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는 멋졌고 후배는 예뻤다, 학보 체육대회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3-08-07 16:09 조회17,263회 댓글0건관련링크
본문
서강타임스/학보 동인 체육대회가 지난 6월 29일 모교 체육관에서 진행되었습니다. 동인 체육대회는 '서강학보'를 제작하고 있는 현역기자들과 신문을 만들었던 졸업 선배들이 한자리에 모여 몸을 부딪치며 하나가 되는 자리입니다. 현역 기자들이 선배들을 초청하는 형식으로 매년 6월경 치르는 동인 체육대회는 연말 송년회와 함께 동인회의 가장 큰 행사입니다. 매년 6월 6일 현충일 휴일에 진행하는 것이 오래된 전통이었지만 최근에는 학기말 고사를 앞둔 후배기자들의 부담을 덜어 주기 위해 기말 고사가 끝나는 6월 말에 개최하고 있습니다.
동인 체육대회는 행사 한 달 전부터 준비
선배들의 모임인 '서강타임스/학보 동인회'(회장 조광현, 88 경제)와 서강학보 현역 편집장을 비롯한 기자들이 만나 행사 일정과 내용을 협의하고 역할을 분담합니다. 특히, 선배들을 환영하기 위해 현역기자들은 기념 티셔츠를 직접 디자인하고, 행사 프로그램을 짜고, 행사장과 뒷풀이 장소를 예약합니다. 선배들을 위한 장기자랑은 수습기자의 몫입니다.
동인 체육대회를 준비하며 현역 기자들이 가장 크게 공을 들이는 부분은 연락입니다. 60학번부터 2011학번까지 무려 560명 이상인 선배들에게 일일이 전화 통화를 시도합니다. 기자 1인당 약 50명 정도의 선배들에게 전화를 걸어 이야기를 나누며 행사 소식을 알리고 '서강대학교에서 신문을 만들었다'는 자부심과 소속감으로 선후배가 하나로 연결되는 순간입니다.
후배기자들이 행사를 준비하고 직접 연락을 하는 동안 동인회는 각 학번별로 ‘횡적 연락’에 집중하며 참여를 독려합니다. 올해는 ‘C관 학보사 시대의 마지막’이라는 컨셉으로 참여를 유도했습니다. C관 앞 농구코트와 등나무를 헐고 건설 중인 ‘우정관’이 완공되면 학보사가 C관을 벗어나 새 건물로 이사를 갈 것이라는 소식 때문입니다. 20대의 열정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C관 학보사’를 올해가 아니면 더 이상 보기 어렵다는 절박한 이야기는 많은 동인들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드디어 6월 29일(토), 행사 당일
동인 체육대회 날에 비가 오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날은 날씨는 맑지만, 습기 탓에 후텁지근했고 무더웠습니다. “메인 행사 장소를 대운동장으로 잡지 않고 우천을 대비해 체육관으로 결정하길 잘했다”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왔습니다.
오전 11시가 되자 그리운 얼굴들이 하나 둘 체육관으로 입장했습니다. 현역 기자들은 선배들이 오자 준비한 명찰을 건네고 사이즈에 맞는 티셔츠를 나눠줬습니다. 아이를 데려온 선배를 위해 꼬마용 티셔츠도 준비됐고, 후배들의 자상한 배려가 고마웠습니다. 어린 자녀들에게 “나중에 크면 서강대학교 들어와서 너도 학보사 기자해라”는 덕담이 오갔고, 모두가 크게 웃었습니다.
점심은 짜장면으로 통일
예전에는 참석 인원을 미리 예상해 도시락을 미리 주문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예상은 항상 빗나갔고, 턱없이 모자라거나 왕창 남는 문제가 반복됐습니다. 그래서 올해는 참석한 사람 수만큼 짜장면을 주문했습니다. 체육관 바닥이 행여 더렵혀질까봐, 준비한 폐신문지를 촘촘하게 깔아 빈틈없이 만든 ‘돗자리’ 위에서 단체로 흡입(?)하는 짜장면맛은 학창시절의 옛날짜장면을 떠오르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뛰려면 영양보충이 필요한 만큼 탕수육, 깐풍기가 빠질 리 없었습니다. 선후배가 서로 섞여 체육관 바닥에 빙 둘러 앉아 짜장면을 먹는 장면은 보기에도 훈훈하고 즐거웠습니다.
체육대회 첫 경기는 역시, 농구
선후배가 편을 짜 OB, YB로 한판 붙었습니다. 의지의 선배와 힘의 후배가 격돌했습니다. 왕년에 공 좀 던졌던 선배들의 기량은 전혀 녹슬지 않았습니다. 힘이 넘치는 후배들이 오히려 밀려보였습니다. 문제는 체력이었습니다. 나이, 세월을 속일 수는 없었습니다. 시간이 지나자 선배들은 헉헉 거렸습니다. 뛰지 않고 걷거나 서 있는 선배들이 늘어났습니다. 그래도 첫 경기는 골 관리를 잘 한 선배들의 승리였습니다. 물론, 나이로 밀어붙이는 우격다짐도 승리에 밑바탕이 됐습니다.
