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하는 서강인 #4 전명진(02 기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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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8-10-17 09:22 조회15,50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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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길을 묻고 삶을 배우다
세계여행 뒤 사진가의 길로 들어서
나 자신을 발견하고 영감을 얻는 여행
전명진(02 기계)
ROTC 복무 후 1년 간 떠난 세계여행
저에게 여행은 식물의 나뭇잎과도 같다 생각합니다. 한껏 양분과 햇빛을 흡수하게 만들었다가 때가 되면 떨어지고, 다시금 솟아올라 같은 과정을 반복하게 하니까요. 사실 저는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기계 부품과 같은 삶을 살까봐 걱정하던 학생이었습니다. 그러다 졸업과 동시에 군대에 가야하는 ROTC였기에 졸업여행을 겸한 인도 배낭여행을 다녀왔고, 거기서 다양한 삶의 모습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군에서 받는 월급을 모아 다른 이의 삶을 더 들여다 본 뒤 삶의 길을 정하자는 목표를 세우고 제대와 동시에 1년 간 세계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렇게 만난 다양한 곳에서의 다양한 삶은 저를 매료시켰고, 삶의 방향을 새로이 정립하게 했습니다. 제도권 안에서만 살던 저로서는 시스템 밖으로 나가는 것이 두려워 정식 코스를 걷지 않고도 자신만의 길을 일군 분들을 찾아다녔습니다.
삶의 멘토를 찾고 사진가의 길을 걷기 시작
모교 영문과 장영희 교수님을 비롯해 소설가 조정래 선생님, 허영만 화백, 디자이너 앙드레김 등 분야와 관계없이 용기를 주실 만한 분들을 찾아다녔죠. 그 중 사진가 김중만 선생님과 대화를 하게 되었고 선생님은 사진을 배워볼 것을 권하셨습니다. 그렇게 우연한 기회로 선생님으로부터 사진을 배우게 되었고, 5년 간 문하생 기간을 마치고 지금은 5년차 전업사진가로 살게 되었습니다.
여행이라는 나뭇잎이 제 삶을 여기까지 이끌어 주었습니다. 저는 사진 일을 하고 있습니다. 건축과 인물에 관한 사진 작업을 하고 있으며, 덕분에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그 경험과 사진을 바탕으로 몇 권의 책을 지었고, 지난해 쿠바를 주제로 터키항공과 함께 작품을 만들어 전시를 열기도 했습니다. 팟캐스트 ‘여행수다’라는 프로그램을 6년 째 진행 중이며 가끔 TV나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등 호기심 넘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탈리아 피렌체가 가장 매력적
올해 봄에 남태평양 관광기구와의 작업을 위해 솔로몬제도, 사모아, 피지에 다녀왔습니다. 세계여행 때에도 가본 적 없고, 듣기에도 생소한 나라들인데요, 정말 그곳에 천국이 있는게 아닐까하는 생각을 할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특히나 애니메이션 모아나의 문화적 배경이 된 사모아는 깨끗한 자연과 폴리네시아 사람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이 어우러진 장면을 볼 수 있어 인상적이었습니다.
해마다 1월과 6월, 촬영을 위해 세계적인 남성복 박람회가 열리는 피렌체에 갑니다. 수 없이 방문한 곳이지만 그곳을 찾는 전세계의 멋진 사람들을 볼 수 있고, 뿌리 깊게 내려온 오랜 문화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도시를 걷는 것을 여전히 좋아합니다. 골목의 어느 모퉁이를 돌면 르네상스의 정신이 느껴지다가도 첨단의 패션과 자동차를 만나는 곳, 아름다운 강가를 따라 걷다 들어간 카페나 바에서 즐기는 정취. 이런 것들이 조화롭게 모여 있는 도시 피렌체를 가장 좋아합니다.
