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집에서 만난 사람 - 손원평(97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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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8-02-02 14:41 조회18,156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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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몬드’와 ‘서른의 반격’으로 대중과 평단 모두 주목
소설가, 영화인 손원평(97 사회)
손원평(97 사회) 동문은 2017년 한 해를 주목받는 소설가로 바쁘게 보냈다. 2016년 말 ‘아몬드’로 10회 창비청소년문학상을 받은 데 이어 2017년 3월 ‘서른의 반격(원제 1988년생)’으로 제주 4.3평화문학상까지 수상했다. ‘너의 의미’ 등 다수의 단편영화 각본을 쓰고 연출한 영화인이기도 한 손 동문은 대표작을 두 작품이나 내놓은 소설가로 대중 앞에 섰다. 평단의 반응도 좋아서, 작가로서의 발걸음을 성공적으로 내딛었다. 겨울의 문턱에 접어든 어느 날, 손 동문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소설 베스트셀러 목록에 두 작품이나 올렸는데 심정이 어떠신지요?
상상만큼 드라마틱한 감정을 느끼지는 못해요. 생활 속에서 크게 달라진 점은 별로 없는 듯합니다.
학창시절 어떤 학생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언니가 서강대생(93 영문 손원정)이어서, 중·고등학생 시절부터 대학생활을 동경했어요. 학부 때 마음 맞는 친구들끼리 무크지를 만들었던 활동이 기억 남아요. 당시 인디밴드를 비롯해 문화적으로 흥미로운 움직임이 많았는데, 취재도 하고 기사도 썼죠. 어떤 틀에 얽매이지 않고, 무언가 재미있는 일을 해보고 싶었어요. 그때가 3학년이었는데, 보통 그 시기가 일종의 전환기이자 앞으로 뭘 해야 할지 고민할 때잖아요. 저도 그랬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계절학기 때 독후감 수업을 들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중요한 전환점이었어요. 영화를 무척 좋아하시던 교수님이 과제로 시나리오 읽고 독후감 쓰는걸 내주셨어요. 집에 와서 영화 비디오를 빌려서 시나리오를 옆에 놓고 비교해보니 영화와 시나리오의 차이가 느껴지더군요. 마냥 신기했어요. 그 기억이 오래 남아 있습니다.
‘너의 의미’ 등 단편 영화 각본을 쓰고 연출한 영화인인데 아마도 그 수업이 하나의 출발점일 수 있겠네요.
네. 그렇지만 원래 소설을 쓰고 싶어 했어요. 다양한 형태의 글쓰기에도 관심이 많았고요. 대학 4학년 때 휴학하고 영화 평론을 써서 공모전에 냈어요. 이론적인 틀이 갖춰진 글은 아니었고, 영화 보며 느낀 걸 자유롭게 썼는데 씨네21 영화평론 우수상을 받았어요. 그 이후 영화아카데미를 다니며 본격적으로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도 했죠. 그러다가 결혼하고 아기를 낳은 후로는, 한동안 영화를 할 수가 없었어요. 연출부에 들어가면 1년 남짓 아무 일도 못하고 오로지 영화에만 매달려야 하잖아요. 제가 아기를 주로 돌봐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그런 활동은 쉽지 않았죠. 그래서 출산 이후 오래 전부터 하고 싶었던 소설을 써보자고 마음 먹었죠.
육아를 하면서 글쓰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그런 질문을 많이 받는데, 다행히도 아기가 잠을 잘 잤어요. 정말 순했거든요. 그 시간을 이용해 글을 썼어요. 쉽진 않았지만 장점도 있었죠. 원래 글을 쓸 때 준비시간이 긴 편인데, 아기를 키우면서부터 달라졌어요. 아이가 잠드는 거 보고 책상에 앉으니 바로 글 쓰게 되더라고요.
‘아몬드’를 읽어보니 영화 장면이 연상됩니다.
영화화를 염두에 두고 쓴 소설은 아니에요. 시나리오는 영화화되어야 의미가 있지만, 소설은 글 그 자체로 완성되는 작업이니까요. 생각해보면 (시나리오의) 그런 한계 때문에 시나리오 쓰는 것보다 영화 만드는 게 좋아요. 글을 쓴다면 소설 쓰는 게 좋죠. 그래도 시나리오 쓸 때 ‘이 텍스트가 어떻게 화면으로 구현될까’를 상상하면서 썼던 경험이 소설 쓸 때 영향을 끼쳤어요.
