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정융(07 국문, 필명 유정) 동문, 2021김유정신인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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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1-10-12 11:23 조회32,457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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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융(07 국문, 필명 유정) 동문이 시 부문에서 2021년 김유정 신인문학상을 수상했다. 수상작「마네킹」은 매너리즘에 물든 사회와 시단에 문제를 제기하고 새로움을 제시한다는 평을 받았다.
유 동문은 수상소감으로 "나를 오래도록 도시의 어둠 속에서 건져올린 것은 프랑스 영화감독 프랑수와 트뤼포의 영화를 사랑하는 세가지 방법이었다. 고친 문장을 여러 번 보는 것과 시에 대한 사회적 통찰력을 키우는 일과 시를 열심히 쓰되 시를 버리는 일도 함께했다. 체사레 파베세 시집, 최승자가 번역한 막스 피카르트의 침묵의 세계 그리고 질 들뢰즈의 매저키즘은 오래도록 내 곁을 지켜준 술과 밥이었다"고 전했다.
아래는 「마네킹」 전문이다.
마네킹 -유정
잘 지내나요?
당신의 긴 속눈썹이 생각나요
속눈썹 너머에는 무엇이 있나요?
당신은 그리움이 생기면 발뒤꿈치를 들고
먼 곳의 바다를 바라보곤 했죠
아직도 발뒤꿈치를 들고 있나요?
툭 누군가 건들면 당신은 수평선 쪽으로 쓰러지고 일어나곤 했어요
듣고 있나요? 항상 나의 속삭임이 닿을까 궁금해요
나는 그저 당신이 입었던 옷을 버릇처럼 떠올릴 뿐이에요
그때 당신의 옷에 붙은 가격표를 찾고 있었지요
가격을 확인하면 당신의 눈동자가 흔들렸어요
울음인지 웃음인지 모를 표정 속에서
나는 높게 서 있는 유리창을 닦으며 지상으로 내려와요
당신은 자신의 알몸을 본 적이 있나요?
나도 오늘 당신처럼 옷을 갈아입어야 했어요
건물 외벽에 튀어나온 못에 작업복이 찢겼거든요
이런 날, 집으로 돌아오면
오래된 인형처럼 누워
당신보다 먼 바다를 꿈꾸며 입술을 깨물곤 해요
당신도 뒤척이나요?
문득 당신의 눈가에 말라붙은 마스카라가 보이네요
불붙지 않는 목재처럼.
처음부터 우리는 손을 잡아도 함께 바다로 갈 수 없었군요
아무렇지 않게
우리 사이에 나뭇잎 하나가 흔들리고
마지막 인사 대신
오늘도 허공에 떠서
몰래 유리창에 손자국을 남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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