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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장영희(71 영문) 교수를 기리며-“상처 없이 치유자가 될 수는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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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9-06-17 22:21 조회12,78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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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장영희(71 영문) 교수를 기리며

“상처 없이 치유자가 될 수는 없어요”

 

장영희(71 영문) 모교 영문학과 교수가 5월 9일 사망했다. 5월 13일 오전 9시 모교 이냐시오성당에서는 유시찬 이사장 주례로 장례미사가 열렸다. 故장 동문은 모교에서 문학사와 문학석사를 받고, 미국 뉴욕주립대학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얻은 뒤 1985년부터 모교 강단에 올랐다. 어릴 적 앓은 소아비로 인해 두 다리와 오른팔이 불편했던 장 동문은, 2001년 암 진단 이후 투병 생활을 거듭했다.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삶에 대한 감사와 용기를 잃지 않았고, 암 환자와 장애인은 물론, 수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메시지를 통해 큰 감동을 주어 왔다. 장 동문을 애도하는 동문의 마음을 담았다. < 편집자>

장영희 선생, 왜 그렇게 빨리 갔어요? 난 그대가 그렇게 빨리 간다는 생각은 꿈에도 못하고 지난 5월 9일 토요일 오후 1시 7분 19초에 ‘안부’라는 제목으로 그대에게 이메일을 보냈어요. 확인해줄 수신자가 세상을 떠나버려 지금도 그 메일은‘확인안함’이란 수신 기록을 지닌 채 서강대학교 메일 시스템에 떠 있네요. 메일 내용은 자잘한 내 신세한탄에 지나지 않아요. 그런데 후에 소식 듣고 문상 갔을 때 동생들한테서 들으니 그대는 그 즈음영면의 길로 떠났데요.

그리고 그대는 이제 역사의 한 부분이 되었어요. 서강의 역사, 한국 영문학 연구의 역사, 빼어난 한국어 문장의 역사, 수필 문학의 역사, 한국 여성사의 일부가 되었네요. 지금도 X관 1층 그대의 연구실 옆 벽면에는 그대를 추모하는 학생들의 글귀가 적힌 쪽지가 가득해요. 그대에게 배웠던 것이 자랑스럽다는 말, 그래서 고맙다는 말, 그리고 사랑한다는 말이 가장 많아요. 그 중에 내 마음을 가장 치는 것이 “항상 필요할 때만 교수님께 연락드린 것 같아서 죄송해요.”라는 것이었어요. 정말 그래요. 정말 그렇게 우리는 모두‘사랑에 지각하는 존재’들이에요.

그러나 이런 범상한 사랑의 게으름뱅이들과는 반대로 그대는 즉각적인 사랑의 실천자 였어요. 밤늦게까지 학교에 남아 이냐시오 야학을 준비하던 그대의 사랑, 사랑하던 친구가 생활이 어려워지자 선뜻 많은 경제적 지원을 하고 조용히 도움의 손길을 모으던 그대의 부지런한 실행력, 영문학과 총동문회를 위해 동분서주하던 그대의 뜨거운 열정. 그러고 보면 그대는 부드러운듯하면서도 강철 같은 혼과 힘을 지닌‘강철 불꽃’이었어요. 자기 열정으로 항상 주위를 밝혔어요. 그것이 즉각적 사랑의 실천이었고요. 그리고 이제 그대는 제자들, 문학을 사랑하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독자들에게 안티고네나 스카렛 오하라 같은 뜨거운 열정과 불굴의 정신을 지닌 아름다운 ‘여성 담론의 주인공’으로 변화했어요.

1971년 봄부터 나는 그대를 보았지요. 그때도 단발머리를 하고 있었고 머리칼은 오월 단오 날 창포물에 막 감은 것처럼 유난히도 찬연한 광채를 내며 빛나고 있었어요. 그 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그대를 바라보았고 어떤 때는 아주 생소한 장소에서 그대를 만나기도 했어요. 남편이 뇌졸중으로 투병하느라 재활 병원에서 긴긴 입원생활을 하고 있을 때 재활 병원 복도, 원무과, 화장실 등지에 붙여진 신문에 연재 중인 그대의 글귀를 만나기도 했어요. 그대의 말은 언제나 샘물 같은 생기와 도전으로 콸콸 쏟아졌어요. 암과 싸우면서 그대의 말은 폭포수나 분수처럼 더 푸르게 솟아올랐어요. 그대의 말은 재활병원이나 암 병동의 모서리, 모서리에서 많은 환자들과 보호자들에게 위로와 미소와 치유의 힘을 준 것을 내가압니다. ‘상처 받은 치유자’라는 말을 생각합니다. ‘상처 받은 치유자’란‘상처가 없는 사람은 치유자가 될 수 없다’는 말이지요.

스스로 자기 상처를 고친 사람만이 타인을 치유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대는 바로 그렇게 문학과 신앙의 힘으로 자신의 고통과 시련을 치유했기에 더 나아가 타인의 고통을 치유 하는‘신성한 치유자’가 된 것이에요. 그래서 그대는 위대한 여성 생존의 역사이자 여성 치유의 역사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레퀴엠을 들을게요. 모차르트, 베를리오즈, 베르디, 포레 등 많은 레퀴엠이 있어요.

그래요, 그대는 평화롭고 부드러운 포레의 레퀴엠을 불러오네요. “죽음이란 슬픔에 차서 이승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행복에 가득 차서 저 세상을 맞이하는 것”이란 포레의 말이 좋아서요. 그대여, 주님의 평안 속에 영면하소서. 그리고 많은 고통과 시련을 가진 이 땅의 사람들의 영혼 속에 매순간 순간마다 즉각적인 치유의 생기를 불어넣어 주소서.

김승희(70 영문) 모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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