두 문학상을 연이어 받기까지의 시간은 어땠는지요.
그저 열심히 썼어요. 공모전에 많이 냈지만, 또 그만큼 많이 떨어졌죠. 고치고 또 고치고. 이번엔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었지만 역시나 떨어지는 경험이 반복됐어요. 처음에는 실패 이후 다시 글 쓰는 게 힘들었는데, 습관이 되고나니 익숙해지고 하루 만에 극복이 되더군요. ‘안 되면 가정문집이라도 만들어서 기록으로 남기자’라고 생각하며 계속 썼어요. 남편의 도움도 컸죠. 편집자는 바뀔 수 있지만 남편은 첫 번째 독자로서 항상 도움을 주었거든요.
소설 속 주인공 윤재는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알렉시티미아’라는 병을 앓고 있고, 나중에 등장하는 곤이는 어렸을 때 부모와 헤어지는 경험을 합니다. 이런 인물이 등장하게 된 과정이 궁금합니다.
아이를 낳고나서 이 어린 생명이 자라나는 게 마냥 신기했어요. 동시에 불안하기도 하고요. 인터넷 사이트나 책을 보면, 내가 들어보지도 못한 수많은 병들이 나열되어 있잖아요. 내 아이도 이 병에 걸릴 수 있다고 생각하면 불안하지요. 그 중에 자폐와는 차이가 있는,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병이 있더라고요. 아, 이런 병을 가진 아이는 어떻게 반응하며 성장할 지 상상하니 자연스럽게 주인공이 묘사되더군요. 마찬가지로 곤이라는 인물도 육아 경험에서 나왔어요. 아이들은 매일매일 얼굴이 달라지거든요. 어느 날 아이의 한 달 전 사진을 보는데, 지금하고 너무 달라져 있었어요. ‘이 아이를 잃어버리면 알아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상상이 소설 속에 반영됐죠.
소설 속에 혐오 범죄도 등장하는데요.
혐오범죄가 흔히 벌어지는 사회잖아요. 제가 혐오범죄를 사회적인 관점에서 비판하고 싶어서 끌어온 소재는 아니에요. 다만 그런 일 앞에서 이 아이가 어떻게 대처하는지를 보여주는 사건으로 썼어요.
‘아몬드’에 인상 깊은 구절이 꽤 많아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껴도 행동하지 않았고 공감한다면서 쉽게 잊었다’라는 구절은 소설에서 던지는 작가님의 메시지일까요.
그 부분을 쓰면서 자칫 독자를 가르치려 드는 것은 아닐까 해서 고민이 많았어요. 그러나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윤재라는 아이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을 그려보고 싶었어요. 우리가 익숙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이 이 아이에겐 생경하지 않을까 생각했죠.
작가로서 영향을 받은 책들과 앞으로 쓰고 싶은 주제도 궁금해요.
저는 책 추천을 잘 못하는데요. ‘데미안’이나 ‘호밀밭의 파수꾼’, 그리고 현진건의 단편들을 좋아해요. 모두 고전이라고 알려진 책들이고 저도 청소년기에 읽은 책들이지요. (현진건을 비롯하여) 근대 소설들은 지금의 정서와 맞닿아있는 지점이 많아서 좋아해요. 그런 독서경험이 ‘아몬드’에도 녹아있죠. 앞으로 쓰고 싶은 주제는 아직 모르겠지만, 일단 다작하는 작가가 되고 싶어요.
요즘도 일주일에 한 번은 로욜라 도서관을 방문한다는 손 동문은, 인터뷰 이후 로욜라 도서관과 엠마오관에서만 맡을 수 있다는 독특한 냄새에 대해 한참동안 이야기했다. 남들은 못 보고 지나치는 일상의 작은 부분이 ‘손원평’이라는 작가의 오감을 거쳐 새롭게 빚어지는 과정을 엿본 듯하다. 갓난아이의 보들보들한 발 촉감이 아몬드처럼 단단해지는 변화를 ‘아몬드’에서 느낄 수 있듯, 앞으로 손원평 작가가 보여줄 사회와 인간 내면의 다양한 풍경이 기대된다.
글 김희선(96 신방)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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