西英會 인터뷰 -2 /한윤우(70영문) 동문
페이지 정보
작성자 김성중 작성일10-11-01 14:22 조회11,524회 댓글0건관련링크
본문
영문과 동문회(이하 서영회)가 이메일 뉴스레터인 'The SEA Letter'를 발행했습니다. 10월 12일에 제1호가, 20일에 제2호가 발행되어 영문과 동문들에게 발송됐으며, 앞으로는 격주로 발행돼 영문과 동문들과 모교의 다양한 소식을 전할 예정입니다.
발행된 'The SEA Letter'를 살펴보면 '파워 인터뷰' 코너가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50주년을 기념해 10년 단위 학번별로 영문과 동문 한 명씩을 선정해 진행한 인터뷰인 까닭에 그 의미도 더욱 크게 느껴집니다.
이에 총동문회에서는 서영회의 협조를 얻어 총 5회로 이뤄진 '파워 인터뷰'를 차례로 옮깁니다. 두 번째 주인공은 현재 풀무원 홀딩스 대표이사로 재직중인 한윤우(70 영문) 동문입니다.
In 서강
▶ 서강대학교 영문과를 선택하게되신 계기는?
고등학교 시절 영어 과목 시간이 많아 흥미가 있고 관심도 있었지만 결정적으로 지원하게 된 것은 당시 고등학교 선생님께서 서강대 영미어문학과를 추천해 주셨습니다.
▶ 당시 서강대학교의 모습은 어땠나요?
우선 신촌역에서부터 정문까지 올라오는 길이 전부 비포장 도로여서 흙길이었답니다. 뿐만 아니라 연탄공장도 있었고 철길도 있었는데, 화물기차가 지나갈 때는 너무 시끄러워서 수업을 못할 정도 였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 건물은 본관C관과 R관만 존재했었지요. 수업은 대부분 본관C관에서 진행되었습니다. 딱 제가 입학할 때 메리홀이 지어져서 저희 때 처음으로 입학식을 메리홀에서 했었습니다.
▶ 선배님의 서강대 영문과시절, 선배님은 어떤 학생이셨나요? 그리고 기억나는 일이 참 많으실텐데, 몇 개 좀 이야기 해주세요!
70학번 경우 영문과의 인원이 총 약 40명의 학생들이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남녀 생활이 익숙치 않아서 대학 시절 동안 남녀사이에 존대말을 했었습니다. 음 당시에는 시대적으로 학생들이 가난해서 사실 잘 그렇게 부유하게는 놀지는 못했던 것 같아요. 잔디밭, 벤치등에서 이야기도 하고 한학기에 한번은 교외로 MT를 가곤 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 수업을 열심히 들었던 것 같네요. 공부를 굉장히 잘했던 건 아니지만, 졸업식에서 최우수, 우수 다음으로 ‘우등’ 이라고 해서 라우데 상을 받고 졸업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신부님의 권유로 교직이수를 하였었는데, 4학년이 되면 교생실습을 나갔어야 해서 당시 중앙 중학교로 나갔습니다. 영문과 학생증 저를 포함하여 3명이 나갔었는데 우연히 제가 다른 선생님들 앞에서 공개발표수업을 하게 되었었습니다. 원래는 공개발표수업에 교수님이 안 오시는데, 그 공개발표수업에는 영문과 3분 교수님이 오셔서 중앙중학교측이나 저도 무척 깜짝 놀랐었는데요. 제가 조금 괜찮게 했는지, 발표 수업 후 교수님께서 저에게 “Mr.Han is born to teacher” 라며 칭찬해주셨던 기억이 나네요. 사실 학교에 발표수업을 잘했다고 소문이 조금 났었던 것도 기억이나구요(웃음)
또 한번은 원래 12시에서 2시 사이 영어1시간이어서 그 전후로 점심을 먹곤 하였는데, 하루는 영어1 전 시간이 비어서 친구들과 함께 간단히 맥주를 하고 들어갔었습니다. 근데 친구 중 한명이 술을 잘 못해서 맥주를 한잔 마시고 얼굴이 벌개져서 수업을 들어갔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브루닉 신부님이 왜 얼굴이 빨갛냐고 물어보셔서 전 시간 열심히 농구하고 오느라 얼굴이 빨개졌다고 겨우 넘어 갔던 일이 있네요. 그 친구는 지금도 술을 잘 못한답니다.
