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인터뷰] 서강과 30년 동고동락 김영애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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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선비 작성일10-04-27 16:31 조회16,923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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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자다방을 운영한 김영애 씨는 추억 속 고운 아주머니로 남고 싶다며 사진 촬영을 정중히 사양했다. 이에 1986년 당시 운영하던 왕자다방에서 찍은 사진을 보내왔다.>
‘왕자 아줌마’로 유명, 다방 · 주점 운영… “지금도 서강을 사랑해요”
스스로를 ‘왕자 아줌마’라 부르는 김영애 씨는 30년 동안 서강인들을 위해 음악과 차를 선물했다. 금성사, 왕자다방, 제로, 고호, B.K, 산까치, 비욘드 등 197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후반에 이르기까지 늘 모교 인근에서 레스토랑과 커피숍 등을 운영하며 서강인의 성장을 지켜봤다. 단골이었던 학생들은 어느새 한 가정의 부모가 됐는가 하면, 모교 교직원이 되어 학교로 돌아오기도 했고, 예수회 신부도 됐다.
1977년 ‘금성사’라는 레코드점을 운영한 게 서강인들과의 첫 만남이었다. 27세 되던 해였다. 서강대 정문 맞은편에서 신촌로터리 방향으로 150미터 정도 내려가면 현재 으리으리하게 자리 잡은 오피스텔 건물 자리에 터를 잡았다. 김 씨는 “결혼 전까지 마포구 염리동에서 살았고, 오빠가 연세대학교를 졸업했기에 막연히 신촌이 좋았다”고 말했다.
워낙 음악을 좋아했기에 한 자리에서 5년 동안 운영하며 정식 라이센스 음반은 물론 일명 ‘빽판’도 팔았다. 기타와 하모니카도 가끔 팔렸다. 이곳은 킨젝스 동아리 학생들이 공연에 선보일 메탈이나 팝 음악 곡을 따기 위해 자주 들렀다.
1981년 레코드점을 접고 11개월 정도 음식점을 같은 위치에서 운영했다. 그러다 음식점을 관두고 1960년대부터 서강인들의 쉼터로 자리잡아온 음악다방 ‘왕자다방’을 1982년 부활시켰다.
1980년대 들어 기존의 왕자다방은 건물이 팔리는 바람에 사라지게 됐고, 이후 다방의 추억을 되살리기 위해 원래 왕자다방이 위치했던 곳의 옆 건물 2층을 빌려 영업을 시작했다. 1층은 장원서점이, 건너편에는 ‘일미집’이라는 선술집이 자리하고 있었다.
“왕자다방을 찾던 학생들이 다 기억나요. 레드 제플린 음악을 신청한 뒤 곡에 심취해서 드럼 치는 흉내를 내던 학생도 있었죠.” 당시 LP판 1700장이 있었고, 하루 종일 턴테이블 2개가 돌아갔다. 왕자다방 DJ는 서울 시내 어느 음악다방을 가더라도 테스트 없이 취직됐을 정도로 수준 있었다. 김영수(75 정외) 모교 정외과 교수, 밴드 ‘봄여름가을겨울’ 드러머 전태관(82 경영), 박종인(86 불문) 신부 등 왕자다방을 자주 찾았고 테니스반, 신방과, 서강방송국(SGBS), 농구반 등은 아지트로 삼았다.
당시 서강대 단골 남학생들은 김 씨를 상당한 미인으로 기억하지만 적극적인 구애는 번도 없었던 모양이다. "쪽지를 받은 적이 없어요. 서강대 사람들이 대담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웃음)”
1986년까지 왕자다방을 운영한 뒤에는 같은 위치에서 ‘제로’라는 이름의 카페 겸 경양식 레스토랑을 1988년까지 했다. 음악다방이 점차 구식이 되는 것 같아서였다.