어딜 가든 조깅을 하는 여행 습관
감사하게도 저는 아직 시차적응에 별 문제를 느끼지 못합니다. 도착과 동시에 그곳의 시간으로 지내기 위한 저만의 방법이기도 한데요, 어느 곳에 언제 도착하든 아침 8시에 조깅을 합니다. 이전에는 산책이었는데, 16년 브라질 올림픽 때 리우 데 자네이루에서 많은 사람들이 아름다운 해변을 따라 조깅하는 걸 본 뒤 꾸준히 지켜오고 있는 규칙입니다.
그러면 숙소 주변의 지리나 분위기를 금방 익힐 수 있을 뿐 아니라 억지로라도 하루만 하고 나면 바로 그곳의 시간을 살 수 있기 때문이죠. 덕분에 길을 잃어도 숙소만은 금세 찾을 수 있게 되는 건 덤이고요.
길 위에서 길을 묻는 방법을 배우다
전공이 기계공학이다 보니 남학생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습니다. 동기들과 모여 자주 술자리를 갖기도 했는데요, 아무런 계획 없이 월미도며, 강원도 삼척이며 자유롭게 떠났던 기억이 많이 납니다. 친구의 입대 전 지리산에 올랐다가 갑작스런 폭우로 길이 끊겨 화엄사에 찾아가 잠자리를 얻기도 했지요. ROTC 동기들과 함께 했던 산행도 좋은 추억이 되어있습니다. 함께 인도를 여행했던 세 명의 동기들은 여전히 인생의 중요한 동반자로 지내고 있고요. 그때의 경험들이 현재의 삶에 건강한 자양분이 되어주었다고 느낍니다.
개인적으로 길 위에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삶의 방향, 그것을 즐기는 방법, 사람들의 사고방식, 영어부터 이탈리아어까지. 그런데 여행을 많이 한다고 해서 길을 잘 알게 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대신 길을 잘 묻는 방법을 배우게 됩니다. 다양성을 인정하고 생각이 열리기 시작하면서 더욱 많은 것들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특히나 낯선 곳에서 마주하는 새로운 모습의 자신을 발견하는 짜릿함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선물이라 생각합니다. 결코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그것이 새로운 영감을 제시하는 것만큼은 확실하니까요.
인생에 점수가 없듯, 여행에도 등급은 없다
마치 유행처럼 여행 문화도 끊임없이 바뀌고 있습니다. 제가 학생 때에는 유럽 정도를 조금 더 싸게, 더 많이 다녀오는 것이 목표였다면, 요즈음은 한 달 살기처럼 느긋하게 한 곳을 느끼고 배우다 오는 여행의 형태도 많아졌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안타까운 것이 두 가지 정도 있습니다.
첫째는 너무 자신의 여행을 인증하려 한다는 점입니다. SNS의 발달로 너도나도 여행지에서 사진을 찍어 올리면서 마치 그걸 인증하기 위해 그 곳에 방문한 것 같은 모습을 목격하게 됩니다. 물론 사진으로 추억을 남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남들이 한다해서, 또는 누군가에게 자랑하기 위해 여행하는 마음가짐은 지양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두 번째로 팟캐스트를 진행하면서, 또는 강연이나 술자리에서 가끔 듣게 되는 이야기인데요, 여행을 고수다 하수다 하는 식으로 나눈다는 것입니다. 누구는 세계일주를 했으니 고수고, 누구는 동남아시아 정도만 여행했으니 하수다 하는 식으로 말이죠. 저는 지극히 그 개념에 반대합니다. 세계 여러 곳을 보고 온 사람도 어느 한 곳에 대해 잘 모를 수 있고, 소중한 사람과 잠시 다녀온 여행이 누군가에게는 생애 최고의 여행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생에 점수가 없듯, 각자의 여행에도 등급을 매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전명진 동문 저서
『탁PD의 여행수다』(공저, 김영사, 2014)
『꿈의 스펙트럼』(컬처그라퍼,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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