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gain 1960 Rebuild 2010 서강의 재도약을 희망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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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0-01-29 10:12 조회13,497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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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은 서강 개교 50주년이 되는 해다. 국내외 대학과 비교해 볼 때 역사가 비교적 일천한 편이다. 그러나 서강은 개교 후 단시일에 명문 대학으로 도약했고, 그 명성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
과연 서강의 성공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서강은 태생부터 다른 대학들과 달랐다. 세계 각국에서 수백 개의 고등 교육 기관을 운영하고 있는 예수회가 설립한 학교였기 때문이다. 모교를 설립하기 위해 예수회 위스콘신 관구에서 파견된 서강 설립의 주역 미국인 신부님들은 훌륭한 청사진과 대학 운영에 필요한선진적인 노하우를 들여왔다. 덕분에 서강은 신설 대학이었지만 시행착오를 겪지 않았고 초창기부터 모든 면에서 국내 기존 대학들을 앞설 수 있었다.
태생부터 다른 대학, 교수진 · 면학 열기 서강의 설립 주역들이 제일 먼저 한 일은 국내외에서 젊고 유능한 학자들을 유치해 우수한 교수진을 확보한 것이었다. 그리고 교수들이 안정적인 생활을 영위하기에 충분한 보수를 주어 그들이 연구와 강의에만 전념하도록 했다. 기라성 같은 교수들의 명성은 곧바로 서강의 명성으로 이어졌다.
서강은 학사 관리를 엄격하게 했다. 지정 좌석 제도, FA, Quiz, Scholastic Warning(학사 경고)등은 서강에만 있는 제도였다. 서강은 우수한 학생들은 적극 지원하고 수준 이하의 학생들은 도태시켜 훌륭한 면학 분위기를 조성하였다. 서강은 대학 교육을 제대로 받은 실력 있는 졸업생들을 해마다 사회로 배출했고, 그들을 통해 서강 교육의 진가가 사회에 널리 알려졌다.
초창기 서강은 국제화된 대학이었다. 모든 신입생들에게 살아 있는 영어를 집중적으로가르쳤을 뿐 아니라 전 학년에 걸쳐 다수의 외국인 교수들이 영어로 강의했다. 또한 한국인 교수들도 영어 원서를 교재로 많이 사용했다. 캠퍼스에서는 영어가 제2의 공용어로 널리 쓰였다.
초창기부터 국제화 이뤄, 지금은? 1980년대 서강은 큰 변화를 겪었다. 학과와 강좌도 대폭 증설되고 재학생수도 크게 증가 하였을 뿐 아니라 시설도 대규모로 확충하는등 양적인 성장을 통해 종합대학교로서의 면모를 제대로 갖추게 됐다. 그 결과 국내외에서 서강의 인지도는 크게 높아졌다. 또 예수회 한국 관구가 신설되면서 학교 운영 책임을 위스콘신 관구로부터 넘겨받음으로써 서강은 점차 한국화가 됐다.
규모가 커지고 한국화 되면서 초기 서강의 특색이 적지 않게 퇴색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인 듯하다. 한국 대학 사회에 신선한 충격을 주며 앞서 가던 서강이 이제는 국내 대학 평가에서 여러 대학들에게 추월까지 당하고 있는 점은 실망스럽다. 한국에서 가장 국제화되었던 서강이 국제화 부문에서 다른 대학들에게 밀리고 있다는 이런 아이러니가 없다.
특별한 서강 에 거는 기대
타 대학들이 일취월장할 때 서강은 제자리 걸음을 해서는 안 된다. 개교 50주년을 계기로 서강은 전열을 가다듬고 재도약해야 한다. 중차대한 시기에 총장에 취임하여 서강의 발전을 위하여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이종욱 총장에 거는 기대가 크다.
이현수(63 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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