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의 장인-여름 새벽에 떠난 책으로의 모험, 김광식(83.철학) 책세상 편집부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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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6-01-24 14:37 조회15,100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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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은 유일한 '생각의 집' 입니다.
여름 새벽에 떠난 책으로의 모험, 김광식(83.철학) 책세상 편집부 주간
김광식 동문(83.철학)은 책을 만드는 사람이다. 김광식 주간이 책과 인연을 맺은 지 햇수로 20년이 되었다. 철학과를 졸업하고 전공을 살려 대학원에 진학했지만 별다른 재미가 없어 그만두고 '빈둥대고' 있는데 같은 과 동기가 철학 전문 출판사를 소개시켜 준 것이 인연이 되어 지금까지 왔다. 본인도 자세히 세어 보지는 않았지만 출판과 인연을 맺은 20년 동안 그의 손을 거쳐간 책은 줄잡아 300~400종 정도.
20년 동안 출판 외에 다른 일을 해 본 것은 그의 기억에 없다. 아주 잠깐 랭보의 시에서 이름을 빌려 온 '여름 새벽'이란 출판기획대행사를 운영한 것이 전부랄까. '여름 새벽'에서 그는 '문화 양아치'들과 함께 출판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리고 이를 실행에 옮길 꿈을 꾼다. 출판계의 지형을 바꿀 수 있는 다양한 선진적인 아이디어를 쏟아냈지만 당시 출판계의 '인식 부족'으로 꿈은 현실화되지 못했다. 결론적으로 '여름 새벽'은 망했지만 출판계 입문 초창기에 그가 여름 새벽에 꾼 꿈은 책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젊은 김광식으로서는 모험의 시작인 셈이었다.
'기획자 김광식'이 세상의 주목을 받은 것은 <책세상 문고, 우리시대>를 통해서였다. 2000년 4월 탁석산의 <한국인의 정체성>을 001권으로 처음 찍은 이래 2005년 3월 구춘권(81.정외)의 <메가테러리즘과 미국의 세계질서 전쟁>으로 100권을 돌파했고, 6년 차를 맞은 올해 106권까지 출간된 <우리시대>는 '인문학의 위기를 극복한 모범 사례'로 손꼽히고 있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문고이다. 권당 평균 1만부에 육박하는 판매부수를 기록하고 있는 책세상의 우리문고 시리즈는 김광식 동문에 의해 철저히 기획된 '작품'이다.
김 주간은 순수 국내 저자만으로 구성된 제대로 된 문고가 아직 우리나라에 없다는 아쉬움을 가지고 <우리시대>의 기획을 시작했다. 기획은 역시 책을 쓸 필자에서 막혔다. 이슈가 되는 부분에 대해 학문적인 근거를 가지고 자기 주장을 펼칠 수 있는 필자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럴 즈음, 국내에 박사급 시간강사만 5만명이 넘는다는 신문기사는 김 동문에게는 희소식이었다. 김 동문은 아직 교수 자리에 연연해하지 않는 패기가 있으면서도 학문적인 성과와 현실의 이슈를 결합해 대중적인 글을 쓸 수 있는 필자를 발굴하기 시작했다.
<우리시대> 시리즈는 권당 200쪽 안팎의 작은 책이지만 출판계에서 차지하는 부피는 상당하다. 박사급 신진 인재들에게 발언의 장을 마련해 주었고, 대학 졸업 후 수준에 맞는 마땅한 읽을 거리를 찾지 못했던 독자들에게는 갈증을 해소해 주었다. 저자소개를 필자가 직접하는 방식이라든가, 프로 사진 작가가 찍은 저자 프로필 사진, 글읽기의 흐름을 방해하는‘주’를 책의 말미에 일괄적으로 배치하는 것, 주제와 관련된 참고 서적에 대한 단순 소개가 아닌 비평적 소개 등은 이 시리즈가 얼마나 꼼꼼하게 기획된 것인지를 말해준다.
문고판의 대표격으로 일컫는 일본의 이와나미 문고에 빗대어 ‘한국의 이와나미 문고’로 지칭되는 ‘책세상 우리문고’ 시리즈를 김 동문은 앞으로 2, 3천권까지 계속 출간할 예정이다. 이 외에도 김 동문은 니체 전집, 고전의 세계, 세계의 문학 등 굵직굵직하지만 구미가 당기는 기획으로 책을 읽지 않는 시대에 책의 권위를 떨어뜨리지 않으면서도 독자들을 깊고 풍부한 지식의 만찬에 초대하고 있다.
김 동문은 돈을 벌기 위해 책을 만들지 않는다. 김 동문이 책을 만드는 이유는 책을 통해 사람들에게 반성적으로 사유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함이라고 한다. 김 동문은 5천권 정도 팔릴 책을 6, 7천부 파는 것이 ‘많이 파는 것’이지, 무턱대고 ‘많이 팔아야겠다’는 생각은 위험하다고 지적한다. 100명이 한 권의 베스트셀러를 읽는 것보다 100명이 10권의 다양한 책을 읽는 것이 출판계나 우리 사회에 보다 유익하다는 것이 김 동문의 생각이다. 역동성이 강한 우리 사회에는 다양성의 확보와 가치의 인정이 보다 중요한 덕목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인터넷 시대, 디지털 시대라지만 인간의 사유를 완결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매체는 여전히 종이로 만든 책이 유일하다는 점이 김 동문이 책에 갖는 매력이다. 스크린을 통해 웹 문서를 바라보면서 생각에 잠길 수는 없다고 김 동문은 힘주어 말한다.
여름의 새벽에 책으로 모험을 떠난 김 동문은 이제 정오를 맞이하여 원숙한 장인이 되어 있다. 좋은 글을 읽고 희열을 느낄 때, 좋은 책을 발견하고 책을 자꾸 어루만져주고 싶을 때, 아주 가끔 김 주간처럼 책을 만들었을 장인의 손길을 느낄 수 있다면 우리는 책을 읽는 장인의 수준에 다다른 것이 아닐까.
조광현(88·경제) 디지털미디어리서치 대표·본보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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