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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초기 서강 일군 푸른 눈의 스승 열한 분의 육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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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선비 작성일10-04-27 16:15 조회11,17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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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의 열정·정의감 가득한 서강에서 가르쳐 행복했다”

강일회 홈커밍이 열렸던 4월 18일 모교 초창기를 일군 외국인 신부님과 교수님 11명이 특별 초대됐다. 이들은 참석한 제자들에게 가장 기억 남는 추억담을 한 가지씩 들려줬고, 자필로는 모든 동문에게 인사를 건넸다. 육성으로 전한 메시지와 자필 인사(녹색글씨)를 번역해 소개한다.
<편집자>



아서 F. 데슬렙스(모교 설립자, 1958~1985 재직)
신촌 로터리에서 서강대학교까지 이르는 길은 포장이 되지 않아 진흙탕이었다. 그래서 매일 출근한 뒤 항상 구두를 닦아야했던 게 기억 남는다.

믿음 위에 시작된 서강, 그것은 하느님의 계획이었습니다.
소망 위에 세워진 서강, 앞으로도 발전할 것입니다. 사랑 위에 발전한 서강, 스승은 사랑을 주었고, 학생들은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대 서강의 자랑이듯 서강 그대의 자랑이어라.


테렌스 W. 도일(전 예수회 신부, 1960년부터 영어 강의)
김용권 영문과 교수를 항상 존경했다. 진흙탕 길을 걸어 출근하고 나서도 구두가 항상 반짝거렸기 때문이다.
 
개교 50주년을 맞아 서강대학교에 돌아오게 되어 대단히 기쁩니다. 제가 50년 전에 가르쳤던 학생들을 만난 것 또한 큰 기쁨입니다.
서강대학교 역사에 작게나마 참여하게 된 것 역시 기쁩니다.
서강대학교가 앞으로도 계속해서 발전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존 L. 미첼 (전 예수회 신부, 1959~1973년 재직, 1968~1973년 신방과 학과장 역임)
학생운동이 가장 기억 남는다. 경찰과 군인이 한쪽에 있고 서강대학생들이 반대쪽에 있었다. 그들 틈에서 최루가스를 맡은 기억이 강렬하다. 당시 학생들에게 정의와 올바른 것에 대해 싸울 것을 당부했다.

서강대학교에는 지성의 강물이 깊이 흐르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지성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이 곳에서 얻었고 저는 여러분을 가르치는 특권을 얻었습니다


존 D. 메이스(5대 총장)
강원도 속초 하조대로 서강대학생들과 캠프를 다녀 온 추억이 좋다. 또, 한 학생이 경찰을 피해 내 방으로 도망쳤을 때 최루탄이 발사돼 숙소로 급히 도망갔던 기억이 있다.

서강대학교가 앞으로도 계속 번영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노고산과 와우산 사이에 자리한 서강대학교가 발전하기를 바랍니다. 훌륭한 서강대학교에 머물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합니다.


존 P. 데일리 (2대 학장, 1~2대 총장)
주말마다 학생들 데리고 산과 들로 하이킹을 다녀 온 기억이 새롭다.

제가 1961년 처음 한국에 온 것은, 다른 예수회 회원들과 같은 삶을 살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1981년이 되면서 많은 훌륭한 젊은 한국 예수회원들이 우리를 대신해 일할 준비가 되어있다고 생각해서, 저는 미국으로 돌아갔습니다. 한국은 과거에도 그랬듯이 앞으로도 언제나 저의 제2의 고향으로 남아있을 것입니다.


스킬링스태드 M. 델마 (3~4대 총장, 1975~1983년 재직)
존 P. 데일리 신부님은 내 멘토였는데, 학장으로 재직하던 그는 학생들 가르치는 걸 좋아했다. 나는 학장이 아니었지만 행정 업무에 관여하며 학장 노릇 비슷한 걸 했다. 서로 도와가며 깊은 우정을 쌓았다.

한국인들의 영적인 성숙뿐만 아니라, 지적인 면과 경제적인 분야에서 의 발전을 도모하고 여러분을 사랑하기 위해 서강에 왔습니다. 머물렀던 20여년 동안, 제가 가르쳤던 것보다 더 많은 것들을 배웠습니다. 그것은 사랑의 수고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존 V. 데일리 (1960년부터 영어, 철학 강의)
25세에 한국에 왔고, 서강대학교에서는 3년 동안 가르쳤다. 학생들과 ‘술집’ 자주 다닌 기억이 난다. ‘청포도’를 읽을 때 ‘넝포도’이라 잘못 발음해 학생들이 재미있어했다.

서강대학교의 초기 학생들을 만나서 대단히 반갑습니다. 여러분들로 인해 서강대학교가 훌륭한 학교가 되었습니다.


로버트 K. 맥킨토시 (1966년부터 영어 강의)
소풍 갈 때 학생들이 트럭을 이용해 이동하던 기억이 난다. 브루닉 신부님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다. 서강대학교 초기 학생들과 함께 할 수 있어서 기쁩니다.

여러분이 ‘한강의 기적’을 이룬 시발점이었습니다. 여러분이 도와준다면 한강의 기적은 계속될 것입니다. 하느님의 축복이 여러분과 함께 있길 바랍니다.


패트릭 바우어즈 (1961년 부임해 영어 강의)
학생들을 가르치려 했지만, 내가 오히려 많이 배웠다. 배움에 대한 열정이 가득했던 학생들이 인상적이었다.
 
길로련 신부님과의 추억이 떠오릅니다. 1959년 11월, 동두천의 Camp Casey(미군기지)에서 신부님을 처음 만났습니다. 서소문동 임시 거처에서의 예수회 생활에 관한 재밌는 얘기를 많이 들려주셨습니다. 신부님은 훌륭한 이야기꾼이셔서 신부님의 이야기를 듣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언제나 웃음을 선사해 주셨습니다


조셉 워드 (전 예수회 신학생, 1961~1964년 영어, 철학 강의)
감각적으로 인상적인 게 많았다. 점심 식사 시간 때 김치 냄새는 무척 강렬했다.
 
45년 이상 서강대학교를 떠나 있다가 개교50주년 기념식에 참석하게 돼서 영광입니다. 1961년 당시 한국은 가난한 나라였지만, 한국 학생들은 진지했고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한국과 서강대학교가 이렇게 발전한 것이 그렇게 놀랍지 않습니다. 한국은 서강 동문들의 지속적인 헌신으로 인해 계속해서 발전할 것으로 보입니다.


카빌 (1960년대 영어, 철학 강의)
농구할 때 서강대학생들이 덩치가 았지만 나와 맞수였던 기억이 있다. 외국인인 우리가 키도 크고 이상하게 생겼다 여겼을 지도 모르지만, 수줍어하지 않고 잘 어울리는 생들이 기억 남는다.

서강대학교에 1962년에 왔었습니다. 개교 당시의 규모와 교육방식으로 50주년까지 왔다는 사실이 더욱 놀랍습니다. 서강대학교가 이룬 훌륭하고 탁월함은 학생들을 지도한 분들의 친절함과 열린 사고, 그리고 어린 아이와 같이 행복할 수 있는 기질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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