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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장영희(71 영문) 10주기 #5.‘우리 모두의 스승’이 되신 ‘나의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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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9-05-02 10:23 조회21,33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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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쓴 기사, 이런 방향이라면 정말 껄끄럽다. 장애나 암 투병 이미지가 많아서 서강대 교수나 학자로서의 이미지가 가려지잖아. 나를 ‘비극의 여왕’으로 그렸네. 나처럼 행운을 많이 가진 사람은 없는데 말이야.”

 

<여성동아>에 글을 쓰던 2006년 봄, 장영희 교수님을 인터뷰한 기사의 초고를 보여드렸다가 받은 답장이었다. 당시 스물네 차례의 항암치료를 마치고 새 책을 펴낸 교수님은 기자가 된 제자의 간곡한 요청으로 인터뷰에 응하신 터였다.

 

어떤 글보다 잘 쓰고 싶은 싶었던 교수님 인터뷰 기사. 하지만 돌아온 반응은 처참한 혹평이었다. <동아일보>에 입사해 “기사 작성은 기자 고유의 권한이다”, “취재원을 장악하라”라고 배웠지만, 교수님 앞에선 그 모든 원칙이 무너졌다.

 

고쳐 쓴 두 번째 원고를 보신 교수님은 “새 팩트가 강조돼야 한다”라며 제목까지 바꿔 달아주셨다. 대학 시절 빨간 펜 코멘트로 뒤덮인 영어 리포트를 돌려받는 기분이었다. 교수님은 자신이 가르쳐 사회에 내보낸 학생을 끝까지 ‘애프터 서비스’하는 심정이었을지 모른다.

 

따뜻한 시선과 통찰이 담긴 교수님의 살아 꿈틀대는 문장. 그 가르침을 십분의 일도 흡수하지 못한 건 내가 부족한 탓이다. 귀신 같이 좋은 글을 알아보는 교수님께 “글 참 잘 썼다”라고 칭찬받는 게 목표였다. 하지만 이 목표는 영원히 ‘미완의 과제’로 남았다.

 

제자로, 조교로, 기자로 인연을 이어가면서 교수님께 칭찬보다는 꾸중 들은 일이 많았다. 2000년 학부 조교 시절 어설프게 일을 처리했다가 혼이 빠질 만큼 야단 맞았다. 당시 혼나면서 새긴 교훈은 ‘프로에게 변명은 허락되지 않는다’라는 것이었다. ‘깐깐한 원칙주의자’인 교수님. 칭찬은 뒤에서 해주셨다. 기자를 꿈꾸는 대학 후배에게 “이남희 선배처럼 열심히 하라”라고 말씀하신 걸 뒤늦게 전해 들었다. 그 한마디가 기자 생활을 버텨 나가는 원동력이 됐다.

 

작은 부분까지 섬세하게 배려해 주변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교수님의 또 다른 장기였다. 2001년 미국 보스턴에 머물던 나는 우연히 하버드대 방문교수로 일하던 교수님과 마주쳤다. 머나먼 이역(異域)에서 만난 제자를 반갑게 맞아주셨다. 당시 밥 한 끼 못한 것이 마음에 걸리셨는지 교수님은 편지와 함께 ‘하버드’ 로고가 새겨진 티셔츠를 선물로 보내주셨다. 더없이 밝아 보였던 교수님이 당시 암과 싸우고 있었다는 사실을 안 건, 5년이 흐른 뒤였다.

 

2006년 인터뷰 당시 교수님은 고통스럽다는 항암치료 과정을 들려 줄 때도 유머를 잃지 않았다.

 

“병원에 누워서 하루 종일 TV를 보는데 제일 웃기는 게 화장품 광고였어. 예쁜 여배우가 피부가 촉촉해진다고 강조하는데 그 문제는 죽느냐 사느냐에 비하면 정말 사소한 문제잖아. 그런데 퇴원을 하고 보니 나도 다시 화장품 광고에 솔깃해지는 거야. 호호.”

 

암 투병 중에도 교수님은 학생들을 가르치고, 글을 왕성하게 썼다. “너무 무리하지 마세요”라고 걱정하자 교수님은 “글을 쓰던 사람이 갑자기 그만두면 금단 증상 같은 게 생긴다”라고 하셨다. 교수님은 당시 동아일보에 1년 가까이 칼럼을 썼는데 “힘든 여건 속에서도 마감 시간 한 번 어긴 적 없다”라는 것이 칼럼 편집인의 회고다.

 

육체적 통증이 괴롭힐수록 교수님의 통찰은 더 깊어지는 듯했다. “암이라는 병 덕분에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공부를 하고 있어. 내 몸이 얼마나 소중한지, 또 나의 아픔을 통해 남의 아픔을 이해하는 법을 배우고 있는 거지.”

 

목발을 짚고 강의실 문을 당당하게 들어서던 모습, 반짝이던 눈망울과 웃음 띤 얼굴, 다소 높은 톤의 카랑카랑한 목소리, 병마와 싸우면서도 밤을 새워 책을 읽고 글을 쓰던 정력적인 모습…. 교수님의 에너지와 삶을 향한 열정에 나는 압도되고 말았다.

 

‘장영희 교수의 제자’라는 타이틀은 내게 훈장이었다. 교수님이 떠나신 지 10년이 흐른 지금도 마찬가지다. 만년소녀 같은 따뜻한 글에 위로받고 엄격한 질책을 받으며 나는 성장했다. 우리 사회의 희망 메신저로 불리며 뭉클한 감동을 남기고 떠난 교수님. ‘나의 선생님’은 영원한 ‘우리 모두의 스승’이 되셨다.

 

교수님이 남긴 희망의 메시지는 영원히 남아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용기를 불어넣을 것이다.

 

이남희(98 영문) 채널A 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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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목록

#1.여전히 제 안에 살아 계신 선생님 : 왕선택(84 영문) YTN 기자

#2.내 인생의 나침반 : 한정아(88 영문) 번역가

#3.문학의 힘을 보여주신 선생님 : 정원식(92 영문) 경향신문 기자

#4.늦된 제자의 고백 : 이미현(96 사학) 프리랜서 에디터

#5.‘우리 모두의 스승’이 되신 ‘나의 선생님’ : 이남희(98 영문) 채널A 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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