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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04-09-21 11:09 조회13,48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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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의균...

밥은 먹고 다니냐? 아니면 술만 먹고 다니냐? 뭘 걱정하냐고? 너 걱정하는 사람, 나말고도 여럿 있어. 누구부터 얘기할까? 

 

그래 며칠 전 만난 사람부터 얘기하자. 제정원 신부- 네가 항상 말하던 “정구형”의 친동생이지. 난 처음 만났는데 네 얘기로 웃음을 주고받을 땐 너를 보는 듯 했고, 또 아깝게 돌아가신 제정구 선생의 일화를 나눌 땐 그 어른의 커다란 족적을 따라 걷는 듯 했었다. 지난 날 청계천 철거민들과의 생활, 상계동에서 쫓겨나는 사람들과의 연대투쟁, 그러고 그 사람들을 이끌어 복음자리에서 맨손으로 브로크를 찍어가며 삶의 터전을 만들던 일 등..... 

 

몇 달 전 제정구 선생의 생전 다큐멘터리를 볼 때에도 만감이 교차하면서 여러 다정한 지인들의 얼굴이 오버랩 됐었지. 작은 거인 제정구, 꼬마 데일리 신부님, 장의균, 그리고 김동원 감독.... 나를 부끄럽게 만든 사람들. 

 

자기 형님을 빼다 박은 듯 소탈하고 솔직하면서도 겸허한 제정원 신부님이 점심값을 치르도록 난 게으름을 피웠다. “제가 내고 싶으니까 내버려두세요” 그래, 내가 더 여유있는 집의 아들이었지만, 학창시절 네가 아주 가끔 “어제 막노동해서 번 돈이야” 하며 40원짜리 자장면 값을 내려고 할 때가 생각났기 때문이야. 신나서 하는 일은 하시도록 냅둬야지. 제 신부님과 다시 만나자며 악수를 하면서 약속했어. “다음엔 의균이와 밥이든 술이든 먹읍시다.” 

 

너 걱정해주는 또 한 사람, 성유보 방송위원. 그 분이 이끄는 ‘제 1회 남북 방송인 교류 모임’이 작년 10월 평양에서 있었다. 성 위원이 남측 대표였는데 나와 네 얘기를 나누면서 “통일꾼 1호는 장의균이 아니던가? 그 녀석이 평양에 와봐야 하는데...” 하고 안타까워했지. 내가 겨우 1990년에 이르러서야 “방송이야말로 민족동질성을 회복하고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매체이다. 이념을 떠난 방송교류가 통일의 첩경이다.” 라고 주장할 수 있었던 것은 (그땐 별 반응도 없었고 의심만 받았지만) 그 이전에 너한테서 받은 감화가 컸기 때문이었다. 너는 이미 1980년대 중반, 통일 실현의 첫 걸음으로 동경의 조선대학 등지에서 몸부림처럼 우리 동족들을 만나기 시작했고 열화같은 민주화 요구에 밀리던 군사정권은 도망치듯 너를 낚아채 국가보안법으로 이른바 「장의균 사건」을 만들어내지 않았니? 

 

지금 다시 꺼내 읽는다. 1988년 네가 감옥에서 변호사가 아닌 네 손으로 직접 쓴 항소이유서의 한 부분이다. “우리 민족은 머지않아 통일을 이룩하게 됩니다. 과거의 8.15 해방이 필지의 사실이었듯이, 이제 우리 민족은 민족 스스로의 노력과 객관적 여건의 성숙에 따라 평화적으로 통일을 이룩할 때가 된 것입니다. 물론 과거의 8.15 해방을 의외로 맞이했던 사람들처럼 앞으로의 민족 통일을 의외로 맞이하게 될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스스로의 노력에 의한 당연한 결과로써 맞이하게 될 사람도 있을 것이며 우리들 각자는 바로 그러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의균아, 네가 쓴 글, 기억나니? 새삼스럽지? 

 

그때 너와 그러한 얘기를 격정적으로 주고받고 나면 나는 프로그램 기획안 “통일연습 하십시다.”를 쓰곤 했었는데 당시엔 당연히 통과되지 않더구나. 오히려 한 두 번 누군가 내게 와서 “조심하세요. 누구와 친하다는 거 아는데, 당신도 해직 언론인 아니요?” 하곤 했었는데 그 사람들 다 어디 갔는지 모르겠다. 죽은 도시 평양, 허망한 구호 플래카드들, 무표정한 얼굴 우리 동족들을 보면서 평양에서 닷새 간 또 한번 만감이 교차하면서 왠지 부끄러움이 엄습하였다. 아, 장의균은 밥먹고 지내는지, 아니면 술만 먹고 지내는지? 

 

장의균, 너 걱정해주는 마지막 일단의 부류가 있다. 고구려사를 비롯한 우리 민족의 뿌리를 빼앗기기 직전에 당황해하는 이 나라의 지도자급 인사들이지. 더 거슬러 올라가 1970년대 우리가 서강 캠퍼스에서 가방은 도서관에 놔두고 잔디밭에서 노닥거리며 말싸움을 즐길 때, 너는 이미 한국 고대사의 뿌리와 설화의 실증적 연구, 백제 문화의 일본 전래들을 침을 튀며 논하곤 했었지(한참 후 돌아보면 주위에 아무도 없었지만). 지체 없이 넌 개마서원을 차렸고 뗏목을 띄워 일본 해안에 보내는 실험을 했을 뿐 아니라, 네가 직접 일본으로 건너갔던 게지. 돌아보면, 한참 뒤늦게 깨달은 최인호는 「잃어버린 왕국」을 써서 돈을 벌었는데......... 

 

네 말이 생생하다. “선진국들 신화나 설화가 원래 별거 있는 줄 아냐? 막 우기는 거야. 그러다 보면 자기네 것이 소중해 보여지는 거야. 우리 꺼? 엄청나지-” 의균아. 네 마누라 윤혜경 잘 있냐? 여림이, 주호, 주석이도? 우선 너는 밥은 먹고 다니냐? 아니면 술만 먹고 다니냐? 

 

2004년 9월 정 훈 

 

정 훈(70.신방) 동문은 다큐멘터리 PD로 시작해서 80년 광주민주화운동 때 해직됐다. 한국 최초로 장애인을 위한 본격 다큐멘터리를 제작하여 베를린 푸트라상을 받아 그 상금으로 장애인 전용지도를 만들어 무료로 배포하였다. 현재 경인방송 전무이사로 재직중이고 부인(김해옥, 70·영문)과아들(정범진, 경제학과 4년)도 동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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