▶ 서강대 하면 독후감과 FA로 서강고등학교라는 애칭이 존재하는데 그때도 설마 독후감과 FA가 있었나요?
그럼요. 제가 다닐 때도 역시 독후감을 썼던 기억이 나네요. 그리고 친구 중 몇 명이 FA를 받기도 했구요. 200자 원고지 20장 분량으로 1학기에는 현대 단편 소설집 2학기에는 고전을 했습니다. 독후감을 쓰기 위해 보았던 ‘백수사’ 출판사의 단편집이 아직도 기억이 나네요. 특히 2학기때는 고전 작품들을 해서 작품을 찾아보기 위해 아현분관의 국립도서관까지 가서 별주부전 등을 봤었습니다. 독후감 마감날이 되면 독후감을 넣는 구멍이 가득 쌓여서 잘 안 들어갔었지요. 그래서 학교 애칭으로 학교 상징인 ‘IHS’를 우리끼리는 International High School라고 불렀습니다.
뿐만 아니라 제가 1학기가 끝나기도 전에 군대 영장을 받아서 6월 25일에 들어가야 했습니다. 1학기 마치기까지 약 2주일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라 1학기를 인정해 주실 수 있나 학과장님께 의논을 드렸더니 그럼 군대가기 전까지는 하나도 수업을 빼먹지 않는다면 1학기로 인정해주시기로 했습니다. 군대를 가야 하는 저에게 까지 FA를 철저히 적용하신거였지요.
▶ 대학시절 아쉬우셨던 점이 있으셨다면?
과에 English Literary Guild 학회가 있었는데 연구보다는 자치활동등 학과회의를 주로 했었는데 4학년때 과대표가 되어 여러가지일들을 통괄했었습니다. 당시에는 6개 대학 서울대, 연대, 고대, 이대, 숙대, 서강대가 함께 영문과 체육대회를 했었습니다. 다른 학교 학생들과 함께 체육대회 뿐만 아니라 게임도 하고 오락회등을 했습니다. 제가 과대표 할 당시가 마침 서강대에서 할 차례였는데 당시의 정치적 상황으로 인해 하지 못했던 점이 아쉽네요.
▶ 기억에 남는 교수님이나 과목은 어떤 분, 어떤 것이 있을까요?
굉장히 많은데 우선 브루닉 신부님이 기억에 남습니다. 영문과 학과장 님이셨는데 영문과 학생들을 아들 딸처럼 어려운 점들을 무척 많이 도와주셨습니다. 특히 제가 시골출신으로 서울 와서 경제적으로 어려웠을 때 장학금 신청을 해주셔서 장학금도 받고 일도 하게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또 키스터 신부님도 기억에 남는데요, 키스터 신부님은 제가 2학년때 미국에서 오셨는데, 한국에 익숙해 지시면서 저한테 한국말을 열심히 배우셨습니다. 일주일에 2번 2시간 오후 3시부터 해서 약 1년여간 함께 한국말 공부를 하였습니다. 한국말 뿐만 아니라 한자도 많이 배우셨지요. 키스터 신부님의 드라마 강의로 부조리 연극을 배웠습니다. 사뮈엘 베게트, 이오네스코 등 희곡을 재밌게 배웠었네요. 함께 공부한 것을 인연으로 키스터 신부님의 초대로 신부님의 서원식 미사를 함께 할 수 있었습니다. 정초에는 신부님들께 가장 먼저 절을 드리기 위해 성당에서 세배를 하기도 했습니다.
