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교 60주년 앞두고 보는 그 시절 서강 - 하문자(60 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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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9-08-14 10:05 조회18,15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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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문자(60 사학), 이수조(60 경제) 동문 부부
서강, 나의 사랑 나의 Family
1958년, 외모에는 전혀 관심 없던 내게도 아주 멋있어 보이는 외국인 신부 한 분이 우리 성당에 오셔서 미사를 집전하셨다. 키도 크고 눈도 크고 코도 큰 미국 예수회 신부님이셨는데 한국에 가톨릭 대학을 세우기 위해 오셨단다. 그는 자상했고 유머러스했으며 한국어도 잘 하셨고 아이들하고도 잘 노셨다. 당시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경자(60 영문 김경자)와 나는 신부님과 친해졌고, 우리는 교육이 수도회의 주된 활동이자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예수회 대학에 갈 수 있다는 사실에 무척 기뻤다. 그렇게 서강과 나의 인연은 시작됐다.
1959년 가을, 이제는 고인이 된 나의 친구 김경자 수녀와 초대 학장이었던 길로련 신부와 나는 마무리 단장을 하던 A관 3층 복도에서 서강을 내려다보며 꿈에 부풀어 이 얘기 저 얘기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신부님께서 “학교 이름을 장안 대학이라 하려 한다”라고 하셨다. 우리는 깔깔 웃으며 그건 어째 좀 촌스럽다고 이야기했다. 다른 곳에서도 그런 이야기가 있었는지 ‘장안’은 ‘서강’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아! 그때의 그 아름답던 순간들이 머리를 스치며 나를 미소 짓게 한다.
우리나라에도 가톨릭 대학이 생기고 내가 그 대학에 다닐 것이란 꿈으로 무척 들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고 대학 입학 원서를 써야 할 때가 되어 가는데 서강은 아직 대학 입학 허가가 나지 않으니 어쩌나. 담임 선생님께 불려갔고 이러다가 대학에 가지 못하면 어쩌려고 그러냐며 나를 협박(?)하셔서 당시 무시험이었던 연세대에 원서를 냈다. 그러던 중 1차 발표가 있었고, 마침 서강이 허가가 났다. 나는 당연히 서강을 택했고 그때 용감하게 서강만을 기다리던 5명의 경기여고 졸업생과 친하게 되었다.
다행히 우리는 모두 서강인이 되었고 학교가 개교한 후 매일 12시 체육관 안에 있던 작은 경당에서 미사 드리며 기뻐했다. 매주 퀴즈와 잦은 시험으로 우리를 괴롭히고(?) 가차 없이 수업 출석을 체크하던 학교에 우린 스스로를 “서강고등학교에 다닌다”라고 웃으며 이야기했다. 그래도 우리에게는 낭만이 있었고 신부님들의 아낌없는 사랑이 있었다. 4층 옥상에서 우린 당시에는 생소했던 햄버거 파티도 즐겼다. 영어 수업은 한 반에 10명씩 수준에 맞춰 편성되어 원어민 신부님들의 지성어린 특별 교육을 받는 특혜를 누렸으니 영어를 두려워하지 않는 학생들이 되었고 사회는 우리를 부러워했다.
서강은 명성을 높여갔고 우린 서강 Family Spirit을 자랑하며 뿌듯해 했다. 선배가 하나도 없어도 사회는 우리를 실력 있고 성실한 젊은이로 인정해 주었고, 우리는 예수회 대학이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미국 대학원에 apply할 때도 ‘Sogang Jesuit College’라고 썼다. 이때 서강옛집을 편집하던 안우규(60 영문) 동문이 그 유명한 ‘Be as proud of Sogang as Sogang is proud of you.’라는 말도 썼다. 우린 정말 서강을 자랑스러워했고 서강은 우리를 자랑스러워했다.
그런데 세상이 달라져도 너무나 달라진 것일까? 오늘의 서강을 바라보며 처음 서강을 세울 때의 교육 이념이나 내가 바랐던 가톨릭의 모습을 서강에서 찾아보기 힘듦을 자주 느낀다. 몇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서강은 노기남 대주교께서 로마 교황청에 여러 번 청하여 교육 수도회로 알려진 예수회가 그 임무를 맡아 한국에 진출하게 되었는지 알고 있는지, 오늘의 서강은 가톨릭을 얼마나 이해하고 가톨릭 수도회란 어떤 것인지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서 있는 곳이 다르면 보이는 것도 다르다”라는 말을 생각하며 많은 것을 이해하려 하고 보듬으려 하지만 나를 짓누르는 이 질감을 어떻게 할까? 나와 다른 곳에 서 있는 오늘의 서강도 마찬가지겠지만…. 그래도 우리는 family고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존중하며 사랑해야 하겠지. 사랑한다, 서강아! 너의 발전 영원하고 진정 자랑스럽기를.
-추신-
서강을 사랑하고, 온 가족이 서강인인 선배가 자신이 알고 살아온 것을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되돌아보며 쓴 글이라 생각하며 읽어 주었기를 바란다. 서강이여, Be as proud of Sogang as Sogang is proud of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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