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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사진부 기자 최순호(87.정외)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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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04-09-24 11:09 조회13,31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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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한자의 슬픔’ 보듬는 ‘사랑의 앵글’

최순호(87.정외) 조선일보 사진기자 

 

청바지와 티셔츠 차림, 운동화 그리고 배낭여행할 때나 쓸 법한 제법 큰 백팩. 기자라기보다 사진작가 이미지에 가까웠다. 안경 넘어 상대방을 바라보는 눈빛에서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순박한 분위기가 배어나온다. 

 

조선일보 사진기자 최순호 동문(87.정외). 그는 언론사 사진기자들 사이에서 ‘마당발’로 통한다. 사진작가와 달리 활동범주가 어느 정도 제약돼 있는 신문업계에서 최동문이 ‘조선족’과 ‘외국인노동자’를 비롯, 거대한 여러 사회 문제에 각별한 관심을 많이 기울이고 있고 실제 이와 관련해 다방면의 활약상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한 신문사의 혹자는 ‘조선일보 기자 같지 않은 분위기의 기자’라는 제법 모호한 말로 그를 칭찬했다. 

 

외국인 노동자 병원 개설 주역 

최 동문은 특히 ‘조선족’과 관련해 사진기자 생활 13년만에 최근 조그만 결실을 맺었다. 지난 9월 3일부터 열흘 동안 광화문 금호아트갤러리에서 지난 10여년간 중국 조선족의 생활모습과 국내에서 살고 있는 조선족의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 형식의 사진전 ‘핑구어리’를 개최한 것. 사진전에 맞춰 사진집도 함께 출간됐다. 

 

"지난해 말부터 이번 사진전을 기획했습니다. 조선족에 대한 관심은 지난 95년 2월 중국 출장을 계기로 시작됐죠. 그 때부터 카메라에 담기 시작한 사진을 이번에 모아 열게 된 것이죠." 

 

우연히 가게된 출장이 조선족에 대한 관심을 쏟게 한 계기였다면 그로부터 3년 뒤 연변에서 1년 동안 지낸 중국연수는 그의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최 동문 설명에 따르면 1987년 6월 항쟁 등 사회적 흐름상 ‘공부 안한 세대’인 자신이 태어나서 그렇게 공부를 열심해 한 적은 처음이었다고 한다. 중국어에 대한 사전지식이 전무했던 그는 공부가 너무 재미있어 매일 3시간 밖에 자지 않고 어학 공부를 했다. 그 덕분에 1년 후 대학 어학원을 졸업할 즈음에는 유학생 대표로 졸업식 사회를 볼 정도로 유창한 중국어 실력을 갖출 수 있었다. 

 

"그 때부터 조선족들, 그리고 한국에서 불법노동자로 일하며 사는 조선족들에 대한 애착이 커져갔습니다. 이번 전시회가 끝난 이후에도 여기서 멈추지 않고 그동안 인맥을 쌓아놓은 조선족들과 지속적으로 연계해서 사진작업을 계속 병행해 나갈 예정입니다." 

 

최 동문은 이번 서적 출간을 계기로 문화관광부로부터 학술진흥기금 3천만원을 받게 된다면 사진활동을 꿈꾸는 조선족들에게 경제적인 도움을 주고 싶다는 뜻도 내비쳤다. 

 

최 동문의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은 얼마전 ‘외국인 노동자 전용 병원’을 설립한 것과도 맥락을 같이한다. 최 동문은 지난해말 영하의 추위 속에서 쓰려져 3시간 동안 119와 112에 살려달라고 도움을 요청했으나 결국 숨진 한 조선족 노동자의 죽음을 취재하러 나갔다가 서울 구로동 외국인노동자의 집에서 김해성 목사를 만났다. 그리고 김 목사와 함께 단돈 몇푼이 없어 이국의 땅에서 죽어가는 외국인을 한 사람이라도 더 살려보자고 의기투합해 결국 지난 7월 22일 가리봉동에 ‘외국인 노동자 전용 병원’을 설립했다. 조선일보도 이 병원 설립 모금 활동에 참여했다. 

 

그 결과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다. 한신교회가 병원 건물을 기증했고 한라건설에서는 무료로 리모델링을 해줬으며 의사 및 간호사들이 자원봉사를 자청했다. 현재 약품은 의료구호단체가 무료로 공급해준다. 

