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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교 50주년 진단2] 서강학풍은 과연 창신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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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하유진 작성일09-05-06 11:30 조회12,02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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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개교 50주년을 맞이하는 모교는 명문사학의 전통을 쌓아왔기에 동문들의 긍지와 자부심이 각별하다. 새로운 50년을 향해 나아가는 지금 시점은 서강의 전통과 유뮤형의 자산을 재음미할 때다. 서강 전통을 재성찰해보는 연속 기획을 마련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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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탐구와 순수학문을 중시한 서강의 아카데미즘 추구는 대학 교육의 바람직한 상을 제시했다. 사진은 1970년대 화학 수업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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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분방하면서 진보적이었던 서강의 교육은 엄격한 학사 운영 덕분에 빛을 발했다. 사진은 제롬 브루닉 신부가 영어영문학과 수업을 진행하는 1970년대 교실 풍경.

서강학풍은 과연 創新 할 수 있는가

요즘 같은 세태에‘학풍’을 논한다는 것자체가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소리로 들릴지 모른다. 순수·기초 보다는 실용·기능이 중시되는 즉흥적, 외양적 가치가 우선되는 사회분위기에서 학풍을 논하는 것 자체가 한가한 딜레탕트로 치부될 수 있기에 하는 말이다. 그러나 캠퍼스에 마트가 들어설 정도로 실용이 대세로 자리 잡은 세상에서 전통적 서강학풍을 반추해 보는 것도 의미 있는일이 될 테다.

학풍은 마치 가상적 이미지로 남아 실체와는 별개로 움직이는 일종의 시뮬라크르(simulacre)와 같은 것은 아닐까. 학풍, 얼핏 객관적인 사실에 근거한 것 같지만 그것은 다분히 주관적인 인식의 문제이기도 하다. 어쨌든 그 형성과정을 논해보며 형해화(形骸化)된 것을 다시 추스르는 일종의 시뮬라시옹(simulation)을 해 볼 수도 있겠다. 그것은 곧잘 전통과 관습, 선입견에 의해 겉치레가중시되는 분위기에 편승하기도 하고, 흔히 교풍과 뒤섞이거나 면학분위기와도 혼동된다. 한 학교가 품고 있는 아우라라고 생각할수도 있다.

참다운 대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다

초창기 서강의 교육인자가 착상되는 과정을 살펴보면, 예수회 위스콘신관구가 운영한재단, 최우수 교수진 특유의 열정이 뿜어내는 학문적 수월성과 커리큘럼, 엄격한 학사제도, 탄탄한 재정에 따른 첨단교육시설, 교수 대비 학생 수의 철저한 관리, 그에 따른 자유분방하고 진보적 교육관 등 이 모든 것이 당시까지 경험치 못했던 전대미문의 교육여건을 만들어 나갔다.

대학이 학문보다 간판을 위한 우골탑으로까지 비친 그 시절에, 서강은 교육의 제반 유전인자가 달랐다. 영어영문학과, 사학과, 철학과, 수학과, 물리학과, 경제학과로 태동된 서강을 보노라면 건학이념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문사철(文史哲), 그리고 기본 진리탐구는 ‘대학은 이렇게 시작돼야 한다’는 모델을 명쾌히 보여줬다. 당시 초근목피로 보릿고개를 넘나들던 절대빈곤 시절임에도 결코 기본을 건너뛰려 하지 않았다. 당시 대다수 대학들이 앞 다퉈 개설했던 학과들은 화공과, 섬유공학과 그리고 경영학과 등이었다. 당장 밥벌이가 중요했던 시절이었다.

개교 10여년이 지난 1970년대 초 이미 서강은 한국사회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 서강학파’는 한국경제 근대화에 이론적 토대를 제공했고, ‘서강사학파’는 인문학교육의 새 지평을 열었다. 순수와 기초가 어떻게 투영되는지 한국사회에 새 패러다임을 놓고 있었다.

자유롭게 학풍을 만끽하던 서강공동체

필자가 고교 3학년 때인 1971년, 서강의 이미지는 ‘특유의 학구적 색체를 지닌 대학’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흔히 교풍으로크게 구별되는 연·고대와 달리 학교선택에있어 뚜렷한 차별성을 지녔다. 고교 선생님들은 서강을 두고 ‘순수와 기초를 중시한, 아카데미즘 추구 관점에서 당시의 서울 문리대와 흡사하다’고 지도했다.

