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째 스테파노 장학금 기부, 김재혁(82불문)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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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0-09-13 10:31 조회10,07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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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학년도 1학기 장학증서수여식에서 훈훈한 풍경이 펼쳐진 때가 있었습니다. 다소 딱딱한 분위기로 진행되던 행사장에서 동문 선배와 장학생 후배가 마치 친구처럼 어울리게 됐기 때문입니다. 스스럼없이 대화하고 술잔을 주고 받으며 묵찌빠 게임까지 즐겼던 진풍경의 중심에 스테파노 장학금을 운영하는 김재혁(82불문) 동문이 있었습니다.
“후배들과 즐겁게 만나고 싶었습니다. 후배들이 제 눈높이에 맞춰 주기를 바라기보다, 제가 장학생 눈높이에 맞춰야 어울릴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였죠.”
김 동문의 배려하는 마음은 그동안의 스테파노 장학금 운영에서도 드러납니다. 2006년부터 지금까지 동문장학회에 1400만원이나 장학금으로 기탁했고, 배출한 장학생 수도 7명에 달하지만 개인적인 연락이나 만남은 최대한 자제해 왔습니다. 장학금을 받는 후배 입장에서 이를 또 다른 부담으로 여길지도 모른다는 염려에서입니다.
“공부할 때 학비를 걱정하고, 학비 마련을 위해 아르바이트 할 때 공부 걱정한다는 후배들의 사연을 들으면 참 안타깝습니다. 이럴 때 따뜻하게 한 마디 해줄 수 있는 선배가 되고 싶은데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러한 김 동문의 고민에 그의 시선은 박상환(69 무역) 동문이 운영하는 호상장학금으로 향했습니다. 호상장학금은 장학생들과 정기적으로 교류하며 서로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장학금 혜택을 받고 졸업한 장학생이 다시 장학기금을 출연하고 있는 등 선순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스테파노 장학금도 오래 유지될 수 있도록 조만간 호상장학금을 벤치 마킹할 예정입니다.
“제가 장학 사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어느날 라디오에서 들었던 이야기 때문입니다. 가난과 장애를 가지신 분이셨는데, 어느 외국인의 도움으로 공부를 계속해 해외 대학에서 교수의 자리에까지 오를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은퇴 이후 우리나라로 돌아와 그 때 받은 도움을 갚기 위해 장애인에게 필요한 장비를 기부하는 사업에 나섰다는 사연이었죠. 바람이 있다면 제가 다른 사람을 통해 감명 받았던 것처럼, 다른 동문들이나 장학생 후배들도 저를 통해 선행을 시작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동문장학회에도 따뜻한 조언을 아끼지 않은 김 동문은 “각종 동문회 활동에 참여하는 동문들은 소액이라도 모아서 기탁할 수 있지만, 큰 금액을 기탁하기 힘든 동문 개개인은 마음이 있어도 ‘부끄럽게 이 정도 액수로 되겠어?’라는 생각 때문에 포기하기 쉽다”고 설명했습니다.
“동문장학회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동문들을 찾아 서로 연결시켜주면 장학금이 더욱 늘어날 것입니다. 소수의 동문들이 모여 자신들의 이름을 걸고 장학금을 만들면 그만큼 책임감도 커지리라 생각합니다. 제가 스테파노 장학금에 큰 책임감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말이죠.”
장학금을 두고 책임감을 느낀다고 할 정도로 표현하는 김 동문은 이를 장학 사업을 통해 만난 후배들 덕분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얼핏 보기엔 장학금을 기탁하는 동문이 형편이 어려운 후배에게 일방적으로 도움을 주는 것으로 여길 수 있다”는 김 동문은 “장학증서수여식에서 장학생과 만나 이야기해보면 어려운 환경을 이겨내는 후배들로부터 오히려 제가 더 많이 배우고 반성하게 되는 까닭에 장학 사업을 계속 할 수밖에 없어요”라고 풀이했습니다.