이후 1988년 9월 17일 서울올림픽 개막식이 열리던 날 ‘고호’라는 카페 겸 레스토랑을 열었다. 신촌 지하철역에서 서강대 방면으로 올라오면 보이는 르 메이에르 오피스텔 건물이었다. 맞은편에 동해횟집이 있었던 조그만 서재 같은 곳이었다. 고호를 1991년까지 운영하는 동안 B.K라는 당시 신촌에서 분위기 좋기로 이름난 레스토랑을 1990년 차렸다. 위치는 신촌지하철역에서 서강대 방면으로 30미터 쯤 올라오다가 왼쪽으로 나 있는 길을 따라 들어간 뒤, 오른쪽 언덕 방향에 위치한 건물 지하였다. 지금 산까치라는 민속 음식 주점 자리인데, 산까치도 알고 보면 김 씨가 B.K.를 관둔 해인 1998년 5월 처음 선보인 곳이다. B.K.는 1990년대 학번은 누구나 한 번쯤 가봤음 직한 곳으로 돈까스, 함박스텍, 김치볶음밥, 소고기볶음밥 등이 인기 메뉴였다. 파르페, 크림 소다, 칵테일 등의 먹거리도 인기였다. 당시 서강대 남학생들의 미팅 장소로 애용됐다.
김 씨는 산까치를 1998년 10월까지 운영한뒤, 한참을 쉬었다. 그러다 2003년부터 2007년까지 마지막으로 카페 비욘드를 운영했다. 김경수(81 국문) 모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B.K.시절 조용필 노래를 즐겨 신청했고, 류석진 모교 정외과 교수는 비욘드 시절 자주 방문해 가수 한영애의 ‘봄날은 간다’를 여러 번 신청했다.
김 씨는 2003년부터 2007년까지 마지막으로 운영한 카페 비욘드를 운영한 것을 가끔 후회한다고도 말했다. ‘옛날의 아름다운 추억으로 머물러 있을 걸….’하는 생각에서다. “서강대학교는 항상 제 가슴 속에 있어요. 학생들에게 예쁜 누나로 시작했다가 예쁜 엄마로 기억남은 것 같아요. 궁금해서 물어보고 싶고, 응석부리고 싶은 존재였죠.”
“어렵게 살아오면서도 좋아하는 음악과 함께 하고 싶은 건 다 하면서 살아 왔다”는 김 씨는 서강인들에게 “사랑한다, 사랑했었다”는 말을 꼭 전해달라고 했다.
“서강대학생들이 참 좋고, 사랑했었어요. 그러다보니 장사할 때 행동이나 말에 사랑하는 마음이 담겨 있던 것 같습니다. 가장 행복한 시절을 서강인들과 보냈어요.”
글=정범석(96 국문) 기자
‘왕자 아줌마’로 유명, 다방 · 주점 운영… “지금도 서강을 사랑해요”
스스로를 ‘왕자 아줌마’라 부르는 김영애 씨는 30년 동안 서강인들을 위해 음악과 차를 선물했다. 금성사, 왕자다방, 제로, 고호, B.K, 산까치, 비욘드 등 197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후반에 이르기까지 늘 모교 인근에서 레스토랑과 커피숍 등을 운영하며 서강인의 성장을 지켜봤다. 단골이었던 학생들은 어느새 한 가정의 부모가 됐는가 하면, 모교 교직원이 되어 학교로 돌아오기도 했고, 예수회 신부도 됐다.
1977년 ‘금성사’라는 레코드점을 운영한 게 서강인들과의 첫 만남이었다. 27세 되던 해였다. 서강대 정문 맞은편에서 신촌로터리 방향으로 150미터 정도 내려가면 현재 으리으리하게 자리 잡은 오피스텔 건물 자리에 터를 잡았다. 김 씨는 “결혼 전까지 마포구 염리동에서 살았고, 오빠가 연세대학교를 졸업했기에 막연히 신촌이 좋았다”고 말했다.
워낙 음악을 좋아했기에 한 자리에서 5년 동안 운영하며 정식 라이센스 음반은 물론 일명 ‘빽판’도 팔았다. 기타와 하모니카도 가끔 팔렸다. 이곳은 킨젝스 동아리 학생들이 공연에 선보일 메탈이나 팝 음악 곡을 따기 위해 자주 들렀다.
1981년 레코드점을 접고 11개월 정도 음식점을 같은 위치에서 운영했다. 그러다 음식점을 관두고 1960년대부터 서강인들의 쉼터로 자리잡아온 음악다방 ‘왕자다방’을 1982년 부활시켰다.
