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알아야 할 50가지] 14. C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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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9-11-09 13:32 조회31,273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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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내려다보이는 곳...학생들과 반세기 동고동락
1960~1980년대, 모교에서 가장 전망이 좋은 곳을 꼽으라면 C관(Classroom Building·학생회관)이 단연 으뜸이었다. 해질 무렵 라운지에서 내려다보이는 한강의 낙조 풍경은 서울의 8대 절경 중 하나로 꼽히곤 했다.
완공 당시 신(新) 교사, 혹은 제 3교사(敎舍)라 불리며 학들의 생활전반을 만족시켜준 C관은 당대 최고의 건축가 김정수 선생이 설계했다. 1961년 착공해 1963년 2월 26일 완공된 이후, 같은 해 5월 4일 열린 봉헌식에는 노기남 서울대교구장 대주교를 비롯해 로마교황 사절과 장면 前국무총리 등이 참석했다.
초창기 C관에는 물리·생물학과생을 위한 실험실을 비롯해 영어 실습실, 교수 연구실 5개, 강의실 18개, 시청각 교실, 식당, 휴게실, 매점, 서점 등이 있었다. 당시 국내 최고의 시설을 자랑했던 어학 실습실은 7명으로 구성된 6개의 학급이 서로 다른 방송을 교재 삼아 동시에 수업할 수 있었다.
또한 마스터 콘솔 덕분에 학생들의 학습 상황을 개별적으로 모니터할 수 있었고 실시간 대화도 가능했다.
학생식당과 라운지도 학생들에게는 인기 장소였다. 1963년 5월 10일 발행된 서강학보 제15호에 ‘C관은 그 시설의 우수성으로 모든 모교생들의 사랑을 담뿍 받고 있는데, 특히 식당과 라운지의 존재는 더욱 환영받고 있다’고 나와 있다.
1976년 진행된 개보수 공사를 시작으로 C관에는 소강당, 바둑실, 다방, 카운슬링센터, 보건실 등이 설치됐다. 만남의 장소로 애용된 다방은 학생들의 휴식처였다.
C관은 1980년대부터 학생 활동을 위한 공간으로 바뀌었다. 1984년 8월, 기존의 연구실과 강의실이 신축된 K관(김대건관)으로 이전되면서 C관에서 강의가 거의 진행되지 않게 됐다.
이후로 여러 차례의 개보수 공사를 거쳤고,1988년에는 부족한 과방과 학회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증축공사를 시행했다. 이로써 4층 규모로 학회실 20개와 단과대실 4개가 마련돼 지금의 학생회관 형태를 갖추게 됐다.
유신체제 시절 C관은 학생들의 투쟁집결지였다. 당시 재학생들은 라운지에서 ‘구속학생 석방하라’는 결의문을 낭독하며 싸웠다. 1990년대에는 금연과 청결을 모토로 한 생활문화 운동도 전개됐다. 외상거래가 통했던 인심 좋은 글방(도서관), 약속장소로 통했던 라운지, 동아리방 앞 화단에 자욱했던 칸나 꽃, 철지난 대자보와 널브러진 막걸리 병이 가득했던 과방 등은 이제 아련한 추억이 됐다.
오늘도 조용히 원래 자리를 지키고 있는 C관은 항상 학생들과 함께한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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