모교 재학시절 가톨릭 신앙, 스킨스쿠버 동아리, 그리고 아내인 서미경(82 불문) 동문 등을 얻었다는 김 동문은 졸업 후 아내의 말없는 지원을 받으며 이어온 장학 사업을 통해 대단한 후배들을 얻었다고 자부했습니다. 김 동문은 “꿈과 목표를 가진 우리 후배들이 그것을 잃지 않고 성장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수 있도록 앞으로도 최선을 다해 도울 생각입니다”라고 다짐했습니다.
“후배들과 즐겁게 만나고 싶었습니다. 후배들이 제 눈높이에 맞춰 주기를 바라기보다, 제가 장학생 눈높이에 맞춰야 어울릴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였죠.”
김 동문의 배려하는 마음은 그동안의 스테파노 장학금 운영에서도 드러납니다. 2006년부터 지금까지 동문장학회에 1400만원이나 장학금으로 기탁했고, 배출한 장학생 수도 7명에 달하지만 개인적인 연락이나 만남은 최대한 자제해 왔습니다. 장학금을 받는 후배 입장에서 이를 또 다른 부담으로 여길지도 모른다는 염려에서입니다.
“공부할 때 학비를 걱정하고, 학비 마련을 위해 아르바이트 할 때 공부 걱정한다는 후배들의 사연을 들으면 참 안타깝습니다. 이럴 때 따뜻하게 한 마디 해줄 수 있는 선배가 되고 싶은데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러한 김 동문의 고민에 그의 시선은 박상환(69 무역) 동문이 운영하는 호상장학금으로 향했습니다. 호상장학금은 장학생들과 정기적으로 교류하며 서로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장학금 혜택을 받고 졸업한 장학생이 다시 장학기금을 출연하고 있는 등 선순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스테파노 장학금도 오래 유지될 수 있도록 조만간 호상장학금을 벤치 마킹할 예정입니다.
“제가 장학 사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어느날 라디오에서 들었던 이야기 때문입니다. 가난과 장애를 가지신 분이셨는데, 어느 외국인의 도움으로 공부를 계속해 해외 대학에서 교수의 자리에까지 오를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은퇴 이후 우리나라로 돌아와 그 때 받은 도움을 갚기 위해 장애인에게 필요한 장비를 기부하는 사업에 나섰다는 사연이었죠. 바람이 있다면 제가 다른 사람을 통해 감명 받았던 것처럼, 다른 동문들이나 장학생 후배들도 저를 통해 선행을 시작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동문장학회에도 따뜻한 조언을 아끼지 않은 김 동문은 “각종 동문회 활동에 참여하는 동문들은 소액이라도 모아서 기탁할 수 있지만, 큰 금액을 기탁하기 힘든 동문 개개인은 마음이 있어도 ‘부끄럽게 이 정도 액수로 되겠어?’라는 생각 때문에 포기하기 쉽다”고 설명했습니다.
“동문장학회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동문들을 찾아 서로 연결시켜주면 장학금이 더욱 늘어날 것입니다. 소수의 동문들이 모여 자신들의 이름을 걸고 장학금을 만들면 그만큼 책임감도 커지리라 생각합니다. 제가 스테파노 장학금에 큰 책임감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말이죠.”
장학금을 두고 책임감을 느낀다고 할 정도로 표현하는 김 동문은 이를 장학 사업을 통해 만난 후배들 덕분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얼핏 보기엔 장학금을 기탁하는 동문이 형편이 어려운 후배에게 일방적으로 도움을 주는 것으로 여길 수 있다”는 김 동문은 “장학증서수여식에서 장학생과 만나 이야기해보면 어려운 환경을 이겨내는 후배들로부터 오히려 제가 더 많이 배우고 반성하게 되는 까닭에 장학 사업을 계속 할 수밖에 없어요”라고 풀이했습니다.
모교 재학시절 가톨릭 신앙, 스킨스쿠버 동아리, 그리고 아내인 서미경(82 불문) 동문 등을 얻었다는 김 동문은 졸업 후 아내의 말없는 지원을 받으며 이어온 장학 사업을 통해 대단한 후배들을 얻었다고 자부했습니다. 김 동문은 “꿈과 목표를 가진 우리 후배들이 그것을 잃지 않고 성장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수 있도록 앞으로도 최선을 다해 도울 생각입니다”라고 다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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