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진 경험, 내가 박물관을 떠날 수 없는 이유
10월 31일부로 국립전주박물관장에서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실장으로 자리를 옮긴 이원복(72 사학) 동문은 새 일터에 적응하고 과중한 업무를 처리하느라 무척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 동문은 1975년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직 공채 1기로 입사한 이후, 가장 왕성한 활동을 해야 하는 자리를 맡은 셈이다. <편집자>
박물관과의 인연, 그리고 서강
박물관과 인연을 맺은 지 33년째인 이 동문은 “작지만 알찬 모교에서 제대로 학문하는 방법을 배웠기에 삶의 중심을 잡고, 이제는 현재가 된 ‘미래’를 지금까지 준비해 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교수와 제자의 관계가 돈독하기로 이름난 모교 사학과 출신답게, 이 동문은 지금껏 한눈팔지 않고 우리나라 박물관 발전에 일조할 수 있었던 공을 스승에게 돌렸다.
“사학과 은사이신 故이기백 교수님, 모교 사학과에서 강의하셨고 국립중앙박물관장을 맡으셨던 故한병삼 선생님, 역시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역임하신 정양모 선생님과의 인연이 박물관으로 저를 이끌었습니다.”
이 동문은 “당시 교수님들은 ‘우리는 징검다리다. 우리를 밟고 넘어가라’며 학생들의 논리적인 비판을 장려하는 등 학문 연구 환경을 조성해 주셨다”고 설명했다.
혜원 신윤복의 재발견
최근 혜원 신윤복을 등장시킨 드라마와 영화가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이 동문은 오늘날 혜원 신윤복이 큰 주목을 받기까지 기초 자료를 쌓아 둔 연구자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윤복의 생애와 작품 세계를 총체적으로 연구한 논문의 저자이자, 신윤복에 대한 기획 전시도 일찌감치 개최한 바가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 동문에게 요즘 불거진 신윤복에 대한 왜곡 논쟁에 대해 묻자 전문가다운 식견이 쏟아졌다. 이 동문은 “‘팩션(faction, 사실이나 실존 인물에 상상력을 덧붙여 재창조한 문화예술 장르 : 편집자)’에 대해 관대한 편이다”라고 운을 뗀 뒤 “혜원을 남장 여자로 등장시켰다는 등의 왜곡 논란보다 신윤복의 작품을 통해 당시의 시대상을 엿볼 수 있다는 것에 관심이 모아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림 자체가 역사의 기록이자 조형 언어로서의 역사이므로, 작품을 통해 보고 배울 수 있는 것에 대해 무게 중심이 놓여야 한다는 설명이다.
덧붙여 이 동문은 “신윤복이 그렸다고 알려진 춘화(春畵, 남녀 간 성교 장면을 그린 그림 : 편집자) 가운데 상당수가 위작(僞作)이라 생각한다”며 “신윤복의 작품은 단순한 외설이 아니라, 신운(神韻, 신비로운 운치 : 편집자)을 지닌 예술임을 이해해야한다”고 말했다. 이 동문은 또 “신윤복의 작품세계가 춘화로 치우쳐 설명되고 있는 현실은 우려할만하다”며 “진정한 재발견과 명예회복이 시급하다. 이것이 요즘 풀어야 할 숙제다”라고 말했다.
"나는 공부하러 박물관 간다"
누구보다 바쁘게 일하면서도 이 동문은 여전히 ‘공부’에 목말라 있었다. 지금까지 60편이 넘는 논문, 단독 저서 6권, 공저 10권 이상 등을 펴낸 이 동문은 “다양한 전시회 준비로 공부할 시간이 없을 때 무척 아쉽다”고 토로했다. 그렇지만 “연구도 좋지만 박물관에서 일하면서 경험으로 얻는 배움 또한 중요하기 때문에 박물관을 떠날 수가 없다”고 말했다. 특히, 1986년 국립중앙박물관이 경복궁에서 중앙청으로 옮기는 8개월 동안 소장한 모든 그림을 볼 수 있었던 기회와 지방 박물관에서 일하는 동안 수많은 자료를 발굴했던 일화를 소개하며 “일이 곧 공부가 되었던 뜻 깊은 시기였다”고 말했다.
서강으로 보는 대한민국 50년
2010년 4월이 개교 50주년이 되는 시기임을 헤아린 이 동문은, 지금까지 배출된 동문 가운데 우리나라 각 분야에 큰 영향을 끼친 동문의 자료를 모아 전시해 볼 것을 권했다. 서강을 통해 대한민국의 50년을 조명하고, 이를 통해 서강의 존재 의미를 부각시킬 수 있다는 취지다. 또, 동문들의 애장품을 기증받아 모교 박물관에 전시하는 방안도 내놓았다. 동문의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하면, 뜻밖의 성과가 나올 수 있다는 의미에서다. 실제로 1978년 모교 박물관에 500여 점에 달하는 민속품을 기증한 이문원 선생도 이 동문 덕분에 애장품을 모교에 건넬 수 있었다. 이문원 선생은 이 동문의 고등학교 시절 교장 선생님이었기 때문이다.
이 동문은 우리나라에 근대적 박물관이 생긴지 100주년이 되는 2009년을 맞아, 이를 기념하는 여러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이 동문은 “깊은 연구에 기초를 두면서도 관객들의 눈높이에 맞는 재미있는 전시를 선보이겠다”며 “이를 계기로 박물관이 문화유산의 보존, 평생교육의 역할 뿐만 아니라 휴식을 취하고 즐길 수 있는 공간임을 강조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 같은 이 동문의 계획이 곧 실현되리라는 기대감은, 인터뷰가 끝나자마자 부서별 업무보고를 받기 위해 회의실로 발걸음을 떼는 이 동문의 뒷모습에서 충족될 수 있었다.
글, 사진= 김성중(01. 신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