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지적인 나를 숙련하고 굳건히 하는 책의 힘, 서해문집 대표 김흥식(77 경영) 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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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4-09-11 15:41 조회2,36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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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인 나를 숙련하고 굳건히 하는 책의 힘
서해문집 대표 김흥식(77 경영) 동문
여기, 고전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동문이 있다. 그는 모두가 어려운 고전을 쉽게 접했으면 좋겠다는 꿈을 갖고 고전의 현대적인 재구성을 실현해 냈다.
책을 몹시 사랑하고, 모교 로욜라도서관을 보고 처음으로 출판의 꿈을 가졌으며,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 꿈을 안고 살아왔다. 그리고 마침내 서해문집에서 그는 그 꿈을 이루었다.
서강대학교 77학번 김흥식 동문은 책에 대한 각별한 애정으로, 책은 더 나은 삶을 위한 필수 조건이라 당부한다. 책에 대한 남다른 신념과 대한민국 책의 현실을 담은 그와의 인터뷰를 읽고 점차 다가오는 가을, 여유롭게 책 한 권을 사서 읽고 싶은 강렬한 충동을 느껴보자.
▲ 서해문집 대표 김흥식 동문
Q1. 안녕하세요? 독서의 계절, 가을을 맞아 ‘서강인들의 좋은 책에 대한 철학’을 주제로 발행될 서강옛집 9월호에 실릴 인터뷰에 서해문집의 대표이신 김흥식 선배님을 모시게 되었습니다. 먼저 선배님의 인터뷰를 볼 서강 가족 분들에게 자기소개와 서해문집에 관한 간단한 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서강대 77학번 경영학과를 졸업한 김흥식입니다. 현재 ‘서해문집’의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저는 사실 출판사를 처음부터 하고자 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서강대학교에 재학 당시 경영학과는 취업이 정말 잘 되던 과였기 때문입니다. 재학 중이던 학생들 중 본인이 가고 싶은 회사를 가지 못한 친구들이 거의 없을 정도였고, 외국계 금융기관까지도 취업이 턱턱 잘되던 학과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출판을 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에는 서강대학교의 로욜라 도서관이 있었습니다. 고등학생까지 다니던 도서관은 전부 폐가식이어서, 책을 서고에 있고 읽고 싶은 책을 따로 써서 내면 그 책을 대출할 수 있는 시스템이었습니다. 그런데, 서강대학교 도서관에 가니 제 눈 앞에 책 50만 권이 펼쳐져 있던 것입니다. 그 순간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때부터 온갖 책을 구경하고 수많은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대학교 3학년 때 출판을 결심했습니다.
그러나 저희 집이 당시 어려웠기 때문에, 당장 출판사를 차릴 수는 없었기에 돈을 모으기 위해 졸업 후 은행에 취업했습니다. 10년 동안 직장 생활하면서 돈을 모았고, 90년에 첫 책을 냈습니다. 그런데 제가 출판사 재직 경험도 없다 보니 가진 건 의지뿐이라 당시 동창들은 다 잘나갈 때 저는 밥을 굶으며 고생을 크게 했습니다. 그래서 2000년에 마지막으로 내가 내고 싶은 책을 내고, 망하면 미련 없이 음식점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오래된 책방’ 시리즈를 출판했습니다. 그런데 세상이 도왔는지 그 책이 인기를 얻게 되며 출판업을 전문으로 삼게 되었습니다.
Q2. 대학교 3학년 출판업을 하기로 다짐한 시기로부터 꿈을 이루기까지 약 10년의 시간이 있었던 것으로 아는데, 금융권 직장을 다니시다가 본격적으로 출판업, 서해문집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또 시작하는 과정에서 어떤 위기가 있었고 기억나는 일들이 있었을지, 그 일화가 궁금합니다.
