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보에서 회지로 변신, 서강옛집 50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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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4-11-06 11:30 조회25,662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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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그만 한 알의 겨자씨가 땅에 떨어져 싹을 틔우고
지난 50년간 동문들이 그리운 소식을 나누고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며 뿌듯한 자부심을 느끼는, 서강정신의 산실로 자리매김한 ‘서강옛집’은 1964년 2월의 제1회 졸업생 탄생에 앞서 1월에 창간됐다. “이 조그마한 월간지가 졸업 후 귀하에게 반갑고도 유익한 벗이 될 것”이라 기대하며 손글씨로 한 자 한 자 정성껏 써내려간 동문회보 ‘서강옛집’이 작은 한 알의 겨자씨가 되어 서강 땅에 심어진 셈이다. 이름도 옛 고향집을 대하듯 ‘몸은 떠났어도 마음은 항상 모교를 생각하며 학창시절의 우정을 가꿔나가자’라는 의미였다.
창간 당시는 동문회 힘이 미약한 까닭에 故길로련 전 학장과 서정호 명예교수(당시 학생처장), 안우규(60 영문, 당시 학생처 조교) 동문의 주도하에 학교 학생처의 재정지원으로 발간됐다. 그로부터 6년 후인 1970년 10월, 故존P.데일리 총장의 호의로 동문회 사무실이 마련되고 동문회비를 걷으면서 동문회가 자체 재정으로 ‘서강옛집’을 제작하고 발송하게 됐다.
학교로부터 자립은 했지만 이때부터 ‘서강옛집’ 제작은 늘 비용 충당 문제에 시달려왔는데 1974년부터 학교 측의 협조로 재학생들에게도 동문회비를 걷고 졸업동문들이 십시일반 연회비와 구독료를 내면서 조금이나마 숨통이 트이긴 했다. 그렇지만 늘 재정부족에 허덕이는건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서강옛집’에는 늘 돈 내라는 이야기만 나온다'는 불평이 있었지만 설레는 마음으로 ‘서강옛집’을 펼쳐본다는 동문들의 관심과 자발적인 참여 덕분에 여러 차례 발간 중단 위기 속에서도 위기를 아슬아슬하게 넘기고 이어졌다.
겨자싹은 비바람 속에서도 사랑으로 무럭무럭 자라
‘서강옛집’은 이러한 동문들의 관심과 사랑 속에서 발전을 거듭했다. 손글씨로 써서 등사기로 밀어내던 레터지 형식의 회보는 1976년 타블로이드 판형의 격월간 4면 신문으로 바뀌면서 제대로 된 신문회보의 모습을 갖췄다(86호). 이후 1983년 격월간 8면(122호), 1985년 월간 8면(132호), 1990년 월간 16면으로 증면(184호) 되면서 컬러화 하는 등의 과정을 거쳐 2014년 7월까지 연간 8회, 4만 5000부를 발행해 국내외 동문들을 찾아갔다.
‘서강옛집’은 기획부터 취재, 인터뷰, 기사작성, 디자인, 조판, 그리고 평가에 이르기까지 모든 편집과정에 동문이 참여한다. 전담 직원은 물론 편집위원들과 재학생기자들이 7만 동문에게 반갑고 유익한 벗이 되고자 불철주야 아이디어를 짜내고 현장을 누빈다. 이런 노력은 지면에 고스란히 반영된다. 동문회 소식, 모교소식, 동문동정, 장학사업 등 동문들이 꼭 알아야 할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연재물과 연중기획 및 특집기사를 통해 서강정신을 담는 데 앞장서왔다.
‘서강옛집’ 지면에 가장 자주 등장했던 연재물은 학창시절 스승에 관한 아이템이었는데 1970년대 ‘명강 순례’, 1990년대 ‘잊을 수 없는 스승’, 2000년대 ‘다시 듣는 은사님 명강의’, 그리고 가장 최근의 ‘내가 기억하는 명강의’에 이르기까지 50년 동안 끊임없이 반복되어 왔음에도 여전히 인기를 끌고 있다.
한편 50주년 기획으로 2007년 4월(341호)부터 2013년 9월(393호)까지 6년 4개월간 실린 ‘서강인이 꼭 알아야 할 50가지’는 동문들에게 가장 오래 사랑받은 연재물이었다. 1회 ‘교표’부터 50회 ‘동문장학회’까지 서강정신이 집약된 아이콘들을 통해 서강동문의 정체성을 돌아보고 자부심을 키웠다는 평가를 받았다. ‘서강인이 꼭 알아야 할 50가지’는 결국 ‘서강이 뿌듯한 이유 50가지’였다.
작은 씨가 아름드리 나무가 되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서강옛집’이 배달되면 동문들이 가장 먼저 펼치고 제일 꼼꼼히 들여다보는 지면이 ‘동문동정’이다. 우리 친구, 우리 선배, 우리 후배들의 근황이 늘 제일 큰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동문들이 가장 실리고 싶어 하는 곳이 ‘서강옛집’이며 본인 인터뷰가 동문회보에 실릴 때 부담스럽고 떨리면서도 가장 자랑스럽다고 한다.
이처럼 동문들의 희로애락을 담아내고 졸업 이후도 계속 반갑고 유익한 벗이 되고자 했던 ‘서강옛집’은 지난 50년 동안 모교와 동문회와 함께 성장했다. 개교 20주년, 30주년, 50주년 등 굵직한 계기가 있을 때마다 연중기획과 특집기사로 서강 이념과 학풍, 문화와 위상 등을 냉철하게 진단했고, 모교 비전을 함께 찾고자 동문들의 뜻을 모으고 공감대를 넓혔다. 그렇기에 ‘서강옛집’에 담긴 그리운 소식, 아련한 추억, 뿌듯한 자부심 등은 현재 진행형인 서강의 역사이자 미래다.