 

하지만 서구지향적인 커리큘럼과 엄격한 학사운영 면에선 그 학교와도 사뭇 달랐다. 필자가 다녔던 고등학교 역시 가톨릭재단이 운영했고, 자유·정의·진리를 강조하며 길하나 사이로 서울 문리대와 인접해 있었다. 한때 장면 총리가 교장으로 재직했고, 4·19 의거 때는 고등학교로서 선봉에서 경무대 앞까지 진출하기도 했다. 이미 진보적 사고의 세례를 받고 있었기에 대학에 대한 이미지는 가상이 아닌 현실로 구체화됐다.

가톨릭 예수회가 재단인 서강은 동기생들에게 매력적인 대학으로 다가왔고, 학풍은 그대로 이어졌다. 당시 서강의 입학정원은 500여 명에 불과했지만 고교 동기들은 20여명 넘게 입학했다. 명문 의·치대 입시에 실패했던 동기들은 재수를 해서 모교 경제학과로 몰려들었다.

학풍은 적성조차 초월했다. 이과에서 문과로의 전향도 서슴지 않았다. 가톨릭 본산에서 10여년을 공부한 동기생들은 중고시절과 매한가지로 대학 때도 가톨릭 교리를 강권 받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졸업 후 오랜 세월이 흘러 그들 중 상당수는 자발적으로 가톨릭 영세를 받았다. 종교에 있어서 자유를 만끽한 10년이었다.

인성교육, 창의적 교육관, 영성에 따른 올바른 가치관은 졸업 후 개성이 강조되고 창발적인 사회활동과 직업을 갖게 했다. 특히, 학계·연구소·출판문화계·IT분야·금융사업 등에서 졸업생들은 두드러진 활약을 보여줬다. 서강에선 애초부터 관(官)지향적이고 입신양명을 위한 부박한 교육은 뒷전으로 밀려나 있었다.

서강학풍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괄목할만한 데이터가 있다. 대학교수나 연구직에 종사한 동문들의 비율을 찾다보면 서강 아카데미즘을 단박에 경험한다. 교수로 임용되거나 연구직에 종사하는 적령기를 대략 1990년대 중반 졸업생까지로 감안할 때, 당시까지 졸업생수는 2만 5000여 명으로 추산된다. 이들 가운데 교수가 1110명, 연구직이 1200명에 달한다. 어림잡아 9% 안팎이 대학교나 연구소에 근무하고 있다는 얘기다.  서강의 건학정신이 조금 더 선명하게 남아있는 1960~1970년대 졸업생들로 기준을 높여보면 비율은 더욱 치솟는다.

실종된 학풍, 그리고 정체성

의지는 대략 1970년대 말까지 일관되게 흘렀다. 그러나 1980년대로 접어들며 외부적 요인으로 상황은 악화됐다. 졸업정원제에 따라입학정원이 거의 3배로 폭증했다. 대학원생까지 합쳐 2000~3000명으로 디자인됐던 캠퍼스는 무려 1만 명이 왁자하게 오가는 협량한 공간으로 좁혀졌다. 더구나 ‘재단의 한국화’라는 내부적 요인까지 가세돼 피로감은 증폭됐다.

양적팽창 의지는 또 다른 물량의지를 불러왔다. 곳곳에서 모럴 해저드까지 몰고 왔다.1980년대 중반 이후 우리나라 대학가에도 마케팅과 홍보가 최우선 가치인양 휘몰아쳤다. 패권주의적 허장성세가 대세를 이루는 지난 30여년의 한국사회 분위기에 서강도 편승했다. 어찌어찌하다 덩치도 중급대학으로 커졌다.‘ 소수정예 정신’은 이미 퇴색됐고,‘ 학문적 수월성’과‘서강만의 아이덴티티’도 추억저편으로 희미해졌다.

실용이라는 장강의 뒷물과 순수라는 앞물은 뒤섞이고 융합하며 앞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 더구나 통섭적인 학제 간 교류나 거세지는 글로벌화로 대학 간의 색깔은 거기가 거기로 비슷해졌다. 그야말로 학풍실종시대를 맞았다.

50주년을 맞이하며

시행착오도 겪었고 헛물도 켜봤다. 이젠 냉철히 50년 후의 서강을 가늠해 봐야 할 시점이다. 경쟁력 떨어지는 몇몇의 특수대학원은 관성적으로 흘러가야만 하는가? 급팽창한 입학정원도 타성적으로 유지되어야만 하는가? 재원 충당을 위한 편입제도는 과연 합당한 것인가? 이 모든 것을 감안해 법고(法古)의 서강학풍을 새로운 서강스피릿으로 창신할 수는 없을까? 50주년을 맞는 시점에서 곰곰이 생각해 본다.

허상의 이미지로만 남을 것인지, 아니면 현실적이고 구체성을 띤 단 하나의 서강 이미지로 새롭게 태어날 것인지. 서강의 실험적 ‘학풍 시뮬레이션’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송영만 (74 정외) 서강옛집 편집인/효형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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