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보는 서강50년_ 11. 굴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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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0-06-07 09:47 조회13,05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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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뚝은 1960년 겨울, 본관 뒤편에 세워졌다. 본관 난방을 위한 굴뚝이었지만, 곧 모교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1994년 철거될 때까지 서강인과 함께 한 굴뚝의 생몰(生沒)을 사진으로 살펴본다.
정리=김성중(01 신방) 기자
주변에 특별한 상징물이 없던 당시, 여의도에서도 눈에 들어올 정도로 높이 솟아 있던 굴뚝이 본관과 더불어 서강의 마루지(랜드마크) 역할을 했다.
1960년대
1970년대
1980년대
1990년대
개교 이후 시간이 흐르면서 노고산 교정은 물론 주변도 많은 변했지만 본관과 굴뚝은 변치 않았다. 서강의 상징은 34년간 한자리를 지키며 서강을 대표했다.
①
굴뚝은 많은 동문들에게 잊을 수 없는 추억의 명소로 남아 있다. 신난자(61 영문) 동문은 재학 당시 굴뚝 위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찍은 사진(①)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이기진(80 물리) 모교 물리학과 교수는 “당시 굴뚝에 올라가서 보는 한강 풍경이 아주 좋았다”고 회고했다.
굴뚝은 1994년 10월 2일 철거됐다. 철근이 꺾여 있어 학생회관(C관) 쪽으로 굴뚝이 기울었고, 기울어짐 현상이 계속 진행돼 붕괴 위험이 컸기 때문이다. 상징성 때문에 보수나 재건축까지 고려됐지만, 막대한 비용이 드는 것으로 조사돼 결국 철거하기로 결정했다.
정리=김성중(01 신방) 기자
주변에 특별한 상징물이 없던 당시, 여의도에서도 눈에 들어올 정도로 높이 솟아 있던 굴뚝이 본관과 더불어 서강의 마루지(랜드마크) 역할을 했다.
1960년대
1970년대
1980년대
1990년대
개교 이후 시간이 흐르면서 노고산 교정은 물론 주변도 많은 변했지만 본관과 굴뚝은 변치 않았다. 서강의 상징은 34년간 한자리를 지키며 서강을 대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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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뚝은 많은 동문들에게 잊을 수 없는 추억의 명소로 남아 있다. 신난자(61 영문) 동문은 재학 당시 굴뚝 위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찍은 사진(①)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이기진(80 물리) 모교 물리학과 교수는 “당시 굴뚝에 올라가서 보는 한강 풍경이 아주 좋았다”고 회고했다.
굴뚝은 1994년 10월 2일 철거됐다. 철근이 꺾여 있어 학생회관(C관) 쪽으로 굴뚝이 기울었고, 기울어짐 현상이 계속 진행돼 붕괴 위험이 컸기 때문이다. 상징성 때문에 보수나 재건축까지 고려됐지만, 막대한 비용이 드는 것으로 조사돼 결국 철거하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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