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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송(MBA18기) 동문 일본 대지진 체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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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1-03-18 17:49 조회13,47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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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대참사가 벌어질 당시였던 2011년 3월 11일 요코하마 연구소에서 지진을 몸소 경험한 김재송(MBA 18기) 동문이 글을 보내왔습니다. 제일모직 전자재료부문 사업기획팀에서 부장으로 근무하는 김 동문은 지진, 쓰나미, 원자력발전소 방사선 노출 등 재난이 이어지는 일본 동북부지역과는 떨어져 있지만 일본 열도 전체가 지진으로 흔들렸던 당시, 동경 부근 요코하마시에서 겪은 숨가빴던 실제상황을 정리했습니다. 김 동문에 따르면, 후지제록스, 노무라 연구소 같은 기업들은 재택근무를 실시하고 있지만 요코하마 연구소는 아직까지는 정상근무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사진은 요코하마 기차역 니시구치 방면의 주변 보도가 갈라져 있는 모습입니다. <편집자>


난생 처음 겪어 보는 대지진에 모두들 패닉상태

2011년 3월11일 오후 2시 46분 요코하마 연구소 3층에 있던 나는 갑자기 책상과 건물이 흔들리자 지진이려니 생각했다. 과거 7년간의 일본주재를 통해, 내가 경험한 지진은 대개 5초 정도에 끝나 버리고 길어도 20초를 넘기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에도 잠깐 흔들리다 끝나겠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하지만, 흔들림은 지속되고 거세지자, 나도 모르게 화장실로 뛰어 갔다. 지진이 났을 때 집안에서 가장 안전한 곳은 화장실(4개 기둥이 받치고 있음)이라고 가르쳐 준 일본인 친구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얼마나 다급했는지 어느새 나는 남자 화장실 입구에 있는 장애인 화장실 출입문 손잡이를 꽉 잡고 있었다.

 

지진이 시작된 지, 꽤나 시간이 흘렀다고 생각되었지만, 여전히 흔들림은 약해지기는커녕 더욱 거세지고 있었다. 화장실 문잡이를 잡고 있는 내 눈에도 연구소 건물 전체가 흔들리는 모습이 보였고, 좌우로 흔들릴 때마다 삐걱 삐걱거리는 기분 나쁜 소리가 들렸다. 나도 모르게 얼마 전 지진참사로 많은 생명을 앗아간 뉴질랜드 크라이스티 성당이 떠 오르면서, 지진으로 이렇게도 죽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떡하든 나는 연구소 건물 밖으로 나가기로 마음 먹고, 흔들림이 약해지기를 기다렸다. 그때 갑자기 벽에 고정시킨 방호 철제문 중 한쪽이 풀리면서 요란한 소리와 함께 내가 지나가야 할 복도의 한쪽 통로를 막았다. 그 와중에도 몇몇 사람들이 비상계단으로 내려가기 위해 비틀거리면서 복도를 걸어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이때다 싶어, 비틀거리면서 비상계단 쪽으로 달려갔다. 비상계단은 삐걱거리는 소리가 공간에 울려 퍼져 공포심을 더욱 증폭시켰다. 그나마 나는 3층에 있었기 때문에 짧은 시간 내에 비상계단을 통해 빠져 나올 수 있었다. 1층 로비까지 내려와서 건물 밖인 공터로 달려가니, 십여 명의 사람들이 이미 빠져나와 있었고, 그들과 함께 요코하마 연구소 건물이 지진으로 흔들리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다행히, 요코하마 연구소의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나중에 확인해 보니, 사무실 비품과 벽시계, 정수기 등이 바닥에 넘어져 있었다. 식당 천정에 고정시킨 LCD TV가 흔들려서 바닥에는 톱밥가루가 떨어져 있었고, 또 한번 크게 흔들리면 곧 떨어질 것만 같았다. 비상계단 바닥에는 건물이 흔들리면서 페인트 가루와 같은 하얀 분말가루가 떨어져 있었다.

 

연구소 주변의 주택가에 화재가 발생하였는지, 검은 연기가 솟아올랐고, 멀리서 소방차의 싸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곧이어 연구소 내 인력 모두를 집합시켜 인명피해 및 피해상황 등을 점검했고, 비상식량 및 손전등이 배포되었다. 큰 지진 후에는 항상 여진이 오기 마련으로 여진이 지속하여 발생하자 다들 건물 안으로 들어가기를 꺼려했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모두들 근무하다 건물을 빠져 나왔기 때문에 추운 봄 날씨에 떨어야 했다.