기억나는 일화가 너무 많은데요. 전에 상황이 너무 어려워서 진담 반, 농담 반으로 인생을 정리해야겠다 생각하고, 겨울에 친구들에게 그만 살고 싶다고 얘기한 적이 있습니다. 지리산 천왕봉에서 뛰어내리겠다 하니, 친구들이 저를 말리려고 쫓아온 거에요. 그래서 셋이서 차를 타고 지리산을 갔는데, 겨울이어서 산꼭대기까지 올라가는데 눈이 너무 쌓여서 중간에 멈출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안 되겠다 싶어서 내려오려고 하니 차가 눈 때문에 미끄러져서 낭떠러지로 떨어지게 생긴 겁니다. 사실 삶을 정리하려고 지리산을 갔던 것이니, 오히려 잘됐다고 생각해야 마땅할 텐데, 그 순간에 너무 무섭더라고요.(웃음) 다행히도 어떻게 잘 내려왔답니다. 그 친구들도 지금까지 계속 만나고 있는데, 그때를 회상하면 정말 별일 다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Q3. 서해문집은 지금은 초기보다 더욱 다양한 분야의 서적을 출판하고 있지만, 설립 초기에는 지금보다 더 인문, 역사와 고전과 같은 서적 위주로 출판하실 정도로 고전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책을 출판하는 데 있어 선배님만의 철학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요?
사실 제가 출판을 처음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고전을 대중화한 책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고전’은 한자로 적힌 원문을 번역과 함께 싣고, 해제를 밑에 다는 방식으로 출판되었기 때문에 일반인이 읽기에는 너무 어려워서 고전을 읽는 사람이 흔치 않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고전을 너무 좋아했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보다 더 많은 사람이 고전을 읽게 할까를 고민했고, 그래서 만든 출판사가 ‘서해문집’이었어요. 저의 철학을 담은 출판사가 곧 ‘서해문집’이었던 것이죠.
▲ 경기 파주시에 위치한 도서출판 서해문집
‘서해’는 책(書)의 바다이기도 하지만, 우리 고향 앞바다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문집’은 글 모음이라는 뜻인데요. 옛 조선 선비들이 자기 글을 다 모아서 낼 때 꼭 ‘문집’이라는 이름 앞에 본인의 호를 붙인 것에서 유래하였습니다. 이렇게 이름부터 고전의 향기가 나니, 사람들은 당연히 서해문집의 사장이 늙은 사람일 것이라 생각해서 생긴 에피소드가 많습니다. 회사를 찾아왔는데 30대의 저를 보고 깜짝 놀라신 경우도 많았어요.
저는 이렇게 고전은 나이 있는 사람들만 읽는다는 사회적 경향과 통념이 싫어서, 10년의 고민 끝에 ‘오래된 책방’ 시리즈를 내게 되었습니다. 2000년에 시리즈가 출판된 이후, 점차 사람들이 읽기 시작했고 우리나라의 모든 대중용 교양서는 저희 출판사의 고전 집필 방식을 따르기 시작하게 되었어요. 사진과 그림도 넣고, 원문을 빼는 과감한 도전도 하면서 처음에는 책의 신뢰도에 대한 걱정도 많았지만, 지금은 저에게 가장 자부심 있는 부분이 되었습니다.
▲ 고전의 현대적 재해석, 서해문집 오래된 책방 시리즈
Q4. 출판업에 종사하시며 ‘팔릴 책’보다는 ‘내고 싶은 책’을 중시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세상에 출판될 좋은 책을 선정하는 입장인 동시에 누구보다 책을 사랑하시는 애독자의 관점에서 보셨을 때 새로운 책을 읽고자 하는 독자들은 어떻게 책을 고르고 읽어야 할까요? ‘좋은 책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선배님만의 사유가 궁금합니다. 또 선배님만의 책을 고르고 읽는 기준이 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주로 한 번에 책을 많이 사는 편입니다. 오늘도 알라딘 인터넷 서점에서 약 25만원어치 책을 구매했어요. 저는 신문이나 서평 같은 곳에서 우연히 책을 접하게 되면, 그 책을 조금 검토한 뒤에 장바구니에 넣어두고 그 책과 관련된 책을 찾아내면서 계속해서 쌓아둡니다. 이런 책이 약 20~30권이 쌓이면 결제를 해요.
