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과 나] 김재현(84 경영) ING증권 마케팅팀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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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가온 작성일09-01-21 20:44 조회14,397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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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깊은 대화 이끌어내는 최고의 수단"
처음으로 와인을 마셨던 때는 1990년대 초, 아내가 다니던 회사의 송년모임이었다. 화이트 와인이었는데, 반 정도 마시고 있으면 어느 틈엔가 와인을 다시 채워줘서 결국 취하도록 마셨던 기억이 있다. 따라놓은 건 다 마셔야 하는 줄 알았기 때문이다.
맛과 향에 매혹되다
본격적으로 와인을 알아가기 시작한 계기는 모교 MBA 재학 중에 찾아왔다. 같이 입학한 38기 원우 중에 프랑스대사관 농업담당 상무관을 하셨던 한관규 동문이 있었다. 한 동문이 MBA 와인동호회를 만들었고, 그 모임에 가입함으로써 본격적으로 와인을 배우기 시작했다. 이렇게 시작된 와인과의 인연 덕분에, MBA 와인동호회회장까지 맡게 됐다.
와인을 선호하는 단계도 여러 과정이 있다. 처음에는 달콤한 맛을 찾게 되지만, 곧 강한 타닌에 빠지게 되어 칠레나 호주 등 신세계의 강렬한 와인을 찾게 된다. 여기서 시간이 더 흐르면, 보다 다양한 맛과 향기를 찾아 프랑스나 이태리 등 구세계 지역의 복합적인 와인을 찾게 된다. 그러다보면 결국 모든 와인을 나름대로 좋아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른다. 다행스럽게도 필자는 업무상 다양한 와인을 시음해볼 수 있었고, 이제는 저렴한 와인에서도 즐거움을 찾을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모든 와인이 가지고 있는 나름의 소중함을 느끼는 셈이다.
이직에서 와인펀드까지
취미로 시작했던 와인은 이직 계기도 됐다. 하나은행에서 개인자산관리를 하는 웰스매니저로 근무할 당시, 한 고객이 “회사에서 와인사업을 시작한다”며 “와인을 잘 아는 사람을 찾아달라”고 부탁했다. 당시 와인협회에 가입되어 있던 터라, 필요한 인재를 추천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러면서 와인 사업에 대한 여러 가지 조언을 했는데, 필자에게도 자리를 옮겨 와인사업팀을 이끌어 줄 것을 부탁했다. 당시에는 이직은 전혀 고려 사항이 아니었지만, 워낙 간청을 하는 바람에 그 회사의 와인사업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와인 사업에 종사하면서 꿈에 그리던 프랑스 보르도 지방을 방문했음은 물론, 귀하기로 이름난 와인들도 시음해볼 수 있었다. 처음부터 와인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 아니었지만 이 점을 오히려 기회로 삼기로 했다. 금융계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와인사업에 금융을 접목시킨 국내 최초의 와인펀드를 만든 것이다.
와인펀드는 고객이 맡긴 돈으로 투자할 만한 와인을 사두었다가 와인가격이 오르면 이를 되팔아 차익을 돌려주는 금융상품이다. 주식처럼 와인도 잠재가치를 철저하게 따져보고 선정해서 투자한다. 물론 와인펀드는 와인을 저장할 창고를 구하는 등 부가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상품 자체가 하방경직성이 매우 강한 특성이 있어서 투자 가치가 있는 상품이다.
이러한 와인펀드는 2008년 국내에서 1500억 원이 설정됐고, 이는 같은 기간 중 싱가포르에서 조성된 700억 원에 비해 두 배가 넘는 액수였다. 대한민국을 유럽 와인시장의 큰손으로 만든 셈이다. 비록 지금은 와인업계를 떠나 기존의 개인자산관리업무로 복귀했지만, 와인펀드를 창출한 경험은 소중한 자산으로 남아있다.
와인이 가져다 준 행복
와인의 좋은 점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혈액순환이 좋아져 동맥경화나 심장마비를 예방할 수 있고, 노화를 방지할 수 있으며, 피부미용에도 좋다. 무엇보다 와인의 가장 큰 장점은 대화를 이끌어 내는 확실한 수단이라는 점이다. 맞벌이를 하는 필자의 부부는 유일하게 주말을 함께 보낼 수 있는 데, 모처럼 둘이 지내다 보면 즐거운 대화를 나누기보다 다투기 일쑤였다. 하지만 와인을 만나면서 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와인이 그 동안 못했던 이야기들을 끄집어내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말이면 장인어른과 아내와 함께 와인을 즐긴다. 셋이서 와인 한 병을 나누어 마시면 양이 딱 좋을 뿐더러, 대화를 통해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연말 가족 여행은 모교 개교 50주년 기념와인과 함께했다. 이 귀한 와인을 가족과 함께 흠뻑 빠져보고 싶어서였다. 사실 개교 50주년 기념와인은 1차 수입분이었던 2004년 빈티지의 ‘세븐힐 셀러스 까베르네 쇼비뇽’이 먼저였다. 당시 풀 바디의 묵직함, 블랙 체리, 다크 초콜릿, 후추 등 좋은 레드와인에서 찾아볼 수 있는 향들이 골고루 나타났던 훌륭한 와인이라는 기억이 있었다. 게다가 프랑스산 오크통 숙성으로 타닌도 매우 부드러웠다.
이에 비해 이번에 새로 시음한 2006년 빈티지의 ‘세븐힐 셀러스 쉬라즈’는 알코올이 좀 더 강하게 느껴졌다. 타닌도 강해져서 예전 와인보다 더욱 강렬한 느낌을 받았다. 이런 느낌은 까베르네 쇼비뇽과 구별되는 쉬라즈의 매력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예전 기념 와인을 음미해 본 동문이라면, 이번 쉬라즈를 통해 미처 몰랐던 새로운 매력에 빠질 수 있을 것이다.
*알림
와인을 즐기는 동문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2매 내외 분량으로 alumni@sogang.ac.kr로 보내주세요. 글이 채택되신 동문에게는 모교 개교 50주년 기념와인 '세븐힐 셀러스 쉬라즈'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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