남녀별 팔씨름 대회와 제기차기
남자부 여자부로 나누어 토너먼트 형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힘과 힘이 맞붙었고, 응원이 펼쳐지는 가운데 소녀장사와 천하장사가 가려졌습니다. 여자부는 현역 여기자 승, 남자부는 졸업생인 이창섭(84 국문) 동인의 승. “아니 어떻게 나이 50줄에 들어선 내가 이길 수 있지? 야 후배가 네가 일부러 저준 것 아니냐?”며 딴엔 성화를 부려보지만, 10kg 더 나갈 것 같은 체중과 체급의 차이가 승패를 가른 것 같았습니다.
한껏 힘자랑을 한 동인들은 다음 순서로 마련된 제기차기에 나섰습니다. 팔힘을 썼으니 이젠 발힘을 써 전신운동 하려는 ‘깊은 뜻’이 있는 듯 했습니다. 편을 홀짝 학번으로 나눌 거냐, 가위바위보로 정할 거냐를 놓고 옥신각신하다가 간편하게 기념 티셔츠 색깔로 나누기로 결정했습니다. 주황팀과 녹색팀으로 편을 갈랐습니다.
번갈아 가며 한 명씩 제기를 차서 마지막 선수의 누적 합계로 승부를 결정짓기로 했습니다. 제기차기 선수들이 빙 둘러선 가운데 한 명 한 명 제기를 찰 때마다, 비록 편이 다르더라도 선수이름을 연호하며 한껏 응원했습니다. 특히 여학생이 찰 때는 “두 번, 두 번”을 외쳤습니다. 제발 두 개만이라도 차 달라는 간절한 기원의 목소리였습니다. 엇갈리는 승부 속에 정규영(90 경제) 동인의 탁월한 발놀림으로 녹색팀이 압도적 격차로 승리를 거머쥐었습니다.
추억의 수건돌리기, 퀴즈대회
우당탕탕 체육관이 들썩였습니다. 박수치고 노래하며 게임이 진행될수록 선후배는 더욱 친해졌습니다. ‘도전 골든벨’ 형식으로 진행된 서강타임스/학보 관련 퀴즈대회도 무척이나 흥겨웠습니다. ‘서강학보는 몇 호까지 발행되었나’ 하는 현역기자에게 유리한 문제부터, ‘최초의 컬러 신문은 서강타임스 몇 호인가’처럼 좀처럼 알기 힘든 문제까지, 서강타임스/학보의 역사를 꿰뚫고 있어야 풀 수 있는 다수의 문제가 출제되었다.
권종순(74 경제) 동인의 의도적인 개그성 오답쓰기는 참가자 모두에게 연신 웃음꽃을 선사했습니다. 최후의 승자, 1인은 현역 기자가 차지했습니다. 문제를 풀면서, 어렵되 꼭 알아야 할 ‘산 역사’를 증거하는 문제를 출제하고자 학보사 역사를 세밀히 공부하고 취재했을 후배들이 무척 예뻐 보였습니다.
경기가 진행될수록 늘어나는 지각동인들
첫 농구경기의 패배가 못내 아쉬웠는지 후배들이 선배들에게 ‘무례하게도’ 재시합을 요청했습니다. 여차하면 “내가 너희 아버지 또는 삼촌 나이뻘 된다”며 우격다짐으로 밀어붙일 수 있는 선배들로선 흔쾌히 OK했습니다. 이번 기회에 현역기자들의 코를 납작하게 눌러줄 요량이었습니다. 그런데, 재경기에 나선 후배들의 눈빛이 아까와는 사뭇 달랐습니다. 힘과 조직력으로 밀어붙였고, 곧 체력이 바닥나기 시작한 선배들은 경기 시작부터 밀리기 시작했습니다. 핵, 핵 숨쉬는 소리부터 위태로웠고, 슛이 림에도 못미치는 에어볼(air ball)이 속출했습니다. 결국 후배 승.
한여름 땡볕에 운동장에서 축구를
다음은 대운동장으로 옮겨 축구경기를 시작했습니다. 영화 ‘늑대와 춤을’이 아니라 ‘땡볕에 축구를’ 했습니다. 그것도 축구장 절반만 쓰는 게 아니라 전체를 부리나케 왔다리갔다리 하며 뛰었습니다. 작년엔 남자 선수가 부족해 여자를 위한 축구경기를 벌였습니다. 남자들은 발만 사용하되 여자들은 공을 차는 것 뿐만 아니라 손으로 들고 뛰는 것까지 용인하는 ‘럭비식 축구경기’를 진행했습니다.
그러나 올해는 달랐습니다. 진정 발만 쓰는 진정한 사나이들의 축구가 원형(原型) 그대로 펼쳐졌습니다. 이리저리 뛰고 달리며 ‘마이 볼’을 외치고 ‘여기, 여기’하며 패스를 재촉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최고참 학번인 김기태(74 신방) 동인은 참가 선수 중 가장 탁월한 체력과 기량을 보여주었습니다. 심판 자격증까지 보유한 김 동인은, 차범근 축구교실 홍보이사를 맡을 정도로 열혈 축구광이었고 이 날도 유일하게 선수용 축구화를 준비해왔습니다. 파김치가 될 정도로 뛰며, 전후반 연장전까지 간 축구경기는 1 대 1 무승부를 기록했습니다.