이처럼 과거 오프라인 서점에서 다 읽어본 후 책을 샀던 것과 다르게, 인터넷 서점에서 읽지도 않고 책을 사게 되니 사람들의 어떻게 좋은 책을 골라야 할지에 대한 궁금증이 더욱 두드러지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책을 구매할 때만 너무 크고 깊게 고민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리가 자주 가는 카페나 식당만 하더라도 책의 가격과 비슷하게 지출하게 됩니다. 이런 사소한 소비에서는 크게 고민하지 않고 메뉴를 선택하면서 1만 5천원 짜리 책을 살 때는 인생을 걸 만큼 고민하지 않습니까. 이처럼 오늘날 책의 값은 우리가 일상에서 너무 쉽게 쓰는 가격이나, 그만큼의 값으로 인생을 바꿀 책을 고르려고 하니 책을 사는 것을 자꾸 망설이게 되고, 인생 책 하나를 골라야 한다는 강박이 생기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는 책의 가치는 가격과는 별개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제가 추천하는 것은, 책을 일단 구매하고 1시간 읽다가 아니다 싶으면 버리거나 당근마켓에 파는 것입니다. 일단 책을 구매해보라는 것이죠. 저는 지성인이라면 적어도 1년에 50만원은 써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 정도 책을 사도 1년 동안 다 읽기도 힘들지 않습니까. 이렇게 생각하면 책 한 권이 굉장히 싸게 느껴지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책 구입에 대한 부담을 조금 덜으셨으면 좋겠습니다.
Q5. 최근 대규모로 개최된 2024 서울국제도서전에서 강연을 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평소 출판과 독서에 관한 강연을 자주 하시는 만큼 출판업 쪽에서 상당한 열정과 영향력을 지니신 분으로 생각되는데요. 선배님께서 보는 출판업계의 현실과 추후 전망은 어떨 것으로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출판의 현실은 냉정하게 말하자면 어려운 것은 맞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독립서점, 독립출판 형태로 1인 출판을 하고자 하는 사람은 정말 많습니다. 책은 점점 읽지 않지만 출판사는 늘어나는 것입니다. 물론 시간이 지날수록 출판의 미래는 안 좋아질 가능성이 크지만, 그래도 저는 출판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아무리 누가 뭐라고 해도 책 읽는 사람이 세상을 지배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은 만고불변의 진리라고 생각해요.
어제 94세의 워렌 버핏이라는 세계 부자에 대한 재밌는 기사가 이 생각의 뒷받침을 해주고 있어서, 소개해드리고 싶어요. 그는 아침에 일어나면 맥도날드에서 가서 햄버거를 먹고 콜라를 5병을 먹는데, 건강을 위해서 콜라를 줄이라고 한 의사들이 모두 죽었다는 겁니다.(웃음) 아무튼 이렇게 살면서도 하루에 책을 꼭 5시간을 읽는다고 합니다. 또, 초등학교 때부터 백과사전을 끼고 살았던 빌 게이츠의 일화도 말씀드리고 싶어요. 그가 한 말 중에 ‘나를 만든 건 하버드 대학이 아니고 동네 도서관이었다’라는 말을 저는 정말 좋아합니다. 또, 산신령이 나타나서 한 가지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한다면 ‘책을 빨리 읽는 능력을 주십시오’라고 말할 것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이런 일화만 보더라도 정치적 지도자를 넘어 세상의 이치를 끌고 가는 사람은 책을 읽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요. 책을 읽는 사람은 100권의 책에서 나만의 것을 뽑아내, 응축해서 얻은 지혜를 거미줄처럼 엮어 나가며 나만의 세계관을 만들 수 있습니다.
이런 사실을 다 알면서도 다들 책 읽기를 힘겨워 하는 이유는, 책을 읽는 것이 우리의 뇌가 하는 지적 노동이기 때문에 에너지 소모도 큰 활동이기 때문입니다. 저도 10년 전만 해도 하루에 500쪽짜리 소설을 다 읽을 정도로 10시간을 책에 투자했는데 요새는 나이가 들어서 한 5시간만 읽어도 힘들더라고요. 이런 지적 노동은 거친 사람은 성공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저는 책을 읽고자 하는 사람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기에 출판도 운명을 같이 하리라 생각합니다.
