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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공원 묘역서 김상옥 17주기 추모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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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1-02-21 11:37 조회16,18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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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운동, 노동운동을 하다 세상을 떠난 김상옥(80 사학) 동문을 기리는 추모제가 2월 20일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 민주열사 묘역에서 열렸습니다.

 

올해로 17주기를 맞는 추모제는 유가족과 김상옥추모사업회에서 주관했습니다. 추모사업회는 서강민주동우회와 고(故) 김상옥 동문이 함께 운동을 했던 한국민주노동자연합, 민족민주운동연구소 관계자로 구성됐습니다. 여기에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유가협), 민족민주열사․희생자추모(기념)단체연석회의(추모연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회원 등 총 32명이 참석했습니다.

 

낮 기온이 12도에 달했고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쬐는 일요일 낮, 고인을 추억하러 온 참석자들은 서로 반갑게 수인사를 나누며 봄날의 온기와 평온을 느꼈습니다. 잘 단장된 무덤에는 머지않아 파란 잔디가 돋아날 것 같았습니다. 이웃한 묘소는 같은 해 비슷한 시기에 운명을 달리한 서울대 출신 이범영 씨 산소가 자리하고 있어 서로를 의지하는 것 같았습니다.

 

유가족으로는 어머니 차옥란 여사와 큰형, 2명의 누나가 참석했고, 정성스레 준비한 제수용품을 상석(床石)에 가지런히 올려놨습니다. 큰형인 김상근 씨는 추모제에 참석해준 동생의 친구, 선후배들에게 가족을 대표해 깊은 감사의 인사를 전했습니다. 그리고 “동생이 자랑스럽고, 늘 추모제에 참석해주는 동료들이 고맙다”고 말했습니다.

 

민주동우회 회장을 지낸 김선택(74 경제) 동문은 인사말로 “17년이란 긴 세월이 흘렀고 많은 것이 변했지만, 추모제가 마냥 슬픈 일만은 아니다”라며 “여기에 오면 정정하신 어머니를 뵐 수 있어 기쁘고, 김상옥을 사랑하는 옛 동지들과 재회할 수 있어 반갑다”고 말했습니다. 김 동문은 이날 ‘17주기, 기쁜 마음으로 상옥이를 기리며’ 제목의 추도사를 썼습니다. 한 구절을 옮겨봅니다.

 

“오랜 시간 우리를 이 자리에 잡아두는 것은 아마도 너의 투박한 행동 뒤에 숨어 있는 해맑음이라 생각한다. 이때쯤 영수한테 너를 만나러 가자는 연락을 받게 되면, 남을 배려하고 멋쩍어 하며 머뭇거리는 네 모습을 떠올리곤 한다.(중략)

병상에 있던 너의 모습을 생각하면 마음이 저려온다. 두꺼운 먼지로 뒤덮인 상념들이 희뿌연 연기가 피어나듯이 눈앞으로 다가온다. 시린 마음에 몸이 움찔해진다.(중략)

상옥아! 앞으로 우리는 너로 인해 슬퍼하지 않으련다. 너 때문에 이렇게 반가운 사람들을 변함없이 만날 수 있는 것이다. 너도 오늘은 하늘나라에서 우리와 함께 즐거운 마음으로 네가 즐겨하는 소주를 마셔보자. 그리운 얼굴을 떠올리며 즐거웠던 옛이야기를 나눠보기로 하자. 이제 나이 들었으니 통음은 하지 말고.”

 

민주동우회 회장인 이훈(84 사학) 동문은 술을 따르며 “재학시절 함께 지낸 선배를 ‘형’으로 기억한다”면서 “상옥이 형이 꿈꾸던 ‘새날이 올 때까지’ 노력하되, 더 이상 흔들리는 삶을 살지 않겠다는 각오를 새삼 다짐한다”고 말했습니다.

 

늘 추모사업회 일을 도맡아 해온 김영수(80 정외) 동문은 이날도 17주기 추모제를 준비했고, “초심을 잃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 우리는 상옥이 묘소를 찾는 것”이라며 사회를 보고 행사를 진행했습니다.

 

유가협에서는 김세진, 김귀정, 강경대 열사의 부모가 오셨고, 추모연대 대표로 참석한 김명훈 의장은 “민중이 주인이 되는 세상에 대한 신념이 강했고 늘 소금땀 흘리며 일하던 김상옥 동지가 생각난다”면서 “그는 나에게 투사보다는 옆에서 함께 일하던 친구이자 동생으로 다가온다”며 고인을 회상했습니다.

 

고 김상옥 동문의 매형인 이창규 씨는 아린 마음을 가누지 못해 추모제에 참석 못한 대신 <회상>을 제목으로 한 시를 써서 보냈고, 김영수 동문이 낭송했습니다. ‘아픔도, / 잔잔한 미소 속에 / 넘기고 참아온 / 모습 / 아련히 떠오른다 // 파란 하늘빛이 / 개구쟁이처럼 /  점찍혀 있던 볼 / 어느 날 홀연히 / 모란공원에 휴식을 취했다 / 말없이 떠나고 말았다’

 

추모제를 마친 참석자들은 손에 하얀 국화꽃을 들고, 산소 둘레를 싼 돌 위에 네모진 꽃무덤을 만들고 고인을 기렸습니다. 이어 모란공원 입구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늦은 점심을 들었습니다. 떡, 과일, 전, 홍어무침을 나누었고, 서로의 근황과 안부를 묻고 고인의 추억을 되새기며 추모제를 마쳤습니다.


◇ 김상옥 동문 약력

- 1961년 1월 7일 서울 출생
- 1980년 서울양정고 졸업. 서강대 문과대학 입학. 1992년 사학과 졸업
- 1983년 학내시위 주도로 구속, 그해 12월 형 집행정지로 출소
- 1986년 구로지역 공장에서 노조설립 투쟁으로 구속, 1987년 10개월 형을 마치고 출소
- 1988년부터 1993년까지 한국민주노동자연합, 민청련 부설 민족민주운동연구소, 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연구소 등에서 활동
- 1991~1992년 서강민주동우회 사무국장 역임
- 1994년 2월 19일 오전 8시 원자력 병원에서 위암으로 사망

<33세로 마친 삶 약술>
 
전두환 정권에 의한 광주학살이 자행된 1980년 서강대에 입학해 학생운동에 가담했다. 대학 4학년 때 학내시위를 주도해 구속됐고, 출소 후에는 노동운동의 길을 걸었다. 낮에는 공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소모임이나 노동자집회, 거리시위에 참여했다. 노동조합 설립투쟁으로 다시 10개월간 감옥살이를 하고 난 뒤에도 노동현장 생활을 계속했으나 허리 디스크와 위장병 등으로 고생했다. 노동운동에 대한 열정, 역사와 사회 진보에 관한 굳건한 신념을 가지고 노동운동 단체에서 상근하며 노동자 모임을 조직하고 현장투쟁을 지원했다. 또 재야 민주화운동 단체와 연대하며 말보다 행동을 앞세우되 정책능력을 발휘하며 정세를 연구하고 운동방향과 정책을 수립하는 일에 몰두했다. 두 번의 투옥과 수십년간 쉼없는 민주화운동의 과정에서 받은 억압, 긴장, 스트레스로 위암에 걸려 1994년 2월 19일 운명했다.







<유족을 대표해 감사인사를 하는 큰형 김상근 씨(맨 왼쪽). 이어 강경대 열사의 부친 강민조 유가협회장과 김상옥 동문의 모친 차옥란 여사. 한 분 건너 큰 누나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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