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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선 원로교수 사은잔치, 국문과 동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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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0-10-28 13:27 조회15,61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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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국문학과 동문회(회장 71 홍장학)가 원로 은사를 모시고 사제의 정을 나누면서 동문끼리 친목을 도모하기 위한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교정에 단풍이 물들기 시작하던 10월 22일 저녁, 이재선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를 모시고 준비한 사은회 및 동문회였습니다.

애초 김열규, 정연찬, 이승욱, 김학동, 김완진 명예교수님도 함께 모시려했으나 건강상 이유를 비롯해 개인 사정이 여의치 않아서 함께 자리하지는 못했습니다. 

이날 오후 6시 30분부터 동문회관 2층에서 시작한 리셉션에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한 동문은 30여 명에 달했습니다.

일찌감치 참여해 서로의 반가운 얼굴을 마주보며 환담을 나눈 이들의 공통점은 이날 모신 이재선 교수로부터 학창 시절 귀한 가르침을 얻었다는 기억이었습니다.

행사 사회를 맡은 최시한(71) 동문은 “개교 50주년의 의미를 다시 돌아보고, 창과 46주년을 기념해 국어국문학과 동문회는 원로 교수 사은회를 통해 정례 모임을 개최해나가려 합니다”라며 개회를 알렸습니다.

동성고등학교 교감선생으로 재직하고 있는 홍장학(71) 회장은 정지용 시인의 시 ‘고향’을 낭독한 뒤 ‘귀소본능’을 화제로 꺼내 “잃어버린 정체성을 되찾고픈 욕망 때문에 누구나 가끔씩 그리운 시절로 돌아가고픈 생각에 시달리게 됩니다”라고 인사했습니다.


<인사하고 있는 홍장학(71 국문) 국어국문학과 동문회 회장>

그러면서 홍 동문은 “다가오는 창과 50주년 기념사업으로 원로 교수님과 초창기 동문들의 회고록을 발간하겠습니다”라며 “국문과가 창설되던 때의 전후 상황, 그리고 초창기 서강 국어국문학과 주역들의 기억을 재구하는 작업에 원로 교수님과 초창기 선배님을 비롯한 국문과 동문들이 동참해 주실 것을 당부 드립니다”라고 요청했습니다.

초창기 서강 국문과의 학문적, 정신적 흔적을 더듬어 복원하는 일은 서강 국문인의 자부심과 정체성을 되찾을 수 있고 향후 국문과가 지향해야 할 가치를 모색할 수 있다는 취지에서였습니다.

이후 참석자들은 자기소개를 차례로 갖고 이재선 교수와 교감할 채비를 갖췄습니다.

김성호(67) 동문은 “입학 면접시험에서 지원 동기에 대해 방송국에 취직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가 졸업 내내 ‘국어국문과’가 아니라 ‘방송국문과’ 학생으로 이단아 취급을 받았습니다”라고 농담했습니다.

이에 김창수(67) 동문은 “저야말로 이단아입니다. 공무원 생활하다가 지금은 배 만들고 있으니까요”라고 소개했습니다.

이날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연구원이자 북한 전문가인 오공단(67) 동문도 참석해 “G20 서울 정상회의 기조 발표자로 귀국했다가, 마침 일정이 가능해 동문 모임에 왔습니다”라고 반가움을 표했습니다.

송영준(67) 동문은 “앞서 이야기한 김성호, 오공단 등 훌륭한 동기를 두고 있는 동문입니다”라고 겸손해했고, 심재방(70) 동문은 이에 대해 “예전에 송영준 선배가 운영하는 출판사에서 시집을 낸 적이 있습니다”라며 반가움에 고마움을 섞어 표현했습니다.



이진희(64) 동문은 “벌써 40년째 이곳 신수동에서 남편(62 영문 정진수)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라고 인사했고, 김현덕(73) 동문은 “오랫동안 다닌 국민일보에서 퇴직하고 현재는 인터넷 언론사에 몸담고 있습니다”라고 소개했습니다.