 

최 동문은 "며칠 전 한 익명의 시민이 병원 운영하는데 보태라며 자신의 보석함을 보내왔더군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아직도 우리사회가 따뜻하다는 걸 느낍니다." 

 

88년 서강학보사 시절 명동성당 조성만씨 투신 촬영‘특종’

10여년간 조선족의 생활상 담은 사진전‘핑구어리’열어

 

그는 대학 때 학보사 사진 기자로 활동하면서부터 사진과 인연을 맺었다. 특히 대학 2학년인 88년 명동성당에서 일어난 대학생 집회에 취재나갔다 우연히 서울대 조성만 열사가 투신 자살하는 장면을 카메라에 담은 `대대적인 특종'은 그의 운명을 결정하기에 충분했다. 이 사진은 당시 창간호를 낸 한겨레가 그의 이름을 빌어 독점 보도했고 덕분에 그도 유명해졌다.  

 

하지만 한겨레에 사진을 독점제공한 그가 왜 조선일보에 입사하게 됐는지는 다소 의아했다. 

 

"그런 질문을 아주 많이 받았습니다. 제가 조선일보 입사시험을 치렀을 때 방상훈 사장이 면접에 들어와 제게 묻더군요. 첫째는 왜 당시 조선일보가 아닌 한겨레에 사진을 제공했냐는 것이고 둘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일보에 시험을 친 이유가 뭐냐라는 겁니다. 한겨레에 사진을 준 건 당시 한겨레 기자가 제게 가장 먼저 연락을 해왔기 때문입니다. 한겨레가 아니라 그 어느 매체가 제게 가장 빨리 연락을 했다면 아마도 줬을 겁니다. 그리고 제가 조선일보에 입사지원을 한 이유도 생각보다는 단순해요. 한겨레에 입사하고 싶었지만 제가 졸업할 즈음 한겨레는 사진기자를 뽑지 않았거든요." 

 

이런 에피소드는 제쳐두더라도 대학 학보사 시절이 현재 그의 바탕을 이뤄놓은 것임에는 틀림없는 듯 보였다. 대학생들의 데모가 일상화돼 있던 그 시절, 최동문은 매일같이 최루탄의 현장을 누볐고 현직 신문사 및 외신 기자들과 친분을 쌓으며 프로들의 어깨 너머로 사진 기술을 터득했다.

 

가족참여 ‘…동네이야기’ 구상 

사진에 대한 그의 애착은 당시 암실 조차 없어 이화여대의 암실을 빌려쓰곤 했던 서강학보사에 결국은 암실 하나를 만들어주고 졸업했다. 무엇이 그렇게 최 동문에게 약자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키게 했는지 궁금했다. 그는“제가 지리산 산자락에서 자란 촌놈입니다. 그래서 어릴 적부터 어렵고 힘들게 사는 이웃들을 봐왔고 또 그런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다는 욕구가 굉장히 강했어요. 학교 다닐 때도 도시냄새 풍기며 잘난 척하는 친구들한테는 절대 지지 않으려고 했죠. 대학시절 지켜봤던 투쟁의 모습도 마찬가지일 겁니다.”라고 말했다.

 

이번 조선족 사진전은 최 동문 사진인생의 정점이 아닌 시작이다. 두만강의 사계절의 모습을 담은 ‘두만강의 사계'와 가족들이 함께 작업하는‘우리동네 이야기'는 현재 기획단계에 있다. 특히‘우리동네 이야기'는 최 동문과 그의 아내, 그리고 초등학교 4학년, 유치원생인 두 아이 등 모두 4명이 각자의 디지털 카메라를 통해 바라본 동네의 이야기를 담아낼 예정. 내년 가을쯤 금천구청에서 사진전을 가질 계획이다. 이밖에도 그는 한국의 최고 부촌인 강남에서 살지만 제대로 갖춰진 집이 아닌, 비닐하우스에서 사는 불우한 이들의 모습도 언젠가 꼭 카메라에 담아보고 싶다고 했다. 카메라 렌즈로 사회적 약자를 바라보는 시선, 그것은 사진이 아닌‘사랑'이다.

 

문주영(95·국문) 경향신문 전국부 시청팀 기자 · 본보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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