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과 나] 배성례(78 영문) SBS 남북교류협력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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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하유진 작성일09-05-06 11:22 조회11,36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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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여행, 상상만으로도 즐겁다."
어린 시절 어머니는 한 여름이면 포도 산지인 소사(지금은경기도 부천시 소재)로 가서 큰 광주리에 한가득 포도를 사가지고 오셨다.
경인 국철을 타고 당신의 머리에 바리바리 얹은 포도는 퍽이나 힘드셨을 만큼 많은 양이었다. 이 가운데 아주탐스런 것은 자식들에게 먼저 먹이시고, 나머지 품질이 조금 떨어지는 것들은 조그만 독이나 큰 유리병에 알을 훌훌 털어내, 술을 만드셨다.
우리집에서 손수 만든 포도주였다. 어린 나는 포도 알에 대병 소주와 흑설탕을 가득 넣고 으깨시는 어머니의 힘찬 손놀림과, 포도주를 담은 독을 흙에 파묻는 모습을 신기하게 바라본 적이 있다.
나중에야 이것이 발효되어 달콤한 포도주가 된다는 것을 알았다. 특히, 아버님이 이 포도주를 맛있게 드실 때 살짝 살짝 맛본 기억이 생생하다. 달콤했지만 마시고 나면 얼굴이 붉어지는 포도주의 묘한 술맛을 지금도 잊을수 없다.
독일 애호가와 함께 한 4병의 와인
국내산 포도주가 아니라 정식 와인에 대한 좋은 추억은 10년 전 1년 동안 경험한 독일 연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필자가 다니던 대학의 동료집에 초대받았는데, 그의 부모님은 나를 동양에서온 귀한 손님으로 대하며 와인을 여러 병 준비하셨다.
기억 남는 것은 지하실에 마련된 와인저장고에서 1000병이 넘는 포도주의 특성과 맛에 대한 설명이었다. 독일 사람 가운데 전문가 수준 이상의 취미와 취향을 갖고 사는 사람이 많지만, 이 집 주인은 일주일에 한 번씩 와인을 사다가 저장고에 쌓아두고 도서목록처럼 정리해 놓을 정도였다.
그는 와인을 나라, 지역, 생산연도별로 구분해두었다. 그러면서 이 많은 와인 가운데 다 마실 수는 없으니, 자신이 고른 이탈리아산 와인을 몇 병마시자고 했다. 더욱 놀란 건 1층 식탁에 이태리지도를 걸어놓고, 4병의 술병마다 이것은 어느 지역에서 나왔고, 일조량이 많아 맛은 달고 향은 어떻다는식의 설명을 자세히 하던 모습이었다.
덕분에 전문가다운 식견을 가진 와인 애호가와 함께 마신 4병의 와인은 저녁 식사자리를 참으로멋있고 맛있게 만들었다.
폭탄주 악몽 '와인으로 달래다'
나이가 들어 사회생활에서 접한 술에 대한 기억은 고약하기만 했다. 학창시절 술 마시는 일은 객기이기도 낭만이기도 했다. 1970년대 후반 신촌 동해루에서 고량주를 잉어집에서 소주를 많이 마셨지만 몸이 부대끼거나, 치사량에 이를 정도는아니었다.
하지만 1980년대 초반 시작한 직장생활에서는 위계질서와 규율이 엄한 초년 기자 시절이었기에 소주와 양주를 어쩔 수 없이 먹어야 하는 생활이 이어졌다. 1980년대 후반 불어 닥친 폭탄주 문화는 검사와 군인을 거쳐 기자 사이에까지 퍼졌다.
취재과정에서 취재원들과 기 싸움을 한다는 차원에서 술을 많이 마신 셈이다. 더러 필름이 끊기는 상황도 여러 차례 경험했다. ‘술에는 장사 없다’는 말이 딱 들어맞았다. 직장생활 26년 만에 위에 궤양이 생겼다. 폭탄주는 더 이상 곤란하다는 의사의 진단까지 나왔다.
선배 가운데는 위와 간에 이상이생겨 세상을 하직하는 사람도 나왔다. 그런 와중에 몇몇 선배를 중심으로 술을 끊을 수는 없기에, 와인을 권하는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조성됐다.
나누고픈 와인, 즐기고픈 와인여행
나도 몇 해 전부터 공식적인 자리나 회식 때 폭탄주 대신 와인을 마시자고 권한다. 아직 와인에 대한 지식이나 경험이 많지 않지만, 브랜드마다 독특한 향이나 맛이 있고, 대화할 수 있는 분위기가 좋아 와인을 선호한다.
특히, 칠레산 와인이 가격에 비해 품질이 좋아 즐겨 찾는다. 비싼 가격이지만 유럽산 와인 딸보도 자주 마신다. 이름도 독특하거니와 진한 향 덕분에 입맛에 맞는다.
한창 와인을 즐기는 단계이기에 가능한 다양한 종류의 와인을 맛보고 있다. 되도록 와인을 빚은 장인이나 와인 산지의 토양이나 문화를 떠올릴 정도의 수준이 되고 싶다.
가능하다면 언젠가 포도 산지나 양조장 순례도 해보고 싶다. 사랑하는 친구와 가족과 와인을 마시면서 떠나는 와인 여행은 상상만으로도 큰 즐거움이다. 그날을 앞당기고픈 마음이 간절하다.