Q6. 앞으로 서해문집이 당면한 과제는 무엇일까요? 서해문집에는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브랜드 파란자전거가 있고, 2016년 만들어진 브랜드 ‘그림씨’는 상당한 분량의 그림 자료가 제공되어 읽기 쉬운 책을 펼치고 있지요. 홈페이지에는 카드뉴스형 콘텐츠로 책을 접할 수 있도록 ‘독자의 방’의 도서목록 및 자료 부분에는 도서의 장르와 독자 타겟에 맞게 독후활동지를 제공하거나 음원, 교육자료 등을 제공하고 있더군요. “독자들이 읽기 쉬우면서 제대로 이해하는”, 서해문집에서는 이를 표상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해 오셨고 성공적으로 자리잡은 것 같았습니다. 앞으로 서해문집만의 이러한 방향성을 유지하면서도 어떤 시도를 해 보실 예정일지 궁금합니다.
사실 제가 출판사 업무에서 손을 뗀지 약 7-8년 정도 되었습니다. 그래서 회사 운영에 잘 개입은 하지 않지만, 적어도 항상 직원들에게 당부한 것은 ‘부끄럽지 않은 책만 내라’는 신념입니다. 저는 나이가 있어 시대의 흐름을 젊은 사람들보다는 잘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에 출판 업무에서는 손을 떼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따로 ‘그림씨’라는 출판사를 만들어서 경제적 수익을 생각하지 않고 내고 싶은 책을 자유롭게 출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림씨의 출판 책들을 보면 서양 고전에 예쁜 그림을 넣은 클래식 그림 시리즈와 같이, 제본비는 비쌀지라도 예쁘고 독특한 책들이 많이 출판됩니다.
저는 책이 옛날 방식으로 출판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직원들에게 ‘책도 시대를 따라가야 한다’고 항상 말하는데요. 요즘 젊은 사람들의 감각이 뛰어난 만큼 제본도 달리하고, 디자인과 내용도 신선하게 하자는 이야기를 끊임없이 직원들에게 합니다. 다만 오해해서는 안되는 것이, 책이 사람들에게 아부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책은 독자들에게 새로운 세계를 이끌어주는, 한 발 앞장서서 견인하는 역할이지, 요즘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내용을 실어서 수익을 위한 출판을 하는 것은 적어도 저의 출판사에서는 지양하고 싶습니다. 인생을 건 출판사에서 ‘부동산으로 떼돈 버는 법’, ‘돈 잘 버는 방법’ 같은 책으로 사람들을 유혹하고 싶지는 않아요. 내용을 전달하는 수단은 시대를 따라가되, 담긴 내용은 줏대 있게 담고 싶은 마음입니다.
서해문집, 즉 제가 생각하는 그림씨의 방향성은 중국의 서적으로부터도 많이 영향을 받았습니다. 저는 대중들에게 소비되는 모습의 우스운 모습의 중국과 정반대로 중국을 바라봅니다. 중국은 새로운 세계를 향해서 나아가는데 겁을 내지 않아요. 중국의 책만 보더라도, 도서전을 가면 책의 내용을 몰라도 디자인이 너무 예뻐서 소장 욕구가 생깁니다. 그래서 그림씨의 책에도 예쁜 그림을 많이 실어서 갖고 싶게 만들고 싶었습니다.
Q7. 모교 재학 시절, 종일 도서관에서 지내실 만큼 독서를 매우 사랑하신다고 들었습니다. 비록 현재 ‘경영’이라는 본 전공을 살린 일을 하고 계시지는 않지만, 지금의 서해문집을 이끌게 되기까지 서강의 영향이 있었다면 어떤 것인가요? 모교 서강은 선배님께 어떤 존재인지 궁금합니다.
