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홍(79.정외) 기자의 수려한 문장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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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03-03-20 16:03 조회22,847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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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홍 기자의 수려한 문장쓰기
2003/03/20(오마이뉴스)
“어, 내가 어제는 회사를 안 갔어요. 아파서.”
“감긴가 봐요?”
“아니, 술병이 났거든.”
그와 전화통화를 할 때마다 왠지 주눅이 든다. 그는 열이 나는 사람이다. 욕도 잘한다. 말끝마다 ‘썅’, ‘씨발’, ‘새끼’다. 이메일은 마침표도, 줄 바꾸기도 없이 빽빽하게 쓴다. 코와 입이 발달한, 골격이 큰 얼굴이다. 이래도 자기는 수줍음이 많단다.
이연홍 기자를 처음 본 곳은 작년 11월 13일 이화여대 언론정보 전공생들을 위한 기사작성 워크샵(writing workshop) 자리였다. 주제는 ‘정치보도의 모든 것.’
이연홍 기자는 <중앙일보>의 유일한 정치전문기자다. 서강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83년 <중앙일보>에 입사했다. 누군가는 “재주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 재주는 글재주다.
그는 지독한 단문을 쓴다. 21세기형 기사문장으로 인정을 받는다. 상황을 파악하고 있으면 취재가 확실히 된다. 사실(fact)을 알고 있으면 간결한 글이 나온다. 자신감이 자기 글을 만든다. ‘~라고 예상된다’를 ‘~이다’라고 쓰는 식이다.
2월 16일 기사 ‘노무현을 이놈이라 칭하는 사람’은 총 1145자, 32문장이다. 한 문장 당 35.8자다. 살을 다 발라내고 뼈만 쓴다.
‘얼마전이다’
‘송신부가 물었다’
‘틀리든 맞든 그랬다.’
의식적으로 단문을 쓰고 있다. 이미 습관이다.
“난 단문이 좋다고 생각 안 해. 그냥 내가 단문을 쓰는 거지. 단문만 쓰면 너무 딱딱해져. 나 따라한다고 기자들 사이에서 단문이 유행한 적이 있었는데, 다들 그러니까 보기 안좋더라구.”
그를 명기자로 만든 건 단문이 다가 아니다. 자신이 생각하는 ‘명문장 비법’이 있다.
비법 하나, ‘사람을 써라’
그의 글은 ‘사람’이 주제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 이후, 칼럼을 다섯 개 썼다. 차례로 노무현, 이호철, 문재인, 문희상, 송기인에 대한 글이었다. 행사에 대한 글이라도 시작은 반드시 사람으로 한다는 게 원칙이다.
“보통 기자들은 ‘김종필 자민련 총재가 중부권 신당 창당을 계획하고 있다’라고 쓰겠지. 나는 ‘김종필 총재는 얼굴 경련을 심하게 일으켰다. 중부권 신당을 강조하는 자리에서였다’라고 써.”
결국 주인공은 사람이다. 그 사람을 떠올리며 기사를 쓴다. 그림을 만든다.
“이러려면 작은 것도 놓치면 안 돼지. 날 보고 3無기자래. 명함, 메모지, 볼펜이 없다고. 난 거의 외우는 편이야.”
비결은 사람에 대한 관심이었다.
비법 둘, ‘집요함을 가져라’
청와대의 운동실(fitness room)이었다. 역기 8개를 한꺼번에 드는 바람에 근육이 뜯어져 버렸다. 그는 글도 깡으로 단련했다. “난 책을 안 읽어. 요약한 거만 읽지.” 명문의 조건은 다독이 아니었던가? “살아 남으려면 글을 잘 쓰는 거 밖에 없었지.”
남의 글을 열심히 읽었다. 같은 상황을 다른 기자는 어떻게 썼는지 비교했다. 새로 기사 쓰기를 반복. 다른 기사와 다시 비교해봤다. 자신의 글을 시간을 두고 읽으며 수정하기도 했다. “글을 너무 잘 쓰려고 하지 마. 어깨에 힘 빼. 대신 집요해야지.” 생각보단 행동이다.
비법 셋, “사실만 써라”
그는 철저한 fact(사실) 신봉자다. 그는 이 주일에 1400자 ‘이연홍의 정치보기’ 칼럼 하나를 쓴다. 지면의 경제학, 1400자 가운데 의견은 한 자도 없다.
그는 저녁 약속 장소에 1시간 전에 나온다. 식탁에 엎드려 잠을 잔다. 혼자서 누룽지를 먹고 있기도 한다. 왜 이리 일찍 왔느냐고 물으면 대답은 한결같다. 가있을 데가 없기 때문이란다. 얼마 전 그는 보좌관한테 이렇게 푸념했다.
"이번 추석만큼 썰렁한 적은 없었어. 격세지감을 느껴."
(02-11-11 ‘김홍일의 격세지감’)
사실을 그대로 옮길 뿐이다. 독자들의 반응은 분명하다.
“미사여구, 작은 따옴표 많이 쓰면 안 돼지. 미사여구부터 배우면 좋은 글이 안 나와.”
독자가 왕
그는 ‘신문은 독자를 위해’라는 관념이 뚜렷하다 “정치인이 부담스럽지 않냐고? 기자는 취재원에게 두려운 존재가 되어야 해.”, “시민이 읽는다. 이게 두려워서 정치인이 스스로 변화하도록 하는 게 내 목적이야.”, “<오마이뉴스>에 나와 관련한 기사가 났는데, 조회수가 600만이 넘었다나?”
6만 명을 잘못 말한 거겠지만 그의 인기는 사실이다
“항상 재미있는 글이 신문 읽기의 즐거움을 더합니다. 짧고 간결한 글이지만 취재의 깊이를 느낄 수 있어 좋습니다. 이면의 Fact 발굴은 물론이고 Fact의 취사선택을 통해 정치의 맥을 읽어낼 수 있는 글이라 더욱 좋습니다.”(아이디 maxmarx)
<중앙일보> 웹사이트에는, 그의 칼럼 한 개당 많게는 70명의 독자가 의견을 남긴다.
그는 자신이 독자라고 생각하고 기사를 쓴다. “이맘 때쯤 지루해 하겠다는 걸 알아야지. 재미있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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