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박물관탐방, 초원 흉노를 탐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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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3-05-30 15:27 조회12,594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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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동문회와 사학과동문회(회장 홍석범 75 사학)가 주최하는 국립중앙박물관 탐방, 5월 관람의 백미는 ‘초원의 대제국 흉노(匈奴)족 탐구’였습니다.
5월 15일 열린 이번 관람에는 △홍순호(71 전자) △조성대(72 독문) △최병찬(73 사학) △조미혜(76 생명과학) △신동삼(82 경영) △이창섭(84 국문) △강민정(87 화학) △조광현(88 경제) △박연아(88 수학) △박범철(97 사학) △김현정(04 화학) 동문이 참석했습니다. 신동삼 동문은 아들과, 김현정 동문은 모친과 함께 참가했습니다. 특별손님으로 이현철(92 컴퓨터) 동문의 가족(부인, 자녀)과 교사 박범철 동문의 고등학교 제자들이 여럿 합류해 환영을 받았습니다.
행사를 주관해온 최병찬 동문은 “5월 관람에는 모녀, 모자, 부자, 스승과 제자가 총출동하는 모습을 보였다”며 “개인관람에서 점차 가족관람 형식으로 확대되는 것 같아 기쁘다”고 촌평했습니다.
관람은 두 파트로 나눠, 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를 통사적으로 고찰하는 정규코스(?)로 이 달에는 신라와 통일신라시대 유물을 집중적으로 살펴봤습니다. 토기, 비석, 비문(碑文), 곱돌, 기와, 조각, 불상(佛像)을 섭렵했습니다.
그 중, 경북 경주 금녕촌에서 발굴된 토기는 놀랍게도 1200도의 고온으로 구워야만 탄생하는 경질토기(硬質土器)였습니다. 토기를 쇠처럼 단단하게 만들려면 고온의 화력이 뒷받침돼야 하는데, 당시 이러한 첨단기술을 보유했다는 사실에 모두 감탄했습니다.
또한 냉수리 고분인 돌방무덤에서 출토한 돌의 비문(碑文)이 주목을 끌었습니다. 비문에는 신라 지절로 왕이 재산을 둘러싼 분쟁을 해결하고 그 결과를 돌에 새긴 사실이 적혀 있던 것이었습니다.
2008년 사천왕사(四天王寺)을 재발굴하면서 새로 알개 된 사실도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습니다. 통일신라의 미켈란젤로로 불린 양지(良志)라는 스님이 조각한 섬세하고 역동적인 녹유(綠釉) 소조상(塑造像)에 관한 일화였습니다
1910년 일제 식민시대에 사천왕사가 발굴되면서 쌍탑지 주변에서 녹유 소조상 조각이 발견됐습니다. 그러나 당시 발굴을 몇몇 조각편(片)에 그쳐, 조각솜씨의 전모를 도무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 2006년 본격 재발굴에 나서면서 소조상의 더 많은 조각을 찾아냈고 200여점의 조각을 퍼즐처럼 맞추자 찬란한 유산이 온전한 모습을 드러낸 것입니다.
2부는 특별전 관람이었습니다. 박물관측에서 의욕적으로 마련한 ‘초원의 대제국 흉노-몽골 발굴조사 성과 전시회’였습니다. 몽골 현지 발굴에 참가한 장은정(90 사학, 위 사진 맨 오른쪽) 학예사가 직접 설명에 나서는 성의를 보여주었습니다.
2006년부터 3년간 발굴조사한 몽골 헨티, 아이막, 도르릭 나르스의 흉노무덤에서 나온, 길이 54m가 넘는 대형 무덤인 1호 무덤과 그 배장묘 4기에서 출토된 유적발굴 성과를 소개했습니다. 특히 ‘둥근 소나무’라는 뜻의 도르릭 나르스 무덤군(群)에는 280개의 무덤이 확인돼 정밀한 분포도를 작성 중에 있습니다. 드넓은 초원에서 갑자기 소나무 숲이 불쑥 나타나고, 인공림이 무덤을 나타내는 표식이라는 점이 특이했습니다.
장은정 학예사는 먼저 흉노족 문화를 개관했습니다. 몽골초원에 흩어진 흉노는 △문자가 없어 기록을 남기지 못했지만 부호는 존재했고 △언어는 키릴어를 사용했으며 △중국과의 교역보다 서역과의 교류가 더 활발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생필품과 물자가 부족한 유목민족인 만큼 외부문화를 빨리 흡수했으며,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되는 순간 기마민족답게 바로 버리는 과단성이 남달랐다”고 말했습니다. 흉노 연구는 주로 몽골과 러시아 학자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는데 최근 우리나라를 비롯해 프랑스, 미국 등이 참여해 공동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흉노족 무덤의 특이점은 나무관에 시신을 안치해서, 10m 지하에 깊이 매장하는데 목관 안에 목관을 쓰는 이중관 형식이며, 주로 이곳에 부장품을 놓았습니다. “무덤 봉분은 없으며 철자 형태로 주변에 낮은 돌을 쌓는데, 초원이라서 돌이 낮아도 멀리서 잘 보인다”고 설명했습니다. 다만 초원의 지배자가 자주 교체되는 탓에 무덤 파괴행위가 잦아 온전히 보존된 고분을 찾기가 쉽지 않다고 덧붙였습니다.
관람을 마친 동문들은 박물관 3층 전통찻집 ‘사유’에 모여 담소하고, 추첨을 거쳐 신동삼, 박연아 두 동문에게 기념품을 증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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