서강대학교는 앞에서도 말했지만, 서강대학교의 로욜라도서관이 없었다면 지금의 저를 상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출판의 꿈을 심어준 곳이기 때문에 서강대학교에 매우 감사합니다. 웬만한 대학 도서관에 가봐도, 학교의 중심에 있는 도서관은 서강대밖에 없을 만큼 로욜라 도서관은 서강대학교의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로욜라 도서관을 지금도 애용하고 있는데, 그래서 저의 꿈이 로욜라 도서관에 대한 책을 한 권 쓰는 것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일이자 사회에도 도움이 되는 출판업에 대한 꿈을 심어준 것에 대한 감사함을 담고 싶습니다.
Q7-1. 파란자전거의 청소년 도서를 위주로 ‘독후활동지’ 자료가 있더군요. 이걸 보니 서강만의 아이템인 ‘독후감’ 제도가 떠올랐습니다. 선배님께서 서강에 계실 적 독후감을 쓰셨을지요? 독후감과 관련해서 떠오르는 일화가 있다면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사실 서강대학교에서의 저의 독후감 경험은 크게 특별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이제껏 동문 분들이 말씀하신 것이랑 비슷하겠지만, 저만의 특이한 부분이 있다면 올해 독후감 책을 한 권 집필할 예정이라는 것입니다. 10월이나 11월에 나올 예정인데, 기회가 된다면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저는 독후감을 너무 진지하게 배웠다고 생각해왔습니다. 재미있고 정해진 형식 없이 자유롭게 독후감을 써도 되지만, 지금껏 그럴 만한 심리적 자유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책을 읽고 자유롭게 생각을 마음껏 펼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독후감 24편을 써서 엮게 된 것이 이 책입니다. ‘이것도 독후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세상에 알리고 싶어서 내게 되었습니다.
Q8. 인생에서 꼭 써보고 싶은 책으로 ‘백과사전’을 꼽으신 것을 다른 기관 인터뷰 기사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백과사전은 존재하는 지도 몰랐던 수많은 정보를 책을 통해 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소비자가 관심과 흥미를 가지고 있는 분야를 위주로 볼 수 있도록 유도하는 알고리즘이 만연한 오늘날의 인터넷 동향과는 반대된다고 생각되는데요. 흔하지 않은 도전인 백과사전 집필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 혹은 실현 중인 바가 있으시다면 설명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과거에 동아일보에 ‘헌책 사느라 1억을 쓴, 백과사전에 빠진 남자’로 기사가 나간 적이 있습니다. 세계의 백과사전을 모을 정도로 백과사전을 사랑하기 때문에 결심했던 것이 나의 백과사전을 집필하자는 다짐이었거든요. 혼자 백과사전을 쓰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워서 네이버 지식백과 사전을 빌려, ‘세상의 모든 지식’이라는 이름으로 약 150개 종류에 관해 백과사전을 썼습니다. 제가 쓴 책을 네이버에서 서비스를 하고 있는 것인데, 뿌듯하게도 지식백과 부문에서 1위를 할 만큼 많은 분들이 읽어주셨습니다. 지금까지 책을 읽고 쓰는 방식으로 한두 페이지씩 실험적으로 써왔습니다. 이를 만 개 쓰는 저의 꿈을 이루고자 지금도 계속해서 써나가고 있습니다.
▲ 체코, 영국 등지를 돌며 구입한 1700년대 백과사전들을 소개하는 김흥식 동문. 그는 소위 '백과사전 덕후'이다.
동아일보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백과사전을 읽으면서 깨달은 것은, 책을 읽은 사람보다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이 훨씬 많이 알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은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거든요. 그러나, 책을 읽는 사람은 본인이 책을 읽으며 내가 이렇게 모르는 게 많구나, 밝혀지지 않은 사실이 많구나, 나는 하나도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돼서 책을 읽을수록 모르는 사람이 됩니다. 요즘 대부분은 검색을 통해서 아는 것을 더 많이 알게 되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관련되어서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이 더 아는 게 많아지는 사회이지만, 백과사전은 모르는 것을 접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정말 매력적인 책인 것 같습니다.
