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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서강대의 작은 ‘시네마 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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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9-06-25 17:21 조회27,42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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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홍 (80.신방, 시나리오 작가)

제가 서강대를 다니던 학창 시절을 기억하려고 하면 어떤 소리들이 섞여 들리곤 합니다. 그 무엇보다도 사과탄이 날아다니는 쇳소리와 함께 선배들과 친구들이 어깨동무를 하며 전경들과 대치하던 함성 소리가 생생하지만, 그 사이로 아련하게 영사기 돌아가는 소리가 묘하게 대비를 이루며 들리곤 합니다. 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로부터 약 이십 년이 지나 2004년의 가을, 제1회 서강영화제를 준비하면서 비로소 그 소리의 진원지를 기억해 냈습니다. 바로 파란 눈의 한 신부님이 16미리 영사기를 직접 틀어가며 <시민 케인>을 보여주시던 교실이었습니다. 한글 자막이 있을 리 없었고, 신부님이 영어 대본을 복사해 준 자료로 겨우 영화를 이해했고, 작품성을 온전히 파악하지도 못했지만, 그 당시 국내 사정으로는 보기 어려웠던 <시민 케인>을, 그것도 필름으로 공부할 수 있다는 사실이 뿌듯했던 기억이 납니다. 1980년대 초반의 서강캠퍼스에서 영화와 관계된 추억이라면 커뮤니케이션 센터와 커스튼 신부님이 먼저 생각나지만, 낡은 16미리 화면 역시 앞으로도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성장한 대학생은 졸업 후 영화를 자기 천직으로 선택했고, 다큐멘터리를 만들면서 가산도 탕진하며 시나리오 작가로 데뷔하고, 6년 전부터는 모교와 가까운 연세대학교에서 시나리오를 강의하는 선생이 됐습니다. 좌충우돌 인생이지만 영화를 한다는 즐거움 하나만으로 인생을 버티고 있고, 그 힘은 서강대에서 출발했습니다. 그 여정 속에서 모교와는 거의 연락을 끊고 살았지만, 올해 커뮤니케이션 센터가 ‘부활’하면서 다시 드나들기 시작했고, 요즘 제1회 서강영화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저의 기억 속에서 시네마 천국이었던 서강대에서 드디어 학교 차원에서의 영화 축제가 10월 27일부터 29일까지 3일 동안 열립니다. 또한 단순히 영화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서강영화상도 폐막식에서 수여하게 됩니다. 서강영화상은 일년동안 만들어진 한국영화 중 데뷔작을 대상으로 젊은 영화인에게 주는 상입니다. 올해는 급박한 일정으로 극영화만을 대상으로 시상하지만, 내년부터는 다큐멘터리는 물론 단편영화 등 모든 데뷔작을 대상으로 할 예정입니다.

서강영화상의 성격에서 드러나듯, 서강영화제의 컨셉은 누구라도 인생에 단 한편밖에 만들 수 없는 ‘데뷔작 영화제’입니다. 예심을 거쳐 선정될 세 편의 데뷔작 상영은 물론이고, 아마도 제가 들었던 시민 케인 수업을 일, 이년 뒤에 들었을지도 모를 박찬욱 감독의 특별전도 열립니다. 박감독이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받은 일은 비단 영화와 관계된 사람들 뿐 아니라 서강인 모두가 축하할만한 문화적 사건이니 다 함께 오셔서 축하해 주시길. 또한 앞으로는 한국의 데뷔작 뿐 아니라 전 세계의 중요한 데뷔작을 보여주는 영화제가 될 것입니다.

영화제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커뮤니케이션센터 소장님에게서 처음 영화제를 준비하자는 말을 들었을 때 기쁘기도 했지만 난감했습니다. 준비 기간이 너무나 짧았고, 첫 해인 까닭에 예산도 너무 적었습니다. 그럼에도 영화제 실무를 맡게 된 것은 박찬욱 감독을 축하하는 자리는 올해가 아니면 의미가 퇴색할 것이라는 점도 있었지만, 서강대에서 80년대의 시네마 천국을 경험한 사람이 꼭 해야 할 어떤 통과의례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스폰서 문제 등 해결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지만, 많은 분들이 도와주신다면 올해 작은 규모로 출발한 서강영화제가 ‘데뷔작 영화제’라는 특성을 잘 살려서 국내 뿐 아니고 세계적으로도 개성있고 알찬 문화 브랜드가 될 것으로 믿습니다.

- 이 바쁜 와중에 짧은 줄거리를 한 편 썼습니다. 격동의 80년대에 한국의 한 대학에서 <시민 케인>을 보여주시던 신부님과 그 수업을 듣던 영화 청년들에 관한 정치적 코믹 스릴러(?)구요.... 영사기 곁에 서 계시던 남요한 신부님께 줄거리를 바치기로 했습니다. 다시 낡은 영사기 소리가 아련하게 들려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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