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강인이 꼭 알아야 할 50가지 48 등나무 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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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3-04-16 10:10 조회18,733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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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나무 벤치’라고 하면 어디인지 금방 떠오르지 않는 동문도 있을 법하다. 학교 정문에서 오른쪽 길로 잠시 오르다 체육관 쪽 길로 방향을 틀면, 길 오른쪽에 테니스코트가 있고 왼쪽 위에 등나무가 무성한 벤치들이 자리 잡고 있다.
그 등나무 벤치가 바로 아래쪽에 자리한 농구코트와 함께 없어진다. 기술경영(MOT)전문대학원과 학생회관 등을 주 용도로 하는 신축건물 ‘우정관’이 들어 설 예정이기 때문이다. 이미 3월 15일 기공식을 갖고 한창 공사중인 상태다.
등나무 벤치에 관한 동문들의 추억은 다양하다. 지금 연인이거나 향후 연인으로 발전시키고픈 상대와 나란히 앉아 정담을 주고받았는가 하면, 최루탄에 눈물 콧물 쏟다가 바람결 강한 등나무 벤치에서 잠시 숨을 고르기도 했다. 혼자 있고 싶을 때에도 벤치에 앉아 아래쪽으로 바삐 지나가는 학우들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바래지는 꿈을 새삼 되새겨보았다. 농구 코트 방향으로 앉아 농구공 탕탕튀고 숨소리 헉헉 뛰는 농구 경기 한 판을 관전했으며 학과 대항 농구대회 주요 경기의 무대이기도 했으니, 응원 함성이 귓가에 선하다. 여름날 등나무 벤치에 책 베개 하고 누우면 1분 안에 땀 식고 3분 안에 꿈나라로 갔다. 밤이면 아주 가끔(?) 가볍다면 가볍고 진하다면 진한 남녀 학생 간 스킨십 장면이 보일 듯 말 듯했다.
장소는 단순한 공간과 다르다. 장소에는 기억과 의미와 가치와 삶이 묻어 있다. 요컨대 장소가 ‘삶의 장소’라면 공간은 ‘물리적 공간’이다. 장소는 지나온 삶의 추억을 소환하고 공간은 앞으로 기대되는 활용가치를 환기시킨다. 장소가 몸으로 간직하는 기억이라면 공간은 머리로 진행하는 계산이다. 물리적 공간이 기능과 효율과 자본의 논리에 따라 계획되고 가공된다면, 삶의 장소는 강철 같은 자본의 논리도 무뎌질 수 있는 생활세계다. 등나무 벤치는 기능과 효율 면에서는 그대로 두기 아까운 공간일지 모르나 삶의 장소성 측면에서는 없애기 안타까운 장소다. 장소는 ‘어떤 일이 이루어지거나 일어나는 곳’, 즉 사건과 불가분이다. 공간은 ‘아무 것도 없는 빈곳’, 즉 지금 있는 것들을 지워 없애고 뭔가를 세워 올려 만들 수 있는 곳이다. 장소는 자꾸만 사라진다. ‘공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니 어쩔 도리가 없는 것인가.
다른 자리에서나마 등나무의 장소성을 보전하기 위한 아름다운 시도가 있었다. 학교 측은 옮겨 심는 것을 검토했지만 워낙 고목인데다가 중심부 심재(心材)가 비어 있는 탓에 옮겨심기 어렵고, 옮겨 심더라도 제대로 뿌리내려 살아남기 어렵다는 판단이 내려졌다. 등나무 벤치의 장소성이 깃들 수 있는 장소는 이제 우리의 아스라한 기억뿐이다. 어디 등나무 벤치뿐일까. 세월은 장소를 먹으면서 속도가 점점 더 빨라진다.
표정훈(88 철학) 편집위원장
그 등나무 벤치가 바로 아래쪽에 자리한 농구코트와 함께 없어진다. 기술경영(MOT)전문대학원과 학생회관 등을 주 용도로 하는 신축건물 ‘우정관’이 들어 설 예정이기 때문이다. 이미 3월 15일 기공식을 갖고 한창 공사중인 상태다.
등나무 벤치에 관한 동문들의 추억은 다양하다. 지금 연인이거나 향후 연인으로 발전시키고픈 상대와 나란히 앉아 정담을 주고받았는가 하면, 최루탄에 눈물 콧물 쏟다가 바람결 강한 등나무 벤치에서 잠시 숨을 고르기도 했다. 혼자 있고 싶을 때에도 벤치에 앉아 아래쪽으로 바삐 지나가는 학우들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바래지는 꿈을 새삼 되새겨보았다. 농구 코트 방향으로 앉아 농구공 탕탕튀고 숨소리 헉헉 뛰는 농구 경기 한 판을 관전했으며 학과 대항 농구대회 주요 경기의 무대이기도 했으니, 응원 함성이 귓가에 선하다. 여름날 등나무 벤치에 책 베개 하고 누우면 1분 안에 땀 식고 3분 안에 꿈나라로 갔다. 밤이면 아주 가끔(?) 가볍다면 가볍고 진하다면 진한 남녀 학생 간 스킨십 장면이 보일 듯 말 듯했다.
장소는 단순한 공간과 다르다. 장소에는 기억과 의미와 가치와 삶이 묻어 있다. 요컨대 장소가 ‘삶의 장소’라면 공간은 ‘물리적 공간’이다. 장소는 지나온 삶의 추억을 소환하고 공간은 앞으로 기대되는 활용가치를 환기시킨다. 장소가 몸으로 간직하는 기억이라면 공간은 머리로 진행하는 계산이다. 물리적 공간이 기능과 효율과 자본의 논리에 따라 계획되고 가공된다면, 삶의 장소는 강철 같은 자본의 논리도 무뎌질 수 있는 생활세계다. 등나무 벤치는 기능과 효율 면에서는 그대로 두기 아까운 공간일지 모르나 삶의 장소성 측면에서는 없애기 안타까운 장소다. 장소는 ‘어떤 일이 이루어지거나 일어나는 곳’, 즉 사건과 불가분이다. 공간은 ‘아무 것도 없는 빈곳’, 즉 지금 있는 것들을 지워 없애고 뭔가를 세워 올려 만들 수 있는 곳이다. 장소는 자꾸만 사라진다. ‘공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니 어쩔 도리가 없는 것인가.
다른 자리에서나마 등나무의 장소성을 보전하기 위한 아름다운 시도가 있었다. 학교 측은 옮겨 심는 것을 검토했지만 워낙 고목인데다가 중심부 심재(心材)가 비어 있는 탓에 옮겨심기 어렵고, 옮겨 심더라도 제대로 뿌리내려 살아남기 어렵다는 판단이 내려졌다. 등나무 벤치의 장소성이 깃들 수 있는 장소는 이제 우리의 아스라한 기억뿐이다. 어디 등나무 벤치뿐일까. 세월은 장소를 먹으면서 속도가 점점 더 빨라진다.
표정훈(88 철학) 편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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