어린 시절 어머니는 한 여름이면 포도 산지인 소사(지금은경기도 부천시 소재)로 가서 큰 광주리에 한가득 포도를 사가지고 오셨다.
경인 국철을 타고 당신의 머리에 바리바리 얹은 포도는 퍽이나 힘드셨을 만큼 많은 양이었다. 이 가운데 아주탐스런 것은 자식들에게 먼저 먹이시고, 나머지 품질이 조금 떨어지는 것들은 조그만 독이나 큰 유리병에 알을 훌훌 털어내, 술을 만드셨다.
우리집에서 손수 만든 포도주였다. 어린 나는 포도 알에 대병 소주와 흑설탕을 가득 넣고 으깨시는 어머니의 힘찬 손놀림과, 포도주를 담은 독을 흙에 파묻는 모습을 신기하게 바라본 적이 있다.
나중에야 이것이 발효되어 달콤한 포도주가 된다는 것을 알았다. 특히, 아버님이 이 포도주를 맛있게 드실 때 살짝 살짝 맛본 기억이 생생하다. 달콤했지만 마시고 나면 얼굴이 붉어지는 포도주의 묘한 술맛을 지금도 잊을수 없다.
독일 애호가와 함께 한 4병의 와인
국내산 포도주가 아니라 정식 와인에 대한 좋은 추억은 10년 전 1년 동안 경험한 독일 연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필자가 다니던 대학의 동료집에 초대받았는데, 그의 부모님은 나를 동양에서온 귀한 손님으로 대하며 와인을 여러 병 준비하셨다.
기억 남는 것은 지하실에 마련된 와인저장고에서 1000병이 넘는 포도주의 특성과 맛에 대한 설명이었다. 독일 사람 가운데 전문가 수준 이상의 취미와 취향을 갖고 사는 사람이 많지만, 이 집 주인은 일주일에 한 번씩 와인을 사다가 저장고에 쌓아두고 도서목록처럼 정리해 놓을 정도였다.
그는 와인을 나라, 지역, 생산연도별로 구분해두었다. 그러면서 이 많은 와인 가운데 다 마실 수는 없으니, 자신이 고른 이탈리아산 와인을 몇 병마시자고 했다. 더욱 놀란 건 1층 식탁에 이태리지도를 걸어놓고, 4병의 술병마다 이것은 어느 지역에서 나왔고, 일조량이 많아 맛은 달고 향은 어떻다는식의 설명을 자세히 하던 모습이었다.
덕분에 전문가다운 식견을 가진 와인 애호가와 함께 마신 4병의 와인은 저녁 식사자리를 참으로멋있고 맛있게 만들었다.
폭탄주 악몽 '와인으로 달래다'
나이가 들어 사회생활에서 접한 술에 대한 기억은 고약하기만 했다. 학창시절 술 마시는 일은 객기이기도 낭만이기도 했다. 1970년대 후반 신촌 동해루에서 고량주를 잉어집에서 소주를 많이 마셨지만 몸이 부대끼거나, 치사량에 이를 정도는아니었다.
하지만 1980년대 초반 시작한 직장생활에서는 위계질서와 규율이 엄한 초년 기자 시절이었기에 소주와 양주를 어쩔 수 없이 먹어야 하는 생활이 이어졌다. 1980년대 후반 불어 닥친 폭탄주 문화는 검사와 군인을 거쳐 기자 사이에까지 퍼졌다.
취재과정에서 취재원들과 기 싸움을 한다는 차원에서 술을 많이 마신 셈이다. 더러 필름이 끊기는 상황도 여러 차례 경험했다. ‘술에는 장사 없다’는 말이 딱 들어맞았다. 직장생활 26년 만에 위에 궤양이 생겼다. 폭탄주는 더 이상 곤란하다는 의사의 진단까지 나왔다.
선배 가운데는 위와 간에 이상이생겨 세상을 하직하는 사람도 나왔다. 그런 와중에 몇몇 선배를 중심으로 술을 끊을 수는 없기에, 와인을 권하는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조성됐다.
나누고픈 와인, 즐기고픈 와인여행
나도 몇 해 전부터 공식적인 자리나 회식 때 폭탄주 대신 와인을 마시자고 권한다. 아직 와인에 대한 지식이나 경험이 많지 않지만, 브랜드마다 독특한 향이나 맛이 있고, 대화할 수 있는 분위기가 좋아 와인을 선호한다.
특히, 칠레산 와인이 가격에 비해 품질이 좋아 즐겨 찾는다. 비싼 가격이지만 유럽산 와인 딸보도 자주 마신다. 이름도 독특하거니와 진한 향 덕분에 입맛에 맞는다.
한창 와인을 즐기는 단계이기에 가능한 다양한 종류의 와인을 맛보고 있다. 되도록 와인을 빚은 장인이나 와인 산지의 토양이나 문화를 떠올릴 정도의 수준이 되고 싶다.
가능하다면 언젠가 포도 산지나 양조장 순례도 해보고 싶다. 사랑하는 친구와 가족과 와인을 마시면서 떠나는 와인 여행은 상상만으로도 큰 즐거움이다. 그날을 앞당기고픈 마음이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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