백과사전 집필을 결심하게 된 이유를 조금 덧붙이자면, 먼저 백과사전의 특성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민족, 나라마다 자기 것을 가장 중시하는 경향이 백과사전에 그대로 드러난다는 점이 흥미롭지 않습니까. 우리나라에서 굉장히 유명한 소설가 ‘허균’이 영국의 백과사전에는 실려있지 않은 것처럼요. 제가 소유하고 있는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는 영국의 크리켓 선수에 대한 내용까지 실려있습니다. 그래서 문득 ‘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은 우리나라의 백과사전에 대한 강한 갈망을 느꼈습니다. 일본만 해도 2009년까지 34권짜리의 백과사전을 내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1990년대에 종이 백과사전의 출판이 끝났거든요. 백과사전을 읽으면 수박 겉핥기 정도로밖에 정보를 접할 수밖에 없지만, 관심 있으면 더 찾아보면서 배우게 되면서 우리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더 접할 수 있는데, 아쉬운 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백과사전 박물관을 만들고 싶은데, 금전적 문제가 있어서 당장 실현하기는 힘들지만 언젠가 꼭 이루고 싶은 꿈입니다.
Q9. 최근 숏폼이 유행하며 많은 이들이 긴 글보다는 짧은 글, 그리고 영상조차도 짧은 것을 선호하고 또 그에 익숙해져 가는 시대입니다. 도서 부문에서도 전자책이 성행하며 종이책 출판 시장에 대한 위기가 언급되는 것으로 아는데요. 게다가 실제로 지난 해 대한민국 성인 연간 종합독서량은 1년에 3.9권으로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추세까지 보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지금 당장 책을 펼치고 글을 읽어야 이유를, 서강 가족에게 전하는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먼저,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지적 노동을 통해 뇌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책을 읽어야 합니다.(웃음) 그리고 사실 이미 제가 이론적으로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따로 책으로 써뒀어요. 간단하게 제가 항상 강연에 가서 사람들에게 하는 이야기를 소개해드리고 싶습니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내가 세상을 떠난 후 손자손녀가 내가 살던 집에 오게 되었다고 생각해봅시다. 와보니 책이 1천 권 꽂혀 있는 것과, 가방이나 골프채가 걸려 있는 것 중 어떤 방식으로 그들에게 기억되고 싶은가요? 그리고 그런 유품 중 내가 써둔 메모와 줄, 요약이 적힌 책을 그들이 더 소중히 간직할까요, 아니면 내가 사용한 가방이나 골프채를 소중히 간직할까요? 그리고 둘 중 어떤 손주손녀가 더 잘 될지 간단하게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내가 책을 싫어하더라도 나의 손주손녀는 책을 많이 읽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든다면, 그리고 책을 읽는 후손을 얻고 싶다면 책을 읽는 선택을 하셔야 할 것입니다. 저는 자식의 배우자에게도 같은 마음이 들어서, 딸의 사위를 생각할 때도 직장보다는 무조건 책을 많은 지를 보았습니다. 이처럼 내 뒤를 잇는 이들을 생각하면 답이 빨리 나올 것입니다.
그리고, 책을 읽으면 지적으로 강해질 수 있습니다. 제일기획의 면접을 보았던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하고 싶은데요. 제일기획이란 삼성 계열 광고 대행사로, 300대 1의 경쟁률일 정도로 대학생 선호 기업 1위이기도 하고 스포츠 기획, 공연 기획 등 거의 모든 기획을 맡고 있는 이름 바 최고의 기업입니다. 제가 영광스럽게도 이 기업 면접에서 합격한 적이 있는데, 당시 출판의 꿈을 위해 입사하지 못했으나 그 면접 과정을 소개해드리고 싶네요. 총 다섯 단계의 면접을 통해서 보는데, 한 번은 전두환 시절 집단 인터뷰를 하면서 ‘대학생들의 과격 시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것이 질문이었습니다. 대부분은 대학생들이 사회 정의를 위해서 싸우는 것은 좋으나 너무 과격한 시위는 안 좋다는 것처럼 누구나 말할 수 있는 답변을 내놓았습니다. 저는 그때 ‘저는 생각이 다릅니다. 학생들이 옳은 이야기를 하는지부터 따져야 합니다. 수단을 중시할 것이 아니라, 저 사람이 무엇을 위해서 싸우는지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옳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면 화염병을 들어서라도 고쳐지지 않으면 무기고를 탈취해야 합니다. 그러나 학생들이 설익고 잘못된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면 화염병을 던지는 것은 고사하고 길에 나가서 행진하는 것만으로도 과격한 행동이고 불법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답변은 면접 준비반을 준비하는 것처럼 단시간에 연습한다고 생각나는 답변이 아니라, 수많은 책을 읽고 다져진 저의 신념을 바탕으로 당당하게 내 논리를 펼친 결과물이었기에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사실 누구나 면접에 가면 조금만 이야기해도 논리적 체계가 다 드러나게 되기 때문에, 면접 태도보다는 내가 말하는 근본적 내용이 더 중요한데 요즘은 이를 많이 놓치고 있는 것 같습니다.
