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종인 신부 선종 추모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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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하유진 작성일08-09-04 19:00 조회12,979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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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교 전임교수를 역임한 계종인(Robert J. Kelly) 신부가 8월 16일 미국 위스콘신주워와토사에서 향년 87세로 선종했다. 계종인 신부의 장례미사는 8월 20일 오후 7시미국 성 카밀루스 성당에서 봉헌됐다. 모교에서는 22일 오전 11시 이냐시오관 성당에서 계종인 신부 선종 추모미사가 열렸다.
8월 22일 모교 이냐시오 성당에서 고 계종인 신부 선종 추모 미사가 열렸다. 사진 왼쪽부터 박병준 교목처장, 민기식 예수회 한국부관구장, 유시찬 재단이사장, 채준호 예수회한국관구장, 박문수 신부.
추모 미사는 채준호 예수회한국관구장, 민기식 예수회한국부관구장, 유시찬 재단 이사장, 손병두 총장, 박문수 이사, 박홍 신부, 최운열 부총장, 이창섭 총동문회 사무국장 등 교내외 관계자와 동문 등 1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경건하게 치러졌다. 주례를 맡은 유시찬 이사장은 “진성만 신부님 장례이후, 큰 신부님을 보내게 됐다. 이럴때마다 삶을 되돌아보게 된다”고 말했다.
민기식 예수회 한국부관구장은 미사강론을 통해 “빈틈없고 똑똑했던 계종인 신부님은 70대에도 자신을 ‘Just Kid(그저 어린아이일 뿐)’라 칭했지만, 80세에 이르면서 치매 증상이 나타났다”며 “서강대학교에서 12년 동안 신학을 강의하면서 아낌없이 살고 남을 위해 기도했다”고 말했다.
예수회 사제가 고 계종인 신부의 영정에 헌화하고 있다.
미사가 끝난 뒤 마련된 추모식에서 계종인 신부의 영정사진 앞에 추모객들은 흰 국화를 바쳤다. 박문수 신부는 추모사에서 “사회 정의를 구현하는 데 열정을 보였고, 인권운동에 참여했던 계종인 신부님으로부터 느낀 점이 많아서 저도 빈민운동에 나설수 있었다”고 밝혔다. 채준호 예수회 한국관구장은 “살아 있는 사전으로 불렸던 계종인 신부님이 선종하신 것을 볼 때, 한 세대가 끝나가는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다. 박 신부는 이어 ‘소중했던 모든 것을 당신께 돌려 드리오니, 당신 뜻대로 이끌어주소서’라는 성 이냐시오의 기도문을 읊고 계종인 신부에게 드리는 노래를 불러 추모객 들을 숙연케했다.
故계종인 신부 약력
생년월일 : 1921년 4월 7일
출생지 : 미국 북 다코타주 밸리 시티
1939.08.08 : 예수회 입회
1940~1946, 1949~1953 : 미국 성루이 대학교 영문학사, 철학석사, 신학S.T.L.
1946.08~1949.06 : 크레이턴 대학교, 고등학교 영어영문학 교사
1952.06.19 : 사제서품
1954.09~1957.06 : 그레고리아나 대학교, Rome 윤리신학 박사 과정 수료
1957.08~1963.05 : 성루이 대학교. 신학대학원 윤리신학 교수
1965.01~1969.12 : 광주 대건신학대학 윤리신학 교수
1970.01~1975.12, 1981.09~1986.12 : 서강대학교 윤리신학 교수
1977.01~1981.05 : 노틀담 신학교 윤리신학교수, 사목양성담당
1970.01~1974.12, 1982.01~1984.05 : 예수회 한국지구 회원교육담당
1986.04~1997.12, 1998.01~2001 : 예수회 한국지구 지구비서, 지구비서보, 고서류실장
2005.12~2008.08.16 : 미국 위스콘신 카밀루스 예수회 공동체
2008.08.16 : 미국 위시콘신주 밀워키에서 선종
글·사진 = 정범석(국문·96)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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