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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에서 - 김주삼(80.화학) 삼성미술관 리움 보존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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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유진아 작성일07-04-23 16:29 조회17,14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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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에서 - 김주삼(80.화학) 삼성미술관 리움 보존연구실장

나는 오늘 아침에도 미술관에 간다. 이 말을 들으면 낭만이 있는 백수(?)이거나 큐레이터이겠거니 생각할 테지만 나는 미술관에서 컨서버터(conservator)라는 일을 하고 있다. 즉 미술관의 소장품의 보존과 복원을 책임지고 있다.

큐레이터는 전시라는 이벤트의 기획자로서 대중과 접하게 되는 미술관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미술관의 운영에 관여하는 인원들의 수는 이들 큐레이터의 몇 배가 된다. 왜냐하면 미술관이나 박물관의 설립 목적에는 전시 이외에도 수집, 보존, 관리, 연구라는 기능이 있기 때문이다. 이 기능에 종사하는 분들은 대부분 관람객들에게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에 눈에 띄지 않을 뿐이다. 마치 스파이 영화에서 평범하게 위장된 출입구를 지나면 넓은 공간에 수많은 사람들이 북적대는 본부가 나타나는 것처럼 미술관의 문 몇 개만 지나면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분주히 일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들 중에는 본인이 일을 하고 있는 보존연구실의 연구원들도 있다. 보존연구실은 미술품의 보존을 담당하는 곳으로 첨단 설비를 갖춘 미술품의 병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최근 '냉정과 열정 사이'란 영화에서 회화복원 분야가 매우 인상적으로 소개되어서 이 분야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이 분야를 한마디로 말하면 자연적인 노화나 사고 등으로 손상된 미술품들의 수명을 연장시켜주고 복원시켜 주는 것이다. 이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가장 큰 특권은 미술사에 나오는 손상된 미술품들과 국보급 유물들을 내 손으로 직접 만지고 치료를 한다는 점이다. 다루는 작품들의 가치만큼 실수에 대한 위험성과 책임감도 따르지만 이 작품들이 내 손에 치료되어 제 모습을 찾게 될 때 그 보람과 자부심 또한 매우 크다.

내가 이 일을 하게 된 동기는 우연찮게 본 한 미술잡지의 기사 때문이다. 82년도로 기억되는 데 국립 현대 미술관에서 우리 작품 두 점을 일본에 보내 복원을 했다는 기사였다. 입학초부터 전공인 화학보다 구체육관의 강미반에서 그림 그리기를 더 열심히 했던 나로서는 미술품 복원이라는 분야가 구미에 당길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화학지식도 필요하다고 하니 속된 말로 딱 내 미래의 직업이었다. 

 

이 직업을 선택하는데 갈등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군대를 마치고 복학을 한 후에 해외의 복원학교를 찾아보았는데 당시로서는 국내에 이 분야를 공부한 사람도 없고 요즘처럼 인터넷으로 정보를 쉽게 얻던 시절도 아니었다. 변변한 정보도 없이 무작정 유학을 떠나야 하는 상황에 있다 보니 여간 혼란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이때 고인이 되신 불문과 강거배 교수님께서는 손수 프랑스의 친구들에게 학교 정보를 알아 봐 주셨다. 타과학생을 위해 번거로움을 감수하기란 쉽지 않았을 텐데…그리고 은퇴하신 화학과 윤능민 교수님께서 수업시간 중에 하신 말씀 한마디가 이 길을 가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이 자리에 있는 졸업생들이 모두 전공을 살려 과학자가 되는 것을 기대할 수 없다. 지금이라도 동료들에 비해 제일 잘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진로를 결정하라" 


이 고마운 은사들의 바람에 충족할 만큼 훌륭한 서강인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서강은 내 인생의 방향을 잡게 해준 고마운 존재임에는 틀림이 없다. 요즈음 노고산의 풍경은 과거에 비해 많은 건물들이 들어서서 너무 여유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교문을 지나 메리홀 쪽으로 오르다 보면 27년전 신입생 시절처럼 마음이 두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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