마지막 경기 발야구 한판
마지막 경기인 발야구를 할 때는 작열하는 한낮의 태양이 가장 뜨거웠습니다. 1리터 짜리 물병을 베이스 삼아 녹색팀과 주황팀으로 편을 나눠 경기를 진행했는데, 땡볕에 놓아둔 물병의 물이 지열로 금방 미지근해졌습니다. 참가한 인원이 한 번씩이라도 공을 찰 수 있게 한 덕에 경기 집중도는 가장 높았습니다. 푹푹 찌는 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선후배들은 한데 엉켜 공을 던지고, 차고, 받고, 뛰면서 뜨거운 우애를 과시했습니다. 모든 경기가 끝나자 땀에 전 선수들의 모습을 서로 확인할 수 있었고 다를 뿌듯해 했습니다. 특히 남자들은 체육관 샤워실에서 함께 샤워를 하며 몸짱을 칭찬하고 뱃살을 한탄했습니다.
다시 찾은 학보사, 현황을 듣다
다시 C관 서강학보사에 모인 동인들은 현역 편집장에게서 학보 현황을 들었습니다. 현역기자들은 1학년(13학번) 5명, 2학년(12학번) 6명, 3학년(11학번)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요즘은 체계가 바뀌어 3학년 1학기까지 마치면 임기가 만료됩니다. 과거엔 3학년 2학기가 끝나야 편집국장과 데스크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여름방학이 지나면 1,2학년 11명이 신문을 만들게 됩니다. 선배가 그러했던 것처럼 후배기자들도 똑같이 공부하고 취재하고 밤새워 기사 써서 신문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격주 12면 발행. 놀란 것은 발행 부수였습니다. 한 번 발행에 4000부를 발행한다고 합니다. 1만부 이상을 발행하기도 했다는데 종이신문의 위축은 대학신문이라고 비켜갈 수 없었습니다. 서강학보의 미래에 관해 선배들도 함께 고민하기로 했습니다.
C관 교수식당에서 교내뒷풀이
시간은 벌써 6시. 교수식당에 마련한 저녁식사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화기애애, 오순도순, 삼삼오오 이야기꽃을 피우며, 방전된 원기를 원상회복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간단한 행사를 시작했습니다. 동인회가 준비한 편집국장 이취임식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그동안 수고한 11학번 54기 신재희 편집국장을 비롯한 임주리 대학부장, 구민지 대학부장, 이슬기 사회부장, 이다혜 문화부장에게 동인회에서 마련한 머그컵을 선물로 주었습니다. 머그컵은 앞면엔 개인별 이름이 새겼고, 뒷면엔 서강학보의 모토 ‘그대 흘린 땀이 세상을 이기리라’는 문구를 뚜렷히 새긴 일종의 ‘네임컵’을 증정하며 기자직에서 물러난 퇴기(退記)들의 노고를 격려했습니다.
이어 학보사의 주역인 현역기자 소개가 이어졌습니다. 앞으로 1년간 학보를 이끌 신임 한채영편집국장을 가장 큰 박수로 환영했습니다. 동인회의 축하와 격려가 이들이 학보생활을 하는 데 큰 힘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뿐이었습니다. 행사의 꽃은 수습기자 장기자랑. 남자수습이 4명이나 된다는 무지 반가운 소식은 모두를 열광케 했습니다. 그동안 일방적 여초(女超)현상이었기에, 올곧은 기자정신을 논하기 이전에 남초(男超) 자체만으로도 희소가치가 충분했습니다. 수습기자들은 스무살 젊은이답게 걸그룹 노래에 맞춰 멋진 춤을 추었고, 객석의 선배들을 무대로 끌어내 함께 흥겨운 춤을 추는 ‘한마당 퍼포먼스’를 펼치기도 했습니다.
모든 행사 마치고 맥주집 ‘레이더스’로
레이더스로 자리를 옮긴 뒤에서 뒤늦게 합류하는 동인들의 참가대열은 계속 됐습니다. 최대 60여명이 한 공간에서 왁자지껄 하하호호, 곳곳에서 술잔을 부딪치며 선후배들은 점점 하나가 되어갔습니다. 서강학보라는 공공재(公共財)를 만들었던 사명감을 잊지 않았고, 지금까지 마음속에 공유하고 있었습니다. 서강학보라는 용광로는 역시 뜨거웠습니다. 1960년 개교와 함께 창간하여 서강타임스부터 서강학보까지 끊이지 않고 이어온 53년의 성상(星象). 그 서강학보을 있게 한 기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멈출 수 없는 내일을 열어가고 있었습니다. 2013년 서강타임스/학보 동인 체육대회에서 선배는 아주 멋졌고. 후배는 무지 예뻤습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