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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인물-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된 시인 황지우(181·철학) 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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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유진아 작성일06-03-27 15:26 조회13,27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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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라는 나이는 자신의 분야에서 등뼈역할을 해야하는 것 아닙니까”

황지우(본명 황재우, 철학과 석사·81) 시인을 만나러 가는 길. 서울 성북구 석관동 한국예술종합학교로향하던 차 안에서 그의 시‘너를 기다리는 동안’을 떠올렸다. 언어를 자유자재로 주무르는 시인이자, 미술, 연극분야까지 넘나드는 전방위 예술가인 그와의 만남을 오랫동안 설레며 기다려 왔기 때문. 지난 겨울 강원도 인제 백담사 만해마을에 틀어 박혀 시 창작에 몰두했던 그는 올봄 새로운 임무를 짊어지고 속세로 돌아왔다.


황지우 시인이 3월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예종)의 총장으로 취임했다. 2005 프랑크푸르트도서전 주빈국 조직위 예술총감독으로서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한 것이 그의 총장 선출 배경으로 알려졌다.
  

3월4일 오전 예종 본관의 총장실에서 만난 그는 총장 업무를 보고받느라 여념이 없었다.“ 시를 써야 할 분이 갑자기 웬 대학 총장이냐”는 질문에 그는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주변의 요구를 칼같이 잘라버리고 시인의 길을 가야했는데, 모질지 못해 덤터기를 썼어요. 그래도 50대라는 나이는 자신이 몸담은 분야에서 등뼈 역할을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이제는 세상의 허리로서 자기만의 삶을 주장할 나이가 아닌 거죠. 마치 군대에 두 번가는 기분으로 총장직을 받아들였습니다.”


사실, 올해 그는 안식년 휴가를 받아 몽골 초원으로 떠날 생각이었다고. 건강이좋지 않은 데다, 큰 행사를 준비하면서 계속 밤샘 작업을 한 탓해 그는 지난해 독일에서 귀국한 뒤 닷새를 앓아누웠다고 한다. 그러나 ‘생애의 마지막 공익근무’라고 여겼던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총감독 일을 마치기가 무섭게, 예종 총장직을 수행하라는 ‘제2의 군 복무’요청이 떨어진 것이다.


황 총장은 흔히‘1980년대 엄혹한 권위주의 체제를 파격적인 언어로 비판한 저항시인’으로 통한다. 1973년 서울대 미학과 재학 시절 박정희 정권에 항거한 학내 시위사건으로, 1980년엔 광주항쟁에 연루돼 구속된 전력이 이를 뒷받침한다. 그는 끔찍한 5월의 광주를 목격한 상처와, 고문에 못 이겨 동료를 배신했다는 자괴감으로 시를 토해냈다.


하지만 ‘문학의 은둔’ 을 주장하며 무정부주의자처럼 살아온 그도 이제는 제도권 안으로 진입했다.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으로 나랏일을 시작했고, 이제는 국립예술학교의 총장까지 됐으니 말이다. 문화권력을 쥔 그가 변절해버리는 건 아닐까. ‘혹시나’하는 염려에 대해 그는 단호한 목소리로 항변한다.


“시대가 달라졌어요. 과거, 제가 대항한 것은 권위주의입니다. 하지만 사회가 탈권위주의화 되면서 그때의 대항자들이 사회의 중심에 서기 시작했어요. (제가 총장직을 맡게 된 것도) ‘자신이 활동해온 영역에 대한 책임감’의 표현이지, 결코 변절이 아닙니다. 시인이 총장이 되고 광대가 장관이 된다는 것은 바로 우리가‘열린사회’로 나아간다는 증거입니다. 최근 문화예술 분야에서 현장 예술가들이 CEO로 등용되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가 문화예술인에 대한 신뢰를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총장직을 소명으로 받아들인 그는 예종의 발전을 위한 다양한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있다.“ 미학으로 단련된 창의적 비전을 통해예종을 한국 문화예술 부흥의 전초기지로 만들겠다”는 것이 그의 각오다.


“실기 중심 교육이 예종의 성공을 이끌었다고 봅니다. 제가 특히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장르간 융합 교육’입니다. 학생들이 자신의 전공은 물론 다양한 예술 분야를 넘나들면서 공부할 수 있는 다학제(多學際)적 흐름을 만들어주려고 해요. 창의적인교육 기반을 갖춰 백남준과 같은 예술가를 더 많이 키워내려고합니다. 기초예술과 문화산업 간의 활발한 교류를 통해 콘텐츠 생산성을 높여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 예종의 임무라고 생각합니다. 21세기 부존자원이 없는 한국을 먹여 살리는 것이 바로 문화·예술이거든요. 예종은 바로 우리 사회의 ‘풍요의 꿀’이 될 겁니다.”


이야기를 나누다 마주친 시인의 눈은 유난히 크고 맑았다. 모진 풍상을 겪으며 세상의 희로애락을 모조리 알아버린 50대 중년의 눈이 그토록 순수해 보일 수 있다니 신기한 노릇이다. 그는 1981년 철학과 대학원에 입학하며 서강과 첫 인연을 맺었다. 다른 학교들은 시위전력을 들어 그의 입학을 거부했지만, 서강은그를 따뜻하게 맞아줬다는 것.

 

“서강에게는 참 고맙습니다.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줬으니…. 서강대 석사학위 논문을 쓰는 것은 서울대 박사학위 논문을 쓰는 것과 맞먹는 강도예요. 심지어 제가 석사논문을 쓸 때, 초등학생이던 아들이 가정통신문의 아버지 직업란에 '논문’이라고 썼을 정도라니까요. 허허.”

 

인터뷰를 마칠 즈음, 책임감의 덫에 걸린 시인에 대한 연민이 밀려들었다. 아니, 앞으로그의 시를 4년간 더 기다려야 한다(총장 임기는 4년이다)는 아쉬움이 더 컸다. “그렇게 바빠서 시는 언제 쓰실 거냐”고 원망하자,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그의 답변이 돌아왔다.

 

“‘당분간 시를 못 쓴다’고 생각하니 위기감이 들어선지, 요즘 제 속에서 시가 부글거려요. 이제 막 시가 나오려고 해요. 지금은 시에게 대단히 미안해요. 지금까지 시한테 받은 것이 많았는데, 이제는 제가 되돌려줄 차례예요. 미래의 예술가를 양성하는 학교의 총장으로서 한국 문화의 발전을 꾀하는 것도 결국 시에게 진 빚을 갚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남희(98·영문) 여성동아 기자·본보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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