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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듣는 은사님 명강의⑦ 영문과 김용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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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04-12-03 15:12 조회23,23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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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점 짜고 어려운 강의 누굴 위해서인가… 이젠 풀어라” 

 

동문회에서 김용권 선생님과의 인터뷰 원고 청탁을 받았을 때, 다른 어떤 생각보다도, 최근 몇 년 동안 인사도 제대로 드리지 못했던 것이 제일 먼저 마음에 걸렸고, 그래서 그간의 무관심과 불찰에 대한 송구스러움을 조금이나마 덜어내려고 선뜻 응낙을 하고 말았다. 먼저 전화를 드렸다. 연희동 큰길가의 빌딩에 연구소가 있었기에 그곳으로 찾아뵈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오랜만의 전화마저 그간에 선생님을 오래 뵙지 못한 사실을 확인 해줄 따름이었다. 

 

“중국인 학교 옆길로 연대 뒷문 들어가는 길이 있는데, 왼쪽에 소방서 공사장이 있지, 그 옆길로 가면 ○○교회가 있고 그 옆에 ○○빌라 3차가 있는데, 그곳에서 위쪽으로 약 30~40 미터 더 올라오면 ○○빌라 2차가 있어.” 

 

항상 그렇듯이 김용권 선생님께서는 정확하게 그리고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셨고, 그래서 나는 그 전화 한 통화로 단숨에 김용권 선생님의 분위기를 환기할 수 있었다. 큰길가에서 두 번째로 옮긴(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인데, 그런 사실도 모르고 있었으니 이 글을 쓸 자격이 있는 제자인가?) 연구소는 아직 정리가 다 끝나지는 않았지만, 늦가을의 햇살이 커다란 지구본이 한쪽에 외롭게 놓여있는 거실을 환희 비추고 있었다. 

 

96년 2월에 정년 퇴직을 하셨으니, 김용권 선생님께서는 올해 73세이시다. 몇 년 전 영문학회에서 잠깐 뵈었을때, 금주 중이시라는 말씀이 생각나, 먼저 건강부터 여쭈었다. 지방간 수치가 조금 높아서 금주와 절주를 하고, 일주일에 서너 번 뒷산으로 등산을 다녔더니 이제는 괜찮아 지셨단다. 지방간 문제가 심각하지 않으니 선생님께는 정년이 멈출 정년이 아니고 기간이 정해진 정년임이 분명하였다. 여전히 건강하시고, 강의도 5년 명예교수 후에도 계속하시고 계신다. 이번 학기에는 “영어 번역의 이론과 실제”라는 학부생 강의를 하시고 계시고, 몇 년 전에는 3과목(?)까지 맡은 적도 있으시단다. 정말 건강하지 않으시면 엄두도 못 낼 일일 것이다. 

 

강의 말씀 후에, 서가를 보여주셨다. 최근에 Commentary잡지를 모으시고, 미국현대시에 관한 책들도 보여주셨다. 그리고 요즘에는 영문학회 50년사를 집필 중이시란다. 책상 위에 각종 자료들이 즐비하다. 

 

인터뷰 형식이라 해서, 나도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선생님 강의가 애매함의 시학으로 가득차서 어렵고 학점 짜고 무섭기까지 하다고 하는데요?” “그래 나에게 당했다고 생각하는 학생들도 많지만, 그게 다 누굴 위한 것이겠나? 이제 풀어라!” “선생님께선 교수가 아니면 어떤 직업을 택했을까요?” “호기심이 많았으니 조사 연구원이나 또는 독일어 등 외국어에 관심이 있었으니 외교관이나 국제기구 활동가가 되지 않았을까?” “돌이켜보면 학생들에게 미안한 점은 없었는지요?” “학생처장 5년, 학장, 대학원장 등 보직을 너무 오래 하여서 학생들과 같이 대화하는 시간이 없었던 점, 강의 준비에 조금 소홀했던 점들이 후회스럽지.”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전화가 왔다. 선생님께서 전화 받으시는데, 역시 최근에 나온 영한사전에서 잘못된 부분을 줄줄이 지적하신다. 나로서는 엄두도 못 낼 기억력과 관심에 또 한 번 놀랬다. 선생님께서 요사이 특별한 일은 없으시고(풀브라이트 심사위원직도 이제 그만 두셨단다.), 강의하시는데 신경쓰시고 간혹 한달에 한번 친구분들과 포커를 즐기는 정도라신다. 

