은 다음과 같습니다.

 

“나는 서강대 분위기가 참 좋았다. 사람들이 참 열심히 살려고 하며, 실제 열심히 살고 있는 것이 아름답다”.

 

이러한 장 동문의 인생역정, 서강에 대한 소회, 근황 등이 서강민주동우회 홈페이지(http://sogang.in)에 인터뷰로 실렸습니다. 이 글 말미에 전문(全文)을 링크합니다. 장 동문은 인터뷰에서 ‘험난했으나 굴종하지 않았던’ 서강민주화 운동사를 간간히 언급했습니다. 동기동창이던 김의기 열사와 김윤 선배에 관한 회고에서 ‘서강정신’을 엿볼 수 있습니다. 1980년 5월 30일 신군부에 맞서 ‘동포여,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제목의 유인물을 뿌리며 종로 5가 기독교회관에서 뛰어내린 동기동창 김의기(76 무역) 동문에 대한 장 동문의 기억과 ‘남다른 소회’는 다음과 같이 언급됐습니다.

 

“의기에 대해서는 아련한 기억이지만, 의기를 생각하면 항상 부끄럽고 5월이 돌아오면 더욱 의기가 생각난다. 내가 77년 황토 친구들과 데모를 하고 구속돼 학교를 떠난 뒤 의기는 본격적으로 학생운동을 시작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의기는 내가 79년 한승동과 함께 출옥한 뒤에 알게 됐다. 하지만 우리가 석방됐을 1979년 7월은 박정희 독재정권의 말기로 사회전체가 큰 소용돌이 속에 있었다. 의기를 처음 만난 것은 10.26 박정희 암살 이후의 대격동기였다. 그래서 의기는 동기이지만 차분하게 얘기하거나 술을 같이 할 기회를 거의 갖지 못했다. 의기의 비보를 들은 것은 5.17 이후 당국의 수배를 받아 도피 중이었다. 의기가 종로 기독교 회관에서 투신자살했다는 참담한 소식을 듣고 믿을 수 없었다. 의기의 시신이 안치된 서울대 병원 영안실에 갔다가 분향만 하고 다시 피신했던 기억이 난다. 경찰에 체포될까봐 장례식에는 참석하지 못한 게 한으로 남아 있다. 의기가 죽기 전에 좀 더 같이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것이 가슴에 남는다. 정말로 아련함이 남아 있다. 내가 기억하는 의기는 탁월한 선동가이자 위대한 혁명가였다. 80년 짧았던 5월의 봄 당시 시위 때 교문 위에 올라가 선동하는 의기의 모습은 타고난 선동가였다. 정말로 뛰어났고 저절로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후배들이 의기를 추모하고 부활시킨 데 경의를 표한다. 살아남은 자들의 부끄러움이 앞선다. 그래서 더욱 더 의기는 내게 부채의식으로 남아있게 된 것 같다”.

 

장 동문이 느끼는 부채의식이 하나 더 있습니다. 여자선배인 김윤(71 영문) 동문 전기(傳記)를 완성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의 말을 들어보겠습니다.


“반독재투쟁으로 두차례 옥고를 치렀던 김윤 선배는 좌표이자 멘토 같은 분이다. 그 분은 선천적으로 심장병을 앓아 몸도 가냘프고 연약했는데 어떻게 그 힘든 민주화운동을 했는지 경외감이 들 정도다. 김 윤 선배는 내가 들어간 서강헤럴드의 선배였는데 선후배 모임 때 처음 만나서 나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민청학련 사건 때 구속된 유일한 여학생으로 유명했다. 동문인 권오성 목사님(현재 한국기독교협의회 총무)과 함께 두차례 구속됐는데 독재에 굴하지 않고 용감하게 항거하면서도 후배들에게 자상했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 선배가 80년대 초에 결혼한 뒤 농민운동을 하러 농촌에 내려갈 때 ‘어떻게 그런 몸으로 힘든 농촌생활을 견디겠느냐’고 말렸지만 결심은 확고했다. 김윤 선배가 작고한 이후 나는 김윤 선배에 대한 전기를 쓰려고 권오성 목사님을 만나서 얘기도 듣고 자료도 모으고 관련된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아쉽게도 너무너무 몸이 아파서 더 진행을 하지 못했다. 마음의 무거운 빚을 가지고 있다. 한겨레의 바쁜 시기가 지나가면 다시 김윤 선배 전기를 쓸 생각이다”.

 

장 동문의 ‘숙원사업’에 동문들의 도움이 닿기를 바랍니다.

* <추신> - 편지글이 아닌 기사에 추신을 달기는 처음입니다만, 29일 총동문회 사무실의 자료를 정리하다가 서강민주동우회에서 제작한 '김윤 동문'에 관한 다큐멘터리 형식의 13분 30초 짜리 VHS 테이프를 찾아냈습니다. 간단한 시사회를 한 결과, 놀랍게도 김윤 동문이 타계하기 전 마지막으로 추정되는 모습이 영상으로 생생하게 담겨 있습니다. 저작권을 비롯해 테이프에 등장하는 주변인물의 인적상황, 제작연도 등 제반사항을 확인한 뒤 총동문회 홈페이지 동문소식 난에 동영상으로 올리겠습니다. 생전의 김윤 동문을 영상으로 만나볼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 현장의 민주화운동 동문을 찾아서 - 한겨레 장정수 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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