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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 장의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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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8-01-31 13:32 조회13,18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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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70 신방, 왼쪽), 장의균(70 신방) 동문 

 

장하게 -

1970년 장의균의 친구가 되었다. 그 꿈의 원대함과 마셔대는 막걸리 양에서 내가 친구가 되기엔 족탈불급이었다. 다만 그 꿈을 들어주고 막걸리 대신 밥 좀 먹으라고 잔소리 해대는 관계로선 친구이다. 게다가 1987년 끌려간 이후 오늘까지 30년간, 특히 제발 재심 좀 청구하라고 발길질 해온 시절을 되새김해보면 친구 맞다. 드디어 2017년 11월 30일 무죄 선고를 받고 지인들 58명과 점심자리를 했을 때, 인사말을 시키니 그 녀석 첫 마디가 이랬다.

 

“여기 정훈, 이 자식 때문에 재심 청구한 겁니다. 저는 나라가 제대로 바로 서기 전엔 무슨 법적인 요청을 하고 싶지 않더라고요.”

 

나는 진행하는 입장이어서 파안대소하며 포옹했지만 속으론, 이 녀석 앞으로 더 때려줘야겠구나, 중얼거렸다. 언제쯤 어느 나라가 완벽한 정의로 바로 서겠는가? 죄 없는 사람이 무죄 받는 과정을 보여주어야 그나마 이 나라가 한 걸음씩 바로 나아가지 않겠는가. 내가 존경하는 장한 장의균과 현실적인 문제를 두곤 그렇게 다투어왔다.

 

그는 70년대 어려운 시대에 우리 고대사를 공부했다. 어린 나이에 출판사 개마서원을 설립해 ‘단기고사’ 등을 펴냈다. 나에게 단군신화는 물론 발해와 고구려사를 복원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당시 한국사 교과서는 신라 천년이나 나당연합군 등을 강조할 때였다. 고대 일본은 거의 우리 선조가 건설했다는 이야기를 처음 듣다 보니 다른 친구들은 자리를 뜨기도 했다. 실제로 그는 선조들의 도일 과정을 증명하기 위해 무동력 뗏목을 일본 해안으로 띄워 보내는 실험도 했다. 그 즈음 내 역사관을 깨운 명언이 생각난다.

 

“우리 국시가 지금 반공이지만 극한대립은 5000년 역사에서 50년 미만일 뿐 4950년은 함께 살았다. 당연히 통일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가 한국 고대사의 석학 우에다 마사키 교수(교토대)를 무작정 찾아가 그 연구원이 되었다고 편지를 보내왔었다. 얼마 후 조선왕조실록을 우리 책으로 읽고 싶다며 찾아간 조선대(조총련 계) 도서관 출입 때문에 그는 간첩으로 만들어졌다. 1987년 나는 KBS 다큐 PD로 재직 중이었는데, 갑자기 오후 8시 보도특집이 나간다고 예고가 떴다. 그 시절 8시 보도특집이라며 요란스러우면 거의 정권 홍보프로였음은 우리가 기억하는 바와 같다. 

 

‘장의균 간첩망 사건 폭로사건’이라는 예고에 너무 놀랐다. 내용은 빈약하여 누가 달러를 세는 장면이나 급히 계단 올라가는 구두 뒤꿈치들을 편집한 장면들이었다. 아, 박종철과 이한열에 밀려서 직선제를 선언하기는 했지만 한편으로 필요한 장치를 설치하는구나. “민주화 과정에서 아직 대한민국엔 이렇게 간첩들이 암약하고 있음을 국민여러분은 직시….”

 

재야 사학자이자 통일 운동가는 분단국가에서 그렇게 간첩이 되었다.

 

의롭게 -

장의균은 특이하다. 지금은 출세도 하는 운동권이나 좌파 지식인들과다르다. 우선 조직이 없다. 연·고대생들의 거대한 학생조직들과도 달리 그냥 통일운동을 시도했고, 그러려니까 민족동질성을 회복하기 위한 한민족 고대사를 연구하는 순서를 밟은 것이다. 말하자면 그는 애국 애족자이다. 또 하나의 명언. 

 

“단군 할아버지 이야기 알지? 마늘과 곰, 호랑이 이야기 다 사실이야. 언제나 우리 할머니들은 이야기를 전하실 땐 우화처럼 재미나게 돌려서 스토리를 꾸미셨단다.”

 

이런 애국애족자가 간첩이 되었는데 당국이 그리도 강조하는 전향서를 쓰지 않는 바람에 소위 ‘전향도 하지 않은 간첩’으로 낙인찍힌 셈이다. 얼마나 본인은 힘들었으며 더구나 간첩 가족이 된 마누라와 세 자식들은 어떠했겠는가. 전주교도소에 면회 간 나에게 밝힌 의균의 명언이다.

 

“내가 지금까지 남쪽을 향해서 서있는데 전향하라면 북쪽으로 돌아서란 말이냐?”

 

간수가 나중에 “장선생에게 공영방송국 PD가 면회 오는 걸 보니 간첩은 아닌가 봐요?”라고 말하더란다. 군사정권 시절, 나에게도 모르는 사람이 화장실 옆자리에 다가와 협박하기도 했다.

 

장의균은 말이 아닌 행동으로 어려운 사람들 곁에 있었다. 1970년대 중반 청계천 판자촌에서 배달학당 선생으로서 제정구 선생과 호형호제 했으며 현장에서 정일우 신부님을 ‘일우 형’이라고 무엄하게 불렀다. 2014년 정 신부님 장례미사에서 이병호 주교님 말씀도 비슷했다.

 

“나는 청계천에서 일우라고 불렀다. 그의 본명이 요한인 것을 오늘 주보를 보고야 알았다.”

 

청계천, 양평동 등 난민촌에서 의균은 어려운 사람들 앞에서 위세를 떨지 않고 그냥 함께 있으면서 사는 자세를 배웠다. 그렇게 복음자리를 만들어냈다. 그는 76년 잠실 개미회를 조성해 구두닦이와 넝마주이들과 함께 공동생활을 했다. 거기에 봉사차 찾아온 감리교 신학대학 여학생을 눌러 앉혔다가, 눕혔으니, 그 학생이 ‘팔자에 있는’ 고생을 해온 아내 윤혜경이다.

 

균등하게 -

간절히 바란다. 이 사회가 기회는 균등하게 보상은 정의롭게 이루어지기를. 장의균은 어린이들 미래를 위한 동화책(‘우리 아이들의 나라는’, 1989)도 냈다. 그가 바라는 우리 사회는 더불어, 사람답게, 역사를 사는 공동체(의균네 가훈)이다. 역사를 배운다고 하지 않고 산다고 표현한 이유는 입이나 머리가 아닌 몸으로 살아냄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그는 학창 시절에 단순히 교과서만 외우지 않고, 시외버스 조수도 해보고 어려운 사람들 속에 들어가 그들의 권리도 챙기곤 했다, 실력을 쌓고자 서강대 산업문제연구소에 등록해 프라이스 신부님으로부터 협동조합 이론과 노동조합법을 공부했다.

 

한 가지 고뇌해야 할 일이 있다. 평화시대에 더불어 살아가려면, 압제시대에 투쟁할 때보다 어려운 점이 새삼스럽게 생김을 통감하는 일이다. 어려움 속에서 투쟁할 때는 선명하면 동력이 붙었지만, 평화시대엔 각기 다른 사람들의 작은 가치들도 세심히 헤아려야 하지 않을까.

 

글 정훈(70 신방) 한국 DMB방송 회장, 서강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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