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 파리오페라단 근무 홍성희(01불문)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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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2-09-10 09:26 조회11,613회 댓글1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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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로 열린 서강인이라는 취지에서 프랑스 국립 파리 오페라단에서 일하는 홍성희(01 불문) 동문의 글을 싣습니다. 홍 동문은, 학창시절 서강학보사에서 일하면서 문화와 예술에 대한 열정으로 살았고, 프랑스로 유학가 바라던 분야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잠시 귀국해 총동문회 사무국에 인사온 홍 동문에게 글을 부탁했습니다. <편집자>
2007년 이른 봄, 스무 살 초반의 모든 시간을 담았던 학교를 떠날 때 다짐했다. 서강에서 만났고, 나를 영글게 했던 사람들과, 그 공간에서 배우고 느꼈던 진실된 모든 것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인간으로 살겠다고 말이다. 비장했던 다짐은 친구들이 졸업 이후 취업을 선택했던 것과는 달리 공부를 이어가기로 결정했다. 이를 위해 프랑스로 유학하겠다는 계획이 세워졌다. 그렇지만 프랑스 생활 전반에 대한 걱정과, 학부 시절 공부한 프랑스 문화학과 사회학 전공을 연극학으로 전환하는 데에 관한 부담은 매우 컸다.
5년이 지난 지금, 아직 성공적으로 파리에 머물고 있다. 파리 3대학-소르본 누벨(Université Paris III–Sorbonne Nouvelle)에서 2년간 연극학 석사 과정을 마치고 파리에 위치한 몇몇 극장에서 인턴과정도 거쳤다. 기회가 닿아 2008년부터 파리 국립 오페라(Opéra national de Paris)에서 일하고 있는데, 공연 마케팅부터 티켓 예약까지 관객이 공연을 만나러 오는 과정에 필요한 거의 모든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이 가운데 연간 회원 프로그램을 개발 및 관리하고 이에 관한 예약을 담당하는 것이 내가 맡은 주된 업무다. 파리 국립 오페라단이 공연하는 전체 시즌 동안 좌석의 30% 가량이 연간 회원 프로그램으로 판매되는데, 미리 판매되는 좌석이 많을수록 높은 객석 점유율을 보장할 수 있기에 무척 중요한 일이다.
프랑스 문화학을 전공하던 학창 시절에는 극장에서, 그것도 우리나라가 아닌 프랑스에서 일하게 되리란 생각은 전혀 못했다. 어렴풋이나마 문화계에서 종사하면 좋겠다는 마음은 서강에서 하루하루 보내면서 열정으로 변해갔다. 서강학보사에서 문화부 기자와 편집국장을 거치면서 예술과 문화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찬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내 이야기를 그들에게 하면서 문화와 관련된 일을 하면 행복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국제문화학부가 주최한 서강 국제문화축제 행사로 메리홀에서 연극을 올리면서 공연예술에 대한 특별한 애정을 갖게 됐다. 2006년에는 모교와 리옹2대학(Université Lumière Lyon 2)이 체결한 파트너쉽 프로그램 덕택에 한 학기 동안 교환학생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었으니 ‘프랑스’와 ‘공연’으로 요약할 수 있는 지금 생활은 서강과 함께 했기에 실현된 셈이다.
한국으로 돌아올지, 돌아오면 어떤 일을 하게 될지 지금은 알 수 없지만, 파리에서의 요즘 생활은 도시 곳곳에 넘치는 흥미로운 공연과 풍부한 문화 행사들 덕분에 아주 만족스럽다. 외국인으로서 겪어야만 하는 일상의 소소한 불편함이 무색할 정도다. 이번 여름, 한국에 잠시 귀국했을 때 학교를 들렀다. 새 건물 때문에 삼민광장은 사라져 있었고, 보금자리였던 하비에르관(X관)은 보수공사 중이었다. 새로운 얼굴을 한 서강에서 지내는 학생들은 그들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갈 것이다. 학교에서 보낸 시간이 그대로 남아있는 듯해서, 학창 시절 친구들을 도서관 라운지에서 마주칠 것 같은 느낌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예전 기억이 강렬하게 그 공간에서 떠오르는 것을 보니, 나는 아마도 대학 시절의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을 무척 사랑했었나보다.