1980년대 들어 기존의 왕자다방은 건물이 팔리는 바람에 사라지게 됐고, 이후 다방의 추억을 되살리기 위해 원래 왕자다방이 위치했던 곳의 옆 건물 2층을 빌려 영업을 시작했다. 1층은 장원서점이, 건너편에는 ‘일미집’이라는 선술집이 자리하고 있었다.
“왕자다방을 찾던 학생들이 다 기억나요. 레드 제플린 음악을 신청한 뒤 곡에 심취해서 드럼 치는 흉내를 내던 학생도 있었죠.” 당시 LP판 1700장이 있었고, 하루 종일 턴테이블 2개가 돌아갔다. 왕자다방 DJ는 서울 시내 어느 음악다방을 가더라도 테스트 없이 취직됐을 정도로 수준 있었다. 김영수(75 정외) 모교 정외과 교수, 밴드 ‘봄여름가을겨울’ 드러머 전태관(82 경영), 박종인(86 불문) 신부 등 왕자다방을 자주 찾았고 테니스반, 신방과, 서강방송국(SGBS), 농구반 등은 아지트로 삼았다.
당시 서강대 단골 남학생들은 김 씨를 상당한 미인으로 기억하지만 적극적인 구애는 번도 없었던 모양이다. "쪽지를 받은 적이 없어요. 서강대 사람들이 대담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웃음)”
1986년까지 왕자다방을 운영한 뒤에는 같은 위치에서 ‘제로’라는 이름의 카페 겸 경양식 레스토랑을 1988년까지 했다. 음악다방이 점차 구식이 되는 것 같아서였다.
이후 1988년 9월 17일 서울올림픽 개막식이 열리던 날 ‘고호’라는 카페 겸 레스토랑을 열었다. 신촌 지하철역에서 서강대 방면으로 올라오면 보이는 르 메이에르 오피스텔 건물이었다. 맞은편에 동해횟집이 있었던 조그만 서재 같은 곳이었다. 고호를 1991년까지 운영하는 동안 B.K라는 당시 신촌에서 분위기 좋기로 이름난 레스토랑을 1990년 차렸다. 위치는 신촌지하철역에서 서강대 방면으로 30미터 쯤 올라오다가 왼쪽으로 나 있는 길을 따라 들어간 뒤, 오른쪽 언덕 방향에 위치한 건물 지하였다. 지금 산까치라는 민속 음식 주점 자리인데, 산까치도 알고 보면 김 씨가 B.K.를 관둔 해인 1998년 5월 처음 선보인 곳이다. B.K.는 1990년대 학번은 누구나 한 번쯤 가봤음 직한 곳으로 돈까스, 함박스텍, 김치볶음밥, 소고기볶음밥 등이 인기 메뉴였다. 파르페, 크림 소다, 칵테일 등의 먹거리도 인기였다. 당시 서강대 남학생들의 미팅 장소로 애용됐다.
김 씨는 산까치를 1998년 10월까지 운영한뒤, 한참을 쉬었다. 그러다 2003년부터 2007년까지 마지막으로 카페 비욘드를 운영했다. 김경수(81 국문) 모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B.K.시절 조용필 노래를 즐겨 신청했고, 류석진 모교 정외과 교수는 비욘드 시절 자주 방문해 가수 한영애의 ‘봄날은 간다’를 여러 번 신청했다.
김 씨는 2003년부터 2007년까지 마지막으로 운영한 카페 비욘드를 운영한 것을 가끔 후회한다고도 말했다. ‘옛날의 아름다운 추억으로 머물러 있을 걸….’하는 생각에서다. “서강대학교는 항상 제 가슴 속에 있어요. 학생들에게 예쁜 누나로 시작했다가 예쁜 엄마로 기억남은 것 같아요. 궁금해서 물어보고 싶고, 응석부리고 싶은 존재였죠.”
“어렵게 살아오면서도 좋아하는 음악과 함께 하고 싶은 건 다 하면서 살아 왔다”는 김 씨는 서강인들에게 “사랑한다, 사랑했었다”는 말을 꼭 전해달라고 했다.
“서강대학생들이 참 좋고, 사랑했었어요. 그러다보니 장사할 때 행동이나 말에 사랑하는 마음이 담겨 있던 것 같습니다. 가장 행복한 시절을 서강인들과 보냈어요.”
글=정범석(96 국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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