▶ 혹시 연락이 끊긴 친구 중에 다시 연락 되고 싶으신 친구분이 있으신가요?
동기중에 ‘정해동’이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연락이 지금 끊기어서 다시 연락이 되었으면 합니다. 당시 정해동 학생은 저랑 동갑이었는데 은행을 근무하면서 학교를 입학했었지요. 직접 돈벌기 위해서 은행도 다니고 학교생활도 병행 했습니다. 그래서 1학년인데 넥타이를 매고 택시를 타고 오던 모습이 기억 나네요 (웃음). 공강시간을 이용해 은행을 다니곤 했는데, 다시 연락이 되면 좋겠습니다.
After 서강
▶ 대학 졸업후에 어떻게 지내셨나요
대학졸업후에 약 10년은 현대 건설을 다녔습니다. 당시는 해외에서 건설 사업을 많이 해서 중동에서 5년 정도 일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는 풀무원으로 옮겨서 회사 생활을 하였습니다. 현재는 24년째 풀무원에서 일하고 있는 중입니다. 회사 다니면서 중간중간 경영학 지식을 쌓기 위해 야간으로 연대 행정대학원과 고대, 카이스트, 서울대의 최고경영자과정을 수료하였습니다. 낮에는 회사에서 일하고 야간에는 공부하는 일이 조금은 힘들기도 하였지만 무척 뿌듯하고 많은 걸 배울 뿐만 아니라 소중한 사람들 역시 얻을 수 있는 경험이었습니다.
▶선배님처럼 CEO가 되고 싶어 하는 학생들에게 한마디를 해 주신다면?
CEO 는 전문성과 보편성을 동시에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분야에서는 적어도 전문가가 되어 전문적 지식을 깊이 알고 있어야 하지요. 자신의 분야 뿐만 아니라 주변 일반적 지식 역시 얇더라고 폭 넓게 알고 있는 보편성 역시 가진다면 크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가지 지식을 얻기 위해 현재 전공과목 외에 교양과목들을 공부한다면 폭넓게 다방면으로 좋을 것입니다.
▶ 선배님 고민이 있어요! 수동적으로 시키는 것만 열심히 하던 고등학교 생활을 지나 자유로움이 주워진 대학생활 속에서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될까요?
저 같은 경우는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서 항상 한달 단위의 일정표를 짜서 가지고 다닌 답니다. 가지고 다니면서 새로 생긴 일정이나, 취소된 일정 등 수정할 것들은 중간중간 수정 합니다.여기 이날 보이세요? 이날은 친구들과 함께 청계산 등산 가는 날이네요.
▶ 선배님이 일하시는 풀무원 어떤 곳인가요? 또, 풀무원의 경영 철학은 무엇인가요?
여러분이 잘 아시다시피 풀무원은 식료품, 건강보조식품 등을 제조, 공급하는 업체 등을 가진 지주회사입니다. 여러분에게 늘 안전하고 깨끗한 먹을거리를 제공해 드리기 위해 노력중입니다. 현재 풀무원의 경영 철학은 ‘TISO’로 T=TRUST 제품을 사서 드시는 소비자들이 신뢰성을 가질 수 있도록, I=INTEGRITY 정직성을 갖고, S=SOLIDARITY 연대의식 또한 갖으며, O=OPNESS 모든 정보를 왜곡하지 않고 누구에게나 개방하는 것을 경영철학으로 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기자의 한마디
인터뷰가 귀찮고 부담스러우실 수도 있었는데, 너무나 성심성의껏, 제가 여쭈어 보는 질문 모두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답변해주셔서 감사드렸습니다. 덕분에 상상할수도 없던 70년 당시의 대학생활에 대해 느끼게 되고 교훈이 되는 말씀까지 들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즐거웠던 시간 다시 한번 감사드리며 ‘한윤우’ 선배님 사랑합니다.
글:송화헌(09 영문)
사진:박현아(09 영문)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