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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에서-최정휘(92,사학) LG아트센터 공연기획팀 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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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8-02-01 09:51 조회16,03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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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숨쉬는 무대 뒤의 매력


최정휘(92,사학) LG아트센터 공연기획팀 대리

최근 대학로에서 연극을 한 편 봤다. <과학하는 마음>. 연극을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조용한 마음으로 깊은 사색에 잠기기는 실로 오랜만이었다. 그 연극을 보기 전의 나와 보고 난 후의 나는 어쩌면 전혀 다른 사람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예술은 그런 것이라고 믿어왔다. 설명할 수 없는 직관적인 감동이든, 명확히 말로 표현할 수 있는 메시지이든 예술은 인간을 변화시키고, 정신을 고양시키는 힘이다. 그 힘을 믿기에 그 언저리 어디에선가 일하고 싶었다.

대학을 졸업할 즈음, 앞길이 막막했다. 재학시절 한 일이라곤 서강연극회 동아리 방에서 노닥거리거나 방학 때 어설프게 연극을 만들어 본 것 밖에 없어 도대체 졸업후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한가지 분명했던 건 ‘무대’라는 공간과 멀지 않은 곳에 있고픈 열망이었다. 10년이 지난 지금, 내 책상에서 3분을 걸어가면 멋진 무대가 나타난다! 하지만 진실을 말하자면 공연장에서 일하면서도 일주일 동안 무대에 갈 일이 한번도 없을 때가 태반이다. 사무실에서 컴퓨터와 전화, 서류를 교차하며 씨름하는 시간이 훨씬 많다.


공연을 기획하는 일의 반은 사람을 읽는 일이고 나머지 반은 사람을 설득하는 일이다. 예술가가 보는 세상의 풍경과 그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읽어낼 수 있어야 그것을 가장 효과적으로 알릴 수 있다. 관객들의 시선이 어느 곳을 향해 움직이는지 읽을 수 있어야 그들을 제대로 안내할 수 있다. 참으로 고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고백하건대 약속된 시간에 무대가 준비되고, 관객들이 모이고, 공연자들이 등장하는, 한 번 한 번이 실로 기적 같은 이 실시간의 예술을 위해서 공연을 기획하는 사람들은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뛰고, 입술이 마르게 소리 질러야 한다. 명징함과 깊음을 갖고 있는 공연일수록 관객들이 볼 수 없는 무대 뒤와 어두운 컨트롤 부스의 상황은 치열하다.


내가 일하는 극장의 작품인데도 보지 못한 적이 있다. 한 번은 이미 시작한 매진 공연의 표를 구하려고 장사진을 이룬 열성 관객들을 응대하느라 보지 못했다. 또 어느 때는 공연 중인 아티스트에게 수건과 물을 공수하느라 커튼콜에서야 겨우 객석에 들어갈 수 있었던 적도 있다. 공연 전 한바탕 전투를 치르고 나면 기운이 빠져, 객석에 앉아도 집중이 되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생각한다. ‘왜 내가 이것을 일로 시작했을까? 그냥 관객으로서 객석에 앉았다면 훨씬 더 즐거워하고 감동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러나 모든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무대의 뒤편, 아티스트들이 숨을 고르고 검은 옷 입은 스텝들의 긴장된 눈빛이 빛나는 그 곳이 좋다. 무대 뒤 어두운 구석에 홀로 몸을 숨기고 서서 듣는 관객들의 함성과 박수 소리, 그 순간만큼 가슴을 벅차게 하는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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