뒤이어 송효섭(73), 김현주(73 무역) 동문은 “모교 국문과 교수로 일하고 있습니다”라고 인사했고, 김남미(89) 동문도 “국문과 대우교수로 근무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조경임(84) 동문은 “학창 시절부터 고전 소설에 관심 많아서 한문 공부를 꾸준히 한 덕분에 지금은 한국고전번역원에서 승정원 일기를 번역하고 있습니다”라고 근황을 알렸습니다.

이어 조영근(84) 동문은 “산업은행에서 20년째 일하고 있습니다”라고 소개했고, 황길영(84) 동문은 “항상 마음만 동문회에 있다가 이번에는 몸이 왔는데, 막상 와보니 참 좋습니다”라고 마음을 전했습니다.

표정옥(90 영문) 동문은 “학창 시절 이재선 교수님 수업을 듣고 나서 인생 방향을 정하고 모교 국문과 대학원으로 진학해 현재는 국문과에서 일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고, 권은(95 영문) 동문은 “현대소설로 국문과 석사 과정을 마쳤고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중입니다”라고 소개했습니다.

조경은(98) 동문은 “오늘 참석자 가운데 막내지만 저도 서른 살은 넘었습니다”라고 말해 웃음을 선사했습니다.

이밖에 김경수(81), 이정옥(82), 김병창, 김연경, 서승석, 이창섭, 차효선(이상 84), 오윤호(93), 장일구, 장성열(이상 87) 동문 등도 자기소개와 더불어 이재선 교수님의 건강을 기원했습니다.

뷔페로 준비한 저녁 식사 이후 국문과 동문회는 초청 원로 교수인 이재선 교수님께 백화점 상품권과 함께 총동문회가 장학금 마련을 위해 판매하는 개교 50주년 기념와인 2병을 기념 선물을 건넸습니다.

이후 이 교수는 “제가 1969년에 서강에 부임했으니 벌써 41년 세월이 흘렀습니다”라며 “서강의 초창기에 훌륭한 국문과를 만들기 위해 뜻을 같이 했던 김열규, 김완진, 김학동, 정연찬, 이승욱 교수님 등이 그리워집니다”라고 소감을 말했습니다.


<참석한 동문들에게 인사하는 이재선 교수>

그러면서 20대 총각으로 서강에서 교수 생활을 시작하기까지 김열규 명예교수가 “함께 서강에 가서 좋은 국문과 만들자”라고 권유했던 일화와 더불어 학사 행정 관리에 철저하셨던 트레이시 신부님과의 추억담을 소개했습니다.

이 교수는 “예수회 문장인 ‘IHS’를 ‘서강 국제 고등학교(International High School)’라고 부르기도 했고, ‘SHI’라 거꾸로 읽어서 ‘삼강 하드 아이스크림’이라고 표현한 적도 있다”라며 유머 감각도 발휘했습니다.

이 교수는 특히 “다른 학교에서 1년 동안 수업할 분량을 서강에서는 한 학기만에 다 떨어지곤 했습니다”라며 “훌륭하신 교수님들과 함께 서강을 이끌어 가야했고, 무엇보다 매섭게 질문하던 학생들 덕분에 서강에 있는 동안 하루도 맘 편한 적은 없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교수는 “저는 서강 졸업생 이상의 졸업생입니다”라며 “2002년 정년을 맞았지만 요즘도 로욜라도서관에 일주일에 한 번 들러서 책을 읽습니다”라고 근황을 이야기했습니다.

끝으로 이 교수는 ‘작작’이란 우리말 부사를 인용해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을 정도로 알맞도록 ‘작작’의 생활 철학을 가집시다”라고 덕담했습니다.

국문과 동문들은 이 교수의 인사에 화답하듯 교수님과의 추억을 공유하는 시간을 연이어 가졌습니다.

