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강CEO를 찾아서- 김천식 동문(경영대학원 25기, 반디앤루니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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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5-11-17 15:57 조회17,106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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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히 책 읽는 넉넉한 서점이죠"
서울의 중심지, 종로는 ‘독서광들의 요람’이다. 교보문고 광화문점, 영풍문고 종로점에 이어 올해 4월 반디앤루니스 종로타워점이 들어서며 치열한 ‘서점 3강 구도’를 이루고 있기 때문. 종로 서점가의 신흥 강자로 떠오른 반디앤루니스는 특히 색다른 전략으로 눈길을 끈다. 고객이 편안히 앉아 책을 볼 수 있도록 넓은 휴게 공간을 제공하고, 유아·여성·아동 코너에 수유 공간을 만들어 젊은 엄마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 이처럼 반디앤루니스가 문화공간으로 진화를 거듭하는 데에는 한 경영인의 열정이 숨어 있다.
(주)서울문고 사장 김천식(경영대학원 25기) 동문은 1992년부터 반디앤루니스의 성장을 이끈 주인공이다. 반디앤루니스는 1988년 설립한 (주)서울문고의 서점브랜드.‘반딧불’이란 우리말의 영어 표기‘bandi(반디)’와 ‘달빛’을 뜻하는 라틴어‘luna(루나)’를 합성한 것으로‘반딧불과 달빛에 의지해 책을 읽다’, 즉 형설지공(螢雪之功)의 의미를 담고 있다.
10월31일 종로구 견지동 서울문고 본사에서 만난 김 동문은 인자한 훈장님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소박한 점퍼 차림에, 동양 고전의 한 구절을 읊조리는 그에게서‘따뜻한 지성’이 배어났기 때문. 집무실 선반에 빼곡히 꽂힌 서적들은 김 동문이 살아온 세월의 무게를 말해주는 듯했다.
그러나 ‘독서 전도사’를 자처하는 김 동문의 이력은 사실 서점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1964년 서울대 상대를 졸업한 후 한일은행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1976년 현대건설로 자리를 옮겨 이명박 서울시장과 함께 중동신화를 창조했다. 1992년 현대증권을 퇴직한 이후에야, 서점과 처음으로 인연을 맺었다.
“은행과 대기업에서 근무한 사람이 무슨 서점 운영이냐고요? 책은 모든 사람과 관계되는 상품이잖아요. 제가 모셨던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 역시 유명한 독서광이셨죠. 겨우 초등학교를 졸업한 그분이 그토록 정확하게 사리를 분별하고, 선진적인 경영 마인드를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독서의 힘’ 때문입니다.‘책을 가까이하는 민족이야말로 선진국을 이룩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서점 경영에 뛰어든 것이죠.”
서강과의 만남은 우연한 기회에 이뤄졌다. 1992년 한 후배가‘서강대 MBA 코스가 유명하다’며 김 동문을 대신해 대학원 입학원서를 접수한 것. 막상 대학원에 합격하고 보니 그의 마음속에‘공부하고 싶다’는 열망이 샘솟기 시작했다.
“사실 50대의 나이에 공부를 다시 시작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지요. 게다가 서강의 학사일정이 좀 빡빡합니까. 사실, 대학은 놀러간다는 느낌으로 다녔는데(웃음), 대학원에 들어와서는 정말 제대로 공부했습니다. 출석 체크도 까다롭고, 시험도 엄격하게 치러야 했죠. 다시 생각해봐도,‘서강대 참 잘 왔다’ 하는 생각이 들어요. 허허.”
김 동문은 서점 운영을 통해 비단 매출 신장 뿐 아니라 ‘학문의 부흥’을 꿈꾼다. 그의 철학이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은 10년째 무료로 운영해온 ‘반디서당’이다. 1995년 사회에 인간의 기본도리가 무너지고 있음을 안타까워 한 그가 당시 황두연 한국무역협회 부회장과 의기투합해 동양고전을 공부하는 교실을 만든 것. 매주 목요일 오전7시, 서울 강남구 삼성동 무역회관 강의실에서 열린 고전강독 수업에 60여 명의 학생이 꾸준히 참석할 만큼 강좌는 열렬한 호응을 얻었다.
최근엔 반디앤루니스 코엑스점에서 매주 일요일마다 ‘어린이 천자문 교실’이 열린다. ‘어린이들에게 한자와 예절을 가르치고 또래친구들과 폭넓게 사귈 기회를 제공하자’는 취지에서 시작된 것. 김 동문은 “반디서당에 20대의 참여가 저조한 것이 안타깝다”며 “신세대에게 선현의 가르침을 들려줄 고전강독반을 신설하겠다”는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장기화된 경기 침체와 인터넷의 점령으로 책이 잘 팔리지 않는 시대, 대형서점은 생존의 기로에 서 있다. 김 동문은 “‘책이 죽었다’고 하는데, 책값이 제자리를 찾는 것이야말로 책을 살리는 비결”이라고 강조했다. 1년 이내의 신간도서를 오프라인 서점은 정가에 판매해야 하고, 인터넷 서점은 정가의 10% 이내로 할인 판매할 수 있는 도서정가제가 출판사의 도서가격 책정에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는 것.“도서유통체계가 질서를 찾아야 소비자도 합리적 가격으로 도서를 구매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확고한 신념이다.
‘잡념을 가지지 말자’는 좌우명으로 앞만 보고 달려온 예순다섯의 CEO는 여전히 청년 같은 에너지를 분출한다. '수불석권(手不釋卷)’을 가슴에 새기며 손에서 한시도 책을 놓지 않을 뿐더러, 독서의 활성화를 위해‘라이브러리 북스토어(Library Bookstore)’와 같은 새로운 개념의 서점을 구상하고 있다.
“누구든 책을 가까이 하도록 만들겠다”는 김천식 동문의 굳은 의지가 한국을‘독서 강국’으로 이끌어주길 간절히 바란다.
이남희(98·영문) 동아일보 월간 신동아 기자·본보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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