▲ 독서를 통해 길러지는 지적 역량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김흥식 동문
그래서 저는 자기 내면의 지적 힘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힘은 단순히 면접에서만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한 번 사는 내 인생을 줏대 있게 살아가는 힘이 됩니다. 언제까지나 남이 좋아하고 우러러보는 일을 할 수는 없잖아요. 나에게도, 사회에도 도움이 되는 가치 있는 일을 찾아서 하고 살아야 한다 생각합니다. 물론, 요즘은 젊은 사람들에게 빨리 꿈을 정해야 한다는 강박을 심어준 어른들로 인해 이런 도전을 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적어도 여러분들이 죽을 때 나는 할 거 다했다, 라고 생각할 수 있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는 바램입니다.
Q10. ‘책의 바다’라는 뜻을 지닌 ‘서해’라는 이름이 ‘서강’과 비슷해서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독서의 계절에 맞춰 서강 가족들에게 서해문집의 책을 추천해 주신다면?
지금까지 책을 여러 권 써왔지만, 20년 만에 처음으로 정말 좋은 책을 기획했습니다. 지난주에 그림씨에서 출판된 ‘지구본 수업’이라는 제목의 책인데요. 박종주라는 서강대 출신의 사업가 출신 친구와 3명이 쓴 책입니다. 책에는 지구를 지도로 보지 않고, 지구본으로 보겠다는 관점을 표상했습니다. 우리나라 지도에는 태평양이 중심에 있고, 즉 우리가 속한 동아시아가 중점인 ‘우리의 시각’으로 그려져 있지 않습니까. 반면 유럽의 지도는 유럽이 중심이고 동아시아가 변방으로 그려져 있어서, 지도로 지구를 보면 왜곡된, 편파적 관점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지구본을 통해 똑같은 관점으로 세계를 이해하자는 기획을 해서 나온 책이 ‘지구본 수업’이었습니다. 세상의 흐름을 지정학적, 그리고 지리학적으로 분석하는 책이어서 굉장히 재밌으실 겁니다.
▲ 지구본 수업1, 지구본 수업2 (그림씨 출판, 박정주, 황동하, 김재인 지음)
그는 스스로에게도 반문한다. '좋은 책이란 무엇인가?' 이 질문에 김 동문은 좋은 책을 찾는데 너무 매달리지 말고 일단 읽어 볼 것을 권한다. 마치 점심 메뉴를 고르듯 가볍게 책을 고르고 우선 읽어볼 것을 권한다. 어쩌면 책을 통해서 큰 지식을 얻어야만 좋은 책이라는 강박 때문에 오히려 좋은 책은커녕, 책과 더 멀어지는 것이 아닌지, 스스로에게 물어 보자. 그리고, 책을 일단 읽음으로써 우리는 사고 회로를 돌리고 심오한 사유를 할 기회를 얻으며 내 안의 지적인 심지를 더욱 굳건히 할 수 있게 된다. 이번 가을, 주변의 전자기기를 끄고 도서관으로, 또 서점으로 가 마음에 드는 책을 아무거나 골라 가벼운 스탠스로 펼쳐 보는 시간을 가져 보자. 책 속에 몰입하는 동안, 김흥식 동문의 말대로 우리의 지성은 더욱 건강해져 있을 것이다.
한서정(23 경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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