홍장학 동문은 “교수님 연구실에 항상 걸려있던 예비군복과, 학창 시절 교수님 댁에 놀러 가면 푸짐한 술상을 차려주시던 기억이 선명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이 교수는 “당시 50kg이 안 나갈 정도로 깡마른 몸매였는데, 신장과 체중 미달로 사관학교에 합격하지 못했던 기억이 있습니다”라며 “병역 의무를 마쳤다는 자부심을 드러내고자 군복을 걸어놨던 건 아니었습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김성호 동문은 “이재선 교수님과 김학동 교수님이 서로 상대방의 연구 분야를 공부하기 위해 소설론과 시론을 바꿔가며 강의한 게 기억남는다”라고 인사한 뒤, 소장하고 있던 정지용 시집과 심훈의 ‘그날이 오면’ 초간본을 소개하며 국문학도로서의 열정을 드러냈습니다.


<김성호(67 국문, 사진 왼쪽) 동문이 가지고 온 심훈의 '그날이 오면' 초판본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이재선 교수(사진 오른쪽)>

오공단 동문은 “이재선 교수님으로부터 시적인 감각과 소설 읽는 눈을 키울 수 있었습니다”라고 인사한 뒤 “북한 영변 핵 위기가 있던 1990년대 중반, 미국 군사 지휘자들이 ‘대한민국에 영향이 있더라도 선제공격하자’는 주장이 있을 때, 브리핑을 앞두고 김소월의 시 ‘진달래꽃’을 영어로 낭독해 아름다운 강산에 폭탄 세례가 떨어질 뻔했던 위기를 모면하는 데 기여했던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영변의 약산 진달래꽃’이 한국인에게 얼마나 아름다운 대상인가를 강조하는 동시에 전쟁을 막기 위한 일종의 은유였습니다.

김현덕 동문은 “교수님이 제가 장가갈 때 주례를 서주셨는데, 당시 혼인과 관련된 ‘온갖 잡새’를 모아서 새의 이미지를 활용해 주례사를 하실 때 무척 재미있었던 기억이 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심재방 동문은 이 교수와의 일화 이외에 학창 시절 야구를 무척 좋아했던 오공단 동문을 동대문야구장에서 만난 추억을 전했습니다.

이 교수는 “서강에도 눈물 나는 이야기가 참 많습니다”라며 수업 시간에 현대소설 속 ‘메타포(은유)’에 대한 수업하던 저력을 발휘해 ‘성북동 비둘기’에 빗댄 ‘노고산 뻐꾸기’를 제시했습니다.

5월이면 노고산에 아카시아 숲이 우거져 뻐꾸기들이 많이 울어댔는데, 하도 데모를 많이 하니까 어느새 뻐꾸기들이 최루탄 때문에 다 도망갔다며, 이는 당시 황폐한 대학가의 상징이 아니겠느냐는 설명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이 교수는 로욜라 동산에 세워진 김의기(76 무역) 열사 비석과 관련해 당시 재학생이던 김의기 동문이 신군부가 정권을 탈취한 1980년 광주민주화항쟁을 세상에 알리고자 종로 5가 기독교회관에서 유인물을 뿌리며 투신했을 때 학생처장을 맡았기에 겪어야 했던 당시의 '가슴 아픈 기억'을 더듬었습니다.

“그때 총장이셨던 스킬링스태드 신부님의 요청으로 박홍 신부님과 함께 서울대 병원 영안실을 찾아가 김의기 군의 시신을 확인해야 했습니다. 비석의 글씨로 당시 역사가 전해지고 있지만 제게는 어디까지나 삶의 생생한 기억입니다.”

국문과 동문회는 이어 회계 보고와 기념 촬영을 마친 뒤 호프집으로 자리를 옮겨 동기 모임으로 확대됐습니다.

특히, 이날 동문 모임에서 9명이나 참석해 참석률이 가장 높았던 84학번 동기들은 다음날이 ‘놀토’였던 덕분에 술자리를 새벽 3시까지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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