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그너의 혼 깃든 '니벨룽의 반지' 서울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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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9-06-25 17:27 조회15,766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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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내린 선물 가운데 인간이 몸이 불편하고 아플 때면 그 고통을 느낄 수 있는 통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빼 놓을 수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아름다운 것을 만나면 좋다고 느낄 수 있는, 다시 말해서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코드칩을 내장하고 살아가는 사람은 같은 수명을 다했다 하더라도 그렇지 못한 사람에 비해 말할 수 없는 행복에 대한 경험을 가진 인생을 살게 될 것이다. 흔히들 음악에 ‘취한다’ 혹은 작품에 ‘꽂힌다’는 표현처럼 우리도 한 번쯤은 무엇엔가 혼미하게 빠져들 수 있다면 이 또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인간에게 있어 크나 큰 복이 아닐까?
오늘은 우리 서강인들에게 오랜만에 심취할 수 있는 바로 그 마력에 대해 살짝 귀띔하고 싶다. 중고등학생 시절 음악교과서에 빠지지 않고 등장한 인물, ‘바그너.’ 그 이름은 너무도 익숙한데 그의 음악은 왠지 사뭇 낯설기만 하다. 그도 그럴 것이 태교음악, 클래식 입문 등등 대부분의 대중적인 클래식 음반에 소개되는 것들은 서정적이거나 상큼한 선율의 모짜르트, 슈베르트 등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한다. 그야말로 제대로(?) 된 바그너 음반을 구하기란 쉽지도 않고 지나다 흘려들을 수 있는 FM에서 조차도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 참에 본격적으로 바그너의 대표작을 소개하고 싶다. 26년간이라는 믿을 수 없는 제작기간을 거쳐 태어난 리하르트 바그너의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가 그것이다. 영화 ‘반지의 제왕’의 기초가 되었던 북유럽 전설을 토대로 한 <니벨룽의 반지>는 1876년 독일에서 바그너 본인에 의해 초연된 이래 폭풍우와도 같은 세찬 휘몰이로 전세계 주요도시를 휩쓸었다.
독일인들에게 신앙과도 같았던 바그너 음악, 특히 히틀러는 전쟁 중에도 하루 4시간씩 <니벨룽의 반지>를 들었다는 기록을 통해 우리가 흔히 정복자, 독재자로 알고 있는 그에게 전장에서조차 부여안고 싶었던 그 바그너 음악의 매력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생각해 보았다.
회사 음반실을 뒤져 찾아낸 <니벨룽의 반지 4부작> CD는 한 보따리, 총 16시간에 달하는 연주를 듣는다는 것은 ‘감상’이라기 보다는 그 자체가 ‘고통’이었다. 엄청난 인내심을 요구하는 음악, 그러나 밤잠을 설쳐가면서도 들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시종일관 지속되는 극도의 숨막히는 긴장감이었다. 나의 몸을 옥죄는 듯한 긴장감으로 흠씬 두드려 맞은 듯한 뻐근함이 느껴왔다.
미술전시나 공연을 기획하는 것이 업인 나에겐 클래식 연주회를 계획할 경우 연주자가 결정되었다면 그 다음으로 가장 고민스런 부분이 레퍼토리이다. 물론 해당 아티스트의 18번(?)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국내 관객들의 입맛을 고려하고 여타 공연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레퍼토리를 결정한다는 일은 언제나 가장 까다로운 선택이다. 흔히들 대중적이고 인지도 높은 곡을 연주했을 때 관객들의 반응이 좋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 이는 고기도 먹어 본 사람이 맛을 안다는 것과 동일한 논리이다 - 나의 경험으로 클래식 콘서트일 경우엔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생각이다.
지난 2001년 아쉬케나지 지휘로 체코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내한공연이 있을 때였다. 보통 2년 전쯤 연주가 결정되는데 이 때 역시 선곡은 골치거리였다. 무념무상의 상태로 CD를 들어본 후, 나는 과감히 말러 교향곡 7번을 선택했다. 물론 주변의 반대와 걸림돌이 많았지만 그 때 나를 강하게 끌었던 7번의 매력은 바로 ‘긴장감’이었다. 즐거운 긴장이라고 표현하기엔 버거운 심장박동을 조절키 어려운 김장감, 그러나 본 연주에선 아쉬케나지의 놀라운 곡해석으로 훨씬 맛있는 긴장감을 주었던 공연이었고 3천명이 넘는 관객들은 연주가 끝날 때까지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집중하고 있었다. 졸고 있는 사람도 하나 없이...
클래식 연주회의 흔한 장면은 동반한 부인이나 여자 친구에게 꼬집힘을 당하면서도 참을 수 없는 수마의 괴력으로 고개를 앞뒤로 떨구는 아저씨들의 모습이건만 말러 7번 앞에선 모두 숙연해질 정도였다.
이제 달콤한 속삭임에 식상해진 음악애호가라면 놀라운 마력으로 우리의 심장을 멈춰버릴 바그너 음악에 도전해보자고 권하고 싶다. 마린스키극장 키로프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 발레리 게르기예프의 새로운 버전으로 2003년 태어난 신작 <니벨룽의 반지>가 2005년 9월말 300명 규모의 공연단으로 한국을 찾는다. 수년간의 끈질긴 프로포즈에도 꿈쩍않던 정열적인 괴짜 마에스트로 게르기예프의 혼신의 연주 16시간을 기대하며 또 한 번 심장을 멈춰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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