요코하마연구소에서 시나가와까지 4시간의 야간도보

지진 후, 필연적으로 다가오는 것이 교통 및 통신 두절 그리고 전력공급이 제한된다는 점이다. 수도권 지역의 모든 전철과 지하철 운행이 끊어졌고, 가족들 안부가 걱정이 된 직원들은 휴대전화로 가족들과의 통화를 시도했으나, 연락이 잘 안되었다. 연구소 내 조명은 자가발전으로 대체되었으나, 근처 주유소도 전력 공급이 끊기면서 휘발유 주입이 중단되었고, 도로는 갑자기 밀어 닥친 차량들로 주차장이 되었다. 1시간 전에 승용차로 귀가한다던 직원이 50m도 못가서 다시 회사로 돌아 왔을 정도였다.

 

경비실에서 연구소 전기가 11시에 끊긴다는 방송이 있은 후, 연구소에서는 어떡하든 직원들을 안전 귀가시키기 위해, 집과의 거리에 따라 3개 그룹으로 방향을 정했다. 1그룹은 집이 멀어서 도저히 갈 수 없는 사람들로 이들은 회사 근처의 친구 또는 동료의 집, 아니면 근처 학교 강당에서 하루 밤을 지새우기로 했다. 2그룹은 차로 출퇴근하는 사람들로 교통 혼잡으로 지금 돌아 갈 수 없으니, 차가 어느 정도 빠져 나간 늦은 시각에 출발하기로 했고, 3그룹은 걸어서 집에 갈 수 있는 사람들로 되도록 빨리 귀가시키기로 했다.

 

나는 연구소에서 내가 머무는 숙소인 시나가와까지 약 15㎞의 거리를 걸어서 가기로 마음 먹었다. 주말에 볼 자료를 가방에 넣고 국도 1호선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좁은 인도에는 요코하마 방면으로 내려가는 사람들과 동경으로 올라가는 사람들이 뒤섞여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마치 영화의 한 장면에서나 볼 수 있는 대규모 피난행렬에 내 몸을 실었다.

 

이 같은 혼란 속에서도 일본인들은 침착했고, 질서를 잘 지켰다. 어릴 때부터 남에게 폐를 끼치는 것을 가장 부끄러운 것으로 교육을 받았기 때문인 듯싶다. 라면가게에서 줄을 서야 했고, 가족과 연락을 취하기 위해 공중전화 부스 앞에서도 기나긴 줄을 서야 했다. 일본인은 참으로 기다림에 익숙한 국민인 듯싶다. 학생부터 나이든 노인까지, 일본인뿐만 아니라 나를 포함한 외국인들까지 모두들 차가운 밤공기를 들이키면서 열심히 걷고 또 걸었다.

 

이 같은 혼란 속에도 대박을 내는 업종이 있었다. 그 중의 하나가 자전거 점포였다. 집이 너무 멀거나 혹은 너무 많이 걸어 발이 아픈 사람들은 아예 자전거를 사서 타고는 집으로 향했다. 운동화를 파는 잡화점도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길가 편의점도 사람들로 매우 붐비었고 여전히 자기 차례가 되어 계산할 때까지 줄을 서야 했다. 나도 허기져서 몇 군데 식당에 들렸으나,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나 길어 포기하고 서둘러 귀가를 재촉했다.

 

마침내 시나가와(品川) 역까지 오자, 평소에는 볼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집에 돌아갈 수 없거나, 포기한 사람들이 노숙을 결심한 듯 100여명 이상의 사람들이 신문지를 깔고 계단 또는 한 귀퉁이에 앉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듯 허공을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그 중에는 여성들도 제법 있었다.

 

4시간의 야간도보를 마치고 숙소에 도착하였더니, 한국인 스태프가 이곳(24층)도 장난 아니게 흔들렸다고 했다. 일본 대부분의 고층 건물들은 지진설계가 잘 되어 있는 대신, 지진이 발생하면 엄청나게 흔들리고 고층일수록 더욱 많이 흔들린다. 이렇게 흔들리지 않으면 건물이 붕괴된다고 한다. 숙소 1층 로비에는 동남아계 외국인 10여명이 소파에서 자려는 듯 이불까지 가지고 와서 앉아 있었다. 오후에 발생한 대지진과 지속되는 여진으로 불안해서 자기 방으로 돌아가려고 하지 않는다고 한다.

 

나는 시나가와 역에서 노숙을 하고 있을 수많은 사람들을 떠올리곤, 이렇게 잠자리에 누울 수 있음을 감사하면서 잠을 청하였으나, 지속되는 여진으로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 2011년 3월11일 1000년에 한번 있을까 말까하는 진도 9.0의 대지진에 놀랐지만, 이 같은 혼란 속에서 일본인이 보여준 남을 위한 배려심과 인내심에 대해 더욱 놀란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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