 

김용권 선생님께서는 우리나라 영문학계 1세대와 2세대를 잇는 1.5세대로서 그간 교육과 연구 그리고 사회활동에 그야말로 많은 업적을 남기셨다. 이제 영어영문학회 50년사를 잘 쓰시고, 그간 강의하시면서 항상 2,30년대에서 그치고 말아서 아쉽다고 하셨던 “현대 영미시” 강좌에 필요한 좋은 저서 한 권 내시면 어떠실지. 

 

늦가을의 오후는 너무 짧다. 여섯시도 안되었는데 벌써 어둠이 깔렸다. 올해가 가기 전에 제자들과 저녁자리를 꼭 마련하겠다고 다짐하면서 나는 선생님께 작별 인사를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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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거용(72.영문) 상명대 영어교육과 교수 

 

 

내가 본 김용권 선생님 

차가운 인상과는 달리 유머감각 풍부 


김용권 교수님은 영문학과 졸업생들에게는 기억이 안 날 수 없는 분이다. 특히 76학번의 경우는 더욱 그랬던 것 같다. 처음 입학할 때 오리엔테이션에선가 어렴풋이 알았던 교수님에 대해서 당시 1학년 영어를 가르치셨던 브루닉(Breunig) 신부님은 수업시간에 수차례 김용권 교수님에 대해 소개를 해주셨다. 

 

76년 당시 유신체제 하에서 군사문화를 잘 알고 있던 신부님은 전에 자신이 학과장을 할 때는 밑에 있었는데 지금은 학과장으로 자신보다 위에 있다는 식으로 그 직책의 높음을 여러 차례 설명해 주시곤 했다. 그래서 학과장은 높은 직책이니 우리 같은 학생이 만나기가 어려운 분으로 인식이 되었다. 1학년 내내 수업시간 만나는 일도 없었고 웃음도 없이 항상 입을 꼭 다물고 계신 차가운 인상의 교수님에 대해서 친근감을 느끼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던 중 2학년이 되어 전공과목인 영문학개론 시간에 처음으로 교수님을 만나게 되었다. 학기초에 사건은 터지고 말았다. 수업시간 중 교수님이 어떤 단어에 대하여 무슨 뜻이냐고 우리들에게 질문을 던졌는데 한 친구가 무의식 중에(겁도 없이) “사전에 나와 있어요”라고 대답한 것이었다. 이런 농담조의 대답이 교수님의 비위를 무척이나 건드렸던 것 같다.

 

확실히 기억은 안 나지만“그딴 식으로 수업을 받으려면 나가라”고 하시지 않았나 기억된다. 이 시간부터 교수님 수업시간은 초긴장(?) 속에 진행되었다. 그러나 학기를 마칠 때에는 영문학 뿐 아니라 미학 등 다양한 분야에 박식한 지식과 유머를 주셨던 교수님에 대하여 이해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존경심까지 생겼던 것은 나만의 느낌이 아닐 것이다.

 

작년엔가 필자가 재직하는 대학 내에서 김용권 교수님을 우연히 지나치게 되었다. 아마 출강을 하시었던것 같다. 지나치고 난 후에 다시 뛰어가 인사드리기에 여의치 못했기에 마음에 계속 걸렸다. 그러던 중 지난달 동문회관에서 열린 西英會전체 모임에 가게 되었는데 그 자리에 교수님이 계셔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표현은 맘껏 못했지만 충분히 감정은 교환되었으리라 믿는다. 이제는 정년퇴임 하셔서 캠퍼스에 항상 계시진 않지만 우리 졸업생들은 교수님의 가르침과 서강에서의 값진 인생을 항상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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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재(76·영문)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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