2007년 이른 봄, 스무 살 초반의 모든 시간을 담았던 학교를 떠날 때 다짐했다. 서강에서 만났고, 나를 영글게 했던 사람들과, 그 공간에서 배우고 느꼈던 진실된 모든 것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인간으로 살겠다고 말이다. 비장했던 다짐은 친구들이 졸업 이후 취업을 선택했던 것과는 달리 공부를 이어가기로 결정했다. 이를 위해 프랑스로 유학하겠다는 계획이 세워졌다. 그렇지만 프랑스 생활 전반에 대한 걱정과, 학부 시절 공부한 프랑스 문화학과 사회학 전공을 연극학으로 전환하는 데에 관한 부담은 매우 컸다.
5년이 지난 지금, 아직 성공적으로 파리에 머물고 있다. 파리 3대학-소르본 누벨(Université Paris III–Sorbonne Nouvelle)에서 2년간 연극학 석사 과정을 마치고 파리에 위치한 몇몇 극장에서 인턴과정도 거쳤다. 기회가 닿아 2008년부터 파리 국립 오페라(Opéra national de Paris)에서 일하고 있는데, 공연 마케팅부터 티켓 예약까지 관객이 공연을 만나러 오는 과정에 필요한 거의 모든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이 가운데 연간 회원 프로그램을 개발 및 관리하고 이에 관한 예약을 담당하는 것이 내가 맡은 주된 업무다. 파리 국립 오페라단이 공연하는 전체 시즌 동안 좌석의 30% 가량이 연간 회원 프로그램으로 판매되는데, 미리 판매되는 좌석이 많을수록 높은 객석 점유율을 보장할 수 있기에 무척 중요한 일이다.
프랑스 문화학을 전공하던 학창 시절에는 극장에서, 그것도 우리나라가 아닌 프랑스에서 일하게 되리란 생각은 전혀 못했다. 어렴풋이나마 문화계에서 종사하면 좋겠다는 마음은 서강에서 하루하루 보내면서 열정으로 변해갔다. 서강학보사에서 문화부 기자와 편집국장을 거치면서 예술과 문화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찬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내 이야기를 그들에게 하면서 문화와 관련된 일을 하면 행복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국제문화학부가 주최한 서강 국제문화축제 행사로 메리홀에서 연극을 올리면서 공연예술에 대한 특별한 애정을 갖게 됐다. 2006년에는 모교와 리옹2대학(Université Lumière Lyon 2)이 체결한 파트너쉽 프로그램 덕택에 한 학기 동안 교환학생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었으니 ‘프랑스’와 ‘공연’으로 요약할 수 있는 지금 생활은 서강과 함께 했기에 실현된 셈이다.
한국으로 돌아올지, 돌아오면 어떤 일을 하게 될지 지금은 알 수 없지만, 파리에서의 요즘 생활은 도시 곳곳에 넘치는 흥미로운 공연과 풍부한 문화 행사들 덕분에 아주 만족스럽다. 외국인으로서 겪어야만 하는 일상의 소소한 불편함이 무색할 정도다. 이번 여름, 한국에 잠시 귀국했을 때 학교를 들렀다. 새 건물 때문에 삼민광장은 사라져 있었고, 보금자리였던 하비에르관(X관)은 보수공사 중이었다. 새로운 얼굴을 한 서강에서 지내는 학생들은 그들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갈 것이다. 학교에서 보낸 시간이 그대로 남아있는 듯해서, 학창 시절 친구들을 도서관 라운지에서 마주칠 것 같은 느낌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예전 기억이 강렬하게 그 공간에서 떠오르는 것을 보니, 나는 아마도 대학 시절의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을 무척 사랑했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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