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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서강 에피소드] 6. 도로 한가운데 웅덩이 속의 빵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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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하유진 작성일10-01-27 10:00 조회12,86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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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교에서 바라본 1960년의 신촌 로터리. 이 당시 신촌 로터리는 비가 오면 진흙 투성이가 됐다.


존 P. 데일리 (모교 초대 총장) 신부님의 추억

1960년 4월, 서강이 처음 문을 열었을 때, 비 오는 날이면 학생들은 온통 진흙투성이가 된 발로 학교에 들어섰다. 신촌 로터리 버스 정류장에서부터 학교에 이르는 길은 진흙탕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랬던 것이 1970년 들어 완전히 바뀌었다. 마포구청이 서강 앞에 멋진 새 포장 도로를 깔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서강 가족 모두는 물론이고 신촌 지역 주민들도 반겼지만 모두가 좋아한 건 아니었다.

서강 정문 앞 건너편에 학생들이 자주 가던 작은 빵집이 하나 있었다. 도로 포장을 위해 빵집 주인은 이사를 가야 할 판이었다. 정부가 길가에 있던 가게들을 모두 사들이고 있었지만, 빵집 주인만은 생업수단이 사라지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도로 공사를 맡은 관계자는 중장비를 동원해 도로 공사를 시작했지만, 빵집 주변에선 조심해서 공사해야 했다. 도로가 거의 완성됐지만 도로 한 가운데 빵집은 영업을 계속하고 있었고, 학생들은 제과를 사기 위해 웅덩이 속을 오르내렸다. 당시 서강의 공사를 담당했던 오 수사님(데슬렙스 수사)과 의논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서울 시장에게 탄원키로 했다.

우리는 부시장과 미팅을 가졌다. 부시장의 부인은 서강의 시간 강사로 일하고 있었다. 우리 이야기를 들은 부시장은 길 한복판 웅덩이에서 장사를 어떻게 계속하고 있죠? 라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 문제를 검토하겠다던 부시장은 한국은 민주주의 국가라는 것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가게 주인도 권리가 있습니다 라고 덧붙였다. 얼마 뒤 빵집은 사라졌고, 빵집 주인은 충분한 보상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도로 공사와 관련된 다른 에피소드도 있다. 길가의 한 집주인이 제기한 불평이었는데 길가 주택과 가게를 희생시켜가면서까지 도로를 확장시키려는 비극을 막을 있도록 도와 달라는 내용의 편지를 미국 대통령, 독일 콜론의 대주교, 로마 교황 바오로 6세 등에게 썼던 것이다. 독일로 편지를 보낸 까닭은 서강이 과학관을 지을 때 독일의 기금을 받았다는 점을 집주인이 알았기 때문이다. 집주인이 보낸 편지들은 각각 주한 미국 대사관과 독일 대주교 및 로마 교황 대사 등으로부터 되돌아왔다. 충분한보상을 받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탄원서를세 통이나 썼던 그 집 주인이 추가로 얻은 것은아무 것도 없었다. 이렇게 도로는 완공 됐다.

정리=이매자(61 영문), 서미자(62 영문)

초기 서강 에피소드가 책자로 선보입니다. 96편의 원고를 국문과 영문으로 병기해 60장 의 사진과 더불어 제작할 예정입니다. 개교 50주년 기념식이 열리는 4월 17일 선보일 계획이며, 기념식장을 방문하는 1960~1966학번 초기 동문들께 특별 선물로 증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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