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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인이 꼭 알아야할 50가지] 23. 서강연극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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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선비 작성일09-12-20 22:48 조회11,69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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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개교와 함께 전인교육을 강조한 서강의 전통은 척박한 노고 언덕에 예술 문화를 꽃피웠다. 예술관련 학과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연극과 영상 분야에서 모교 동문이 가히 독보적이라 할 만큼 인정받고 있는데, 이를 가능하도록 만든 중심 역할을 서강연극회가 담당했다. 문성근(72 무역), 박찬욱(82 철학), 최동훈(90 국문)동문 등 실력을 갖춘 문화계 인사를 배출해 낼 수 있었던 원동력이 바로 지금까지 맥을 이어오고 있는 서강연극회이기 때문이다.

서강연극회는 1960년대 황량했던 노고 언덕은 물론 신파조가 유행하던 한국 연극계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1960년 12월‘Hangs Over TheHead’를 시작으로, 1965년에는 판소리를 영어로 각색한 국내 최초 본격 뮤지컬‘Chun yang song’을 선보였다. 재공연을 요청받을 정도로 주목을 받았다. 또 1969년 국립극장에서 상연된‘올리버트위스트’는 명동에서 장사진을 이룰 만큼 큰 인기를 얻었으며, 한국일보는‘영화연극 특별상’을 제정해 수여했을 정도였다. 창설 당시, 신파조를 배격하고 독창적 연극 언어를 뿌리박는데 열정을 쏟아 부은 결과였다.

극예술 전통이 노고 언덕에뿌리내리던 1960년대와 1970년대를 지나, 1980년대에도 서강연극회는 밤을 지새우며 연습에 열중했다. 배우들은 밧줄에 매달려 발성연습을 할 정도로 혹독한 훈련을 거쳤다. 이론과 실제를 접목시키기 위해 연기법, 발성법, 무대매너, 연출작업, 대본 선정법, 무대배치 등의종합 학습이 이뤄졌다. 이런 노력이 서강연극회의 실력을 만들었고, 전통 연극에 한 걸음 더나아가게 했다.

“198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1년에 여섯 차례씩 공연할 정도로 열성이 있었고, 관객들의 호응도 대단해서 300~400여 명의 학생들이 매번 객석을 꽉 메울 정도였다고 해요.”
서강학보 제332호에 실린 당시 서강연극회 회장 박범준(93 국문) 동문의 회상을 통해 과거 대학문화에서 서강연극회의 대단한 위상을 엿볼수있다.

1990년대도 서강연극회의 움직임은 멈추지 않았다. 학교 지원금이 부족했던 탓에 오전에는 아르바이트도 하고 직접 후원까지 얻었다. 연습장소가 없어서 휑한 빈터에서 목이 쉬도록 연습했던 기억도 있다.

변화하는 시대 흐름에 비해 한 발 앞서가는 새로운 내용과 형식을 지향해온 서강 연극이, 노고 언덕에 서강의 정신을 채색해나가며 연극의 세계를 맘껏 펼쳐 온지도 반세기다. 그동안 이어온 강인한 연극인의 정신력은 고스란히 남아, 오늘도 서강연극회는 기성연극과는 다른 독특한 힘과 매력을 발산하고 있다.

글=하유진(05 사학) 학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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