정명숙(83 불문) 편집위원
지난 50년간 동문들이 그리운 소식을 나누고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며 뿌듯한 자부심을 느끼는, 서강정신의 산실로 자리매김한 ‘서강옛집’은 1964년 2월의 제1회 졸업생 탄생에 앞서 1월에 창간됐다. “이 조그마한 월간지가 졸업 후 귀하에게 반갑고도 유익한 벗이 될 것”이라 기대하며 손글씨로 한 자 한 자 정성껏 써내려간 동문회보 ‘서강옛집’이 작은 한 알의 겨자씨가 되어 서강 땅에 심어진 셈이다. 이름도 옛 고향집을 대하듯 ‘몸은 떠났어도 마음은 항상 모교를 생각하며 학창시절의 우정을 가꿔나가자’라는 의미였다.
창간 당시는 동문회 힘이 미약한 까닭에 故길로련 전 학장과 서정호 명예교수(당시 학생처장), 안우규(60 영문, 당시 학생처 조교) 동문의 주도하에 학교 학생처의 재정지원으로 발간됐다. 그로부터 6년 후인 1970년 10월, 故존P.데일리 총장의 호의로 동문회 사무실이 마련되고 동문회비를 걷으면서 동문회가 자체 재정으로 ‘서강옛집’을 제작하고 발송하게 됐다.
학교로부터 자립은 했지만 이때부터 ‘서강옛집’ 제작은 늘 비용 충당 문제에 시달려왔는데 1974년부터 학교 측의 협조로 재학생들에게도 동문회비를 걷고 졸업동문들이 십시일반 연회비와 구독료를 내면서 조금이나마 숨통이 트이긴 했다. 그렇지만 늘 재정부족에 허덕이는건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서강옛집’에는 늘 돈 내라는 이야기만 나온다'는 불평이 있었지만 설레는 마음으로 ‘서강옛집’을 펼쳐본다는 동문들의 관심과 자발적인 참여 덕분에 여러 차례 발간 중단 위기 속에서도 위기를 아슬아슬하게 넘기고 이어졌다.
겨자싹은 비바람 속에서도 사랑으로 무럭무럭 자라
‘서강옛집’은 이러한 동문들의 관심과 사랑 속에서 발전을 거듭했다. 손글씨로 써서 등사기로 밀어내던 레터지 형식의 회보는 1976년 타블로이드 판형의 격월간 4면 신문으로 바뀌면서 제대로 된 신문회보의 모습을 갖췄다(86호). 이후 1983년 격월간 8면(122호), 1985년 월간 8면(132호), 1990년 월간 16면으로 증면(184호) 되면서 컬러화 하는 등의 과정을 거쳐 2014년 7월까지 연간 8회, 4만 5000부를 발행해 국내외 동문들을 찾아갔다.
‘서강옛집’은 기획부터 취재, 인터뷰, 기사작성, 디자인, 조판, 그리고 평가에 이르기까지 모든 편집과정에 동문이 참여한다. 전담 직원은 물론 편집위원들과 재학생기자들이 7만 동문에게 반갑고 유익한 벗이 되고자 불철주야 아이디어를 짜내고 현장을 누빈다. 이런 노력은 지면에 고스란히 반영된다. 동문회 소식, 모교소식, 동문동정, 장학사업 등 동문들이 꼭 알아야 할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연재물과 연중기획 및 특집기사를 통해 서강정신을 담는 데 앞장서왔다.
‘서강옛집’ 지면에 가장 자주 등장했던 연재물은 학창시절 스승에 관한 아이템이었는데 1970년대 ‘명강 순례’, 1990년대 ‘잊을 수 없는 스승’, 2000년대 ‘다시 듣는 은사님 명강의’, 그리고 가장 최근의 ‘내가 기억하는 명강의’에 이르기까지 50년 동안 끊임없이 반복되어 왔음에도 여전히 인기를 끌고 있다.
한편 50주년 기획으로 2007년 4월(341호)부터 2013년 9월(393호)까지 6년 4개월간 실린 ‘서강인이 꼭 알아야 할 50가지’는 동문들에게 가장 오래 사랑받은 연재물이었다. 1회 ‘교표’부터 50회 ‘동문장학회’까지 서강정신이 집약된 아이콘들을 통해 서강동문의 정체성을 돌아보고 자부심을 키웠다는 평가를 받았다. ‘서강인이 꼭 알아야 할 50가지’는 결국 ‘서강이 뿌듯한 이유 50가지’였다.
작은 씨가 아름드리 나무가 되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서강옛집’이 배달되면 동문들이 가장 먼저 펼치고 제일 꼼꼼히 들여다보는 지면이 ‘동문동정’이다. 우리 친구, 우리 선배, 우리 후배들의 근황이 늘 제일 큰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동문들이 가장 실리고 싶어 하는 곳이 ‘서강옛집’이며 본인 인터뷰가 동문회보에 실릴 때 부담스럽고 떨리면서도 가장 자랑스럽다고 한다.
이처럼 동문들의 희로애락을 담아내고 졸업 이후도 계속 반갑고 유익한 벗이 되고자 했던 ‘서강옛집’은 지난 50년 동안 모교와 동문회와 함께 성장했다. 개교 20주년, 30주년, 50주년 등 굵직한 계기가 있을 때마다 연중기획과 특집기사로 서강 이념과 학풍, 문화와 위상 등을 냉철하게 진단했고, 모교 비전을 함께 찾고자 동문들의 뜻을 모으고 공감대를 넓혔다. 그렇기에 ‘서강옛집’에 담긴 그리운 소식, 아련한 추억, 뿌듯한 자부심 등은 현재 진행형인 서강의 역사이자